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초창기부터 전도와 교육을 병행하는 선교정책을 시행해 왔다. 교회가 있는 곳에는 학당(學堂)을 두어 목사와 교사가 분담하여 지도하도록 하였다.
학당에서는 주일뿐 아니라 평일에도 수업하여 일반 사회 교과목을 전부 교수하였으며, 그러면서도 교육의 중점은 성경에 기초한 신앙인을 양성하는 데 있었다.
일제 통치자들이 이러한 교육방식의 존재를 좋아할 까닭이 없었으며, 사립 교육기관을 정비한다는 구실로 기독교회가 운영하는 대부분의 학당들은 폐쇄되고 말았다.
한국 주재 선교사들은 1905년 선교사공의회(The General Council of Protestant Evangelical Missions)를 조직하면서 종교교육을 진작시키기 위해 주일학교위원회를 설치하였다. 한국 교회가 주일학교를 두어 성경을 가르친다는 데는 일제 당국자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 해에 서울의 연동교회를 비롯하여 평양의 장대현교회·남산현교회와 선천의 북교회, 전주의 서문교회 등 여러 곳에서 소아회(小兒會)라는 이름으로 주일학교 사업이 전개되었다. 교재로는 『주일학교 공부』라는 책이 있었다.
주일학교위원회는 1911년 4월 세계주일학교연합회에서 파송한 브라운(Brown,F.H.)의 자문을 받아 세계기구와 연결을 맺고 조선주일학교연합회로 발전하였다.
초대 회장에 서로득(徐路得, Swinhart,M.L.), 부회장에 윤치호(尹致昊), 서기에 장덕로(張德櫓)가 선출되었고, 허대전(許大殿, Holdcraft,J.G.)을 총무로 하여 전국의 주일학교를 통솔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 기구는 어디까지나 선교사공의회가 관장하여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 동안 한국의 주일학교가 세계 주일학교와 호흡을 함께하면서 운동한 내용을 보면, 1907년 로마에서 개최된 세계주일학교대회에 윤치호가 참석하여 한국 교회를 소개해서 갈채를 받았고 실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다시 1911년의 워싱턴대회에서도 실행위원이 되었으며, 이 회에는 이승만(李承晩)도 참석하였고, 모펫(Moffett,S.A., 馬布三悅) 선교사가 명예부회장으로 추대되어 한국 주일학교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였다.
1913년 스위스 취리히에서의 제7회 대회에서는 신흥우(申興雨)가 실행위원이 되었으며, 1920년 일본 동경 제8회 대회를 마친 다음에는 참석했던 여러 대표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주일학교사업에 일대 자극을 주었다.
그래서 다음해인 1921년 제1회 전국주일학교대회를 서울 승동교회에서 개최했을 때는 5,000명의 많은 신자들이 참집하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1922년부터는 선교사공의회의 관할에서 벗어나 연합체를 형성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조선예수교장로회·기독교조선감리회·북장로교선교회·남장로교선교회·캐나다장로교선교회·호주장로교선교회·미감리교선교회·남감리교선교회·조선주일학교연합회·조선기독교서회 등 10개 단체가 가입하였다.
그러나 아직 6개 단체는 선교사 단체였으며 초기의 3대 총무는 선교사가 모두 맡아 하였다. 1925년에 정인과(鄭仁果) 목사와 한석원 목사가 협동총무가 되면서 한국 지도자들도 실무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뒤 1929년에 제3차 주일학교대회에서 조선주일학교진흥체를 만들어 선교사에게 의존하려는 자세를 극복하려 하면서부터 한국인의 주도권이 강화되었다.
교재로는 1927년부터 『계단공과』가 출판되었고, 잡지로는 『주일학계』·『주일학교잡지』가 있었으며, 1930년부터 『종교교육』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아이생활』은 1938년 일제의 탄압으로 주일학교연합회가 해체될 때까지 존속하여 인기가 높았다.
주일학교연합회는 조국의 광복을 맞아 1947년 재조직되었는데, 이때에는 이왕에 있던 장로교와 감리교에 더하여 성결교가 가담하였다.
1948년 총회에서 기구의 이름을 ‘대한기독교교육협회’로 개칭하기로 하였는데, 이것은 세계기독교교육협의회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취해진 조처였다.
교육협회에서는 주일학교 교육뿐 아니라 일반 학교에서의 기독교 교육문제에까지 광범위하게 관심을 넓혀 그 동안 교재 출판과 문헌 발간 등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근년에 이르러 각 교단마다의 교육부가 대거 등장하여 별도로 『계단공과』를 만들고 교재를 발간하는 등 주일학교사업은 교단 상호간의 경합을 드러낸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향을 시정하고 통합하기 위한 방향을 모색하는 일이 교회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시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