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북조선노동당 정치위원, 노동당 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내용
같은 해 10월 함흥위원회 화학부의 책임을 맡고, 조선적색노동조합 함남위원회 함흥위원회의 책임을 맡아 병기공창지대에 근거를 두고 프로핀테른(Profintern ; Professional international) 테제에 의한 적색노동조합운동에 종사하였다.
이 때 지하운동을 전개하여 일본경찰에서는 모스크바공산대학에 입학하기 위하여 출국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1935년 일본경찰에 적발되어 이른바 평양적색노조사건으로 6년형을 선고받았다.
광복 후 1945년 9월 원산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1946년 8월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 및 정치위원, 1948년 3월 노동당 부위원장 및 정치위원,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교통상을 역임하고 같은 해 10월 주소련대사로 부임하였으나 1953년 8월 반당·종파분자혐의로 숙청되어 행방불명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공산주의운동사』3·5(김준엽·김창순,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73·1976)
- 『國外に於ける容疑朝鮮人名薄』(朝鮮總督府警務局,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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