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좌대는 2기가 있는데 그 1기는 상대석 · 중대석 · 하대석이 모두 팔각으로 중대석의 면에 합장한 좌상이 조각되어 있고, 하대석 역시 각 면마다 문양이 조각되어 있으나 문양을 판별할 수 없다. 좌대 높이는 각 80cm, 100cm 이다.
다른 1기는 상대석이 반구형으로 꽃무늬가 중첩된 연꽃무늬를 이루어 떠받들고 있으며, 중대는 팔각으로 되어 있으나, 각 면의 경계가 불분명하며 4면에는 석등의 창문같이 장방형으로 파여있다.
문양 등 규모로 보아 2개의 상대석이 서로 바뀌어 놓여진 것 같으며,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임실 진구사지 석등(任實 珍丘寺址 石燈)으로 추정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신라 중엽에 창건된 중기사라는 사찰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한다. 이 좌대는 현재 건물의 서쪽에 있었던 광명제(光明堤) 옆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24년에 당시의 주지 박봉주(朴奉柱)가 현 중기사를 재건하여 좌대를 옮겨 현재의 불상을 봉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