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와 무산계를 제정할 때 종7품 문산계는 계공랑(啓功郎), 무산계는 진용부위(進勇副尉)로 정하였다. 그런데 무산계의 진용부위는 뒤에 분순부위(奮順副尉)로 개칭되어 『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
종7품 문무관 처의 직명은 안인(安人)이라고 하였다. 한편, 1457년(세조 3)에 토관계의 종7품 문계로 주공랑(注功郎)이, 무계로는 수의도위(守義徒尉)를 신설하였다.
그리고 잡직계는 1444년(세종 26) 서반잡직계만 설치했는데, 이 때 종7품 잡직계의 명칭은 복무부위(服務副尉)였다. 그런데 『경국대전』에서는 잡직계의 문계로 승무랑(承務郎)이 신설되고 종래의 복무부위는 선용부위(宣勇副尉)로 개칭되어 수록되었다. 종7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는 직장·기사관·종사·전회(典會)·부사정·수문장 등이 있다.
이러한 종7품관에게는 1438년에 정비된 녹과(祿科)에 의거해 실직(實職)에 따라 1년에 네 차례에 걸쳐 모두 중미(中米) 3석, 조미(糙米) 14석, 전미(田米) 2석, 황두(黃豆) 4석, 소맥 3석, 정포(正布) 6필, 저화 2장을 지급하였다. 아울러 조선 초기에 과전 25결을 지급했으나, 1466년(세조 12) 과전법이 혁파되자 직전 20결을 지급하였다.
그런데 1556년(명종 11)에 직전법도 폐지되면서, 『속대전』에는 매달 미 13두, 황두 6두를 지급하도록 규정되었다.
한편, 1894년 7월 갑오경장으로 관제개혁이 이루어질 때 종7품은 정7품과 함께 7품으로 단일화되고, 품계도 무공랑(務功郎)으로 개칭되었다. 7품 주사에게는 25원의 월봉이 지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