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주일학교는 기독교 신앙공동체인 교회에서 주일마다 아동 및 청소년에게 성경과 신앙을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본래 주일학교는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아동과 청소년을 계몽시키고자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의 주일학교는 1888년 이화학당에서 시작되었고, 1900년대에 들어 유년부, 초등부, 중등부 등으로 세분화되었다. 1922년 조선주일학교연합회가 결성되면서 주일학교는 크게 발전하였고, 세계 주일학교 운동과도 교류가 이루어졌다. 해방 후 주일학교는 교회학교로 발전하며 한국 기독교 교육 및 신앙 교육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정의
기독교 신앙공동체인 교회에서 주일마다 아동 및 청소년에게 성경과 신앙을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
연원 및 변천
영국의 주일학교
18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으며, 도시에서의 산업화로 인해 많은 이주민들이 찾아와 삶이 어려워졌다.로버트 레이크스(Robert Raikes)는 교도소 봉사를 하면서 교육 부재와 가난이 범죄를 유발한다고 인식하고 주일학교 운동을 시작하여 아동과 청소년 교육을 강조하였다. 주일학교에서는 기초 교양과 성경을 가르쳤고, 어린이들의 생활 습관도 향상시켰다.
주일학교 운동은 성장하며 1783년에는 주일학교에 관한 신문 기사를 게재하여 주목을 받았다. 주일학교 운동은 유럽으로 확산했다.
미국의 주일학교
영국의 주일학교 운동은 미국으로 전파되었다. 미국에서 주일학교는 가난한 부모의 자녀를 가르치는 데에서 시작되었다.미국 주일학교는 영국과 다르게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신앙 교육을 중시했으며, 종교 교육을 통한 복음화에 기여하였다. 미국의 주일학교는 노래(찬양)와 이야기를 중요하게 다뤘는데, 찬양 ‘예수 사랑하심은’은 미국 주일학교에서 시작되어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노래다.
주일학교 연맹이 1824년에 조직되어 국제적으로 확대되었으며, 세계 주일학교 대회와 세계 주일학교 협의회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주일학교 운동은 교육과 종교를 통한 사회적 개혁과 복음화를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국의 주일학교
이러한 상황에서 주일학교는 선교사들의 복음전도와 더불어 민족계몽의 관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1888년에 이화학당에서 처음 시작된 어린이 주일학교는, 그 후 서울의 연동교회를 비롯하여 평양의 장대현교회 · 남산현교회, 선천의 북교회, 전주의 서문교회 등 여러 곳에서 소아회(小兒會)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한국 주재 선교사들은 1905년 선교사공의회(The General Council of Protestant Evangelical Missions)를 조직하면서 종교 교육을 진작시키기 위해 주일학교위원회를 설치하였다. 1907년 윤치호는 로마에서 열린 제5차 세계 주일학교 대회에 참석하여 한국 주일학교를 소개하였는데, 주일학교 수는 전국에 613개였고, 학생은 45,918명이었다. 윤치호는 1911년의 워싱턴대회에서도 실행위원이 되었으며, 이 회에는 이승만(李承晩)도 참석하였고, 모펫(Moffett,S.A., 馬布三悅) 선교사가 명예부회장으로 추대되어 한국 주일학교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였다. 그리고 1913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제7차 세계 주일학교 대회에는 신흥우(申興雨)가 실행위원으로 참석하였고, 1907년에 비교해 4배 증가한 2,392개의 주일학교와 2배 이상 증가한 119,496명의 학생이 보고되었다.
1920년 일본 동경에서 개최된 제8회 세계 주일학교 대회를 마친 다음에는 참석했던 여러 대표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주일학교 사업에 일대 자극을 주었다. 그래서 다음해인 1921년 제1회 전국 주일학교 대회를 서울 승동교회에서 개최했을 때는 5,000명의 신자들이 참여하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1922년 주일학교위원회는 세계주일학교연합회에서 파송한 브라운(Brown,F.H.)의 자문을 받아 세계 기구와 연결을 맺고 조선주일학교연합회로 발전하였다. 초대 회장에 서로득(徐路得, Swinhart,M.L.), 부회장에 윤치호(尹致昊), 서기에 장덕로(張德櫓)가 선출되었고, 허대전(許大殿, Holdcraft,J.G.)을 총무로 하여 전국의 주일학교를 통솔하게 하였다. 여기에는 조선예수교장로회 · 기독교조선감리회 · 북장로교선교회 · 남장로교선교회 · 캐나다장로교선교회 · 호주장로교선교회 · 미감리교선교회 · 남감리교선교회 · 조선주일학교연합회 · 조선기독교서회 등 10개 단체가 가입하였다.
초기 3대 총무는 선교사가 맡았다. 1925년에 이르러 정인과(鄭仁果) 목사와 한석원 목사가 협동총무가 되면서 한국 지도자들이 실무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뒤 1929년에 제3차 주일학교 대회에서 조선주일학교진흥체를 만들어 선교사에게 의존하려는 자세를 극복하려 하면서부터 한국인의 주도권이 강화되었다.
교재로는 1927년부터 『계단공과』가 출판되었고, 잡지로는 『주일학계』 · 『주일학교잡지』가 있었으며, 1930년부터 『종교교육』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아이생활』은 1938년 일제의 탄압으로 주일학교연합회가 해체될 때까지 존속하여 인기가 높았다.
주일학교연합회는 광복을 맞아 1947년에 재건되었고, 1948년 총회에서 기구의 이름을 ‘대한기독교교육협회(KCCE)’로 개칭하기로 하였는데, 이는 세계기독교교육협의회(WCCE)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취해진 조처였다. 이제 주일학교는 기독교 교육이라는 확장된 영역으로 발전하여 다양한 분야의 기독교 교육 활동의 주체로 발전하였다.
현재 한국의 주일학교는 교회학교라는 이름으로 한번 더 확장되어 한국 기독교 교육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각 교단별로 『계단공과』 교재를 개발하여 보급하며 주일학교(교회학교)의 지속적인 발전을 경주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저출산의 여파와 종교에 대한 무관심 등으로 한국의 주일학교(교회학교)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의 예를 들면, 2012년 주일학교 학생(영아~초등학생)이 30만 1409명으로 집계되었던 것이 2021년에는 41.5% 감소한 17만 6321명으로 집계되었다. 이러한 감소 추세는 다른 교단도 비슷한 상황이다. 수도권의 한 노회를 조사한 결과 전체 교회의 43%에 해당하는 교회들이 아동과 청소년 수의 부족으로 주일학교(교회학교) 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고원석 외, 『기독교교육개론』 (장신대 기독교교육연구원, 2013)
- 김광수, 『한국기독교성장사』 (기독교문사, 1976)
- 양주삼, 『조선남감리교 삼십년기념보』 (조선남감리회전도국, 1926)
- 오인탁 외, 『기독교교육사』 (교육목회, 1992)
- 『주일학교잡지』 (조선주일학교연합회 편, 1926)
- 『한국기독교교육사』 (대한기독교교육협회, 1974)
- Paik, L. George, *The History of Protestant Missions in Korea 1832-1910*(Pyeng Yang: Union Christian College Press, 1929)
- Rhodes, Harry A., ed., *History of the Korea Mission, Presbyterian Church U.S.A. 1884-1934*(Seoul: Chosen Mission Presbyterian Church U.S.A., 1934)
- Eavey, C. B., *History of Christian Education*(Chicago: Moody Press, 196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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