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 강로리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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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평안남도 중화군 중화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첨저형토기조각 · 반월형석도 · 방추차 등이 출토된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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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평안남도 중화군 중화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첨저형토기조각 · 반월형석도 · 방추차 등이 출토된 집터.
내용

운봉산 아래 구릉지대에 있는데 1963년 7월에 조사되었다. 현재 크게 파괴되어 일부분만 남아 있지만, 본래의 유적지 면적은 좀더 넓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적지의 지층은 구릉경사면에 있어 표토층의 두께는 균일하지 않으나, 대체로 30㎝ 정도이고 그 밑 5∼10㎝ 정도에는 넓은 문화층이 있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주거지 1기는 남북 183㎝, 동서 610㎝의 장방형이며 노지(爐址)는 없다. 출토된 유물은 첨저형토기편과 석검 1점, 반월형석도(半月形石刀) 2점, 방추차 5점, 대패날석기 1점, 숫돌조각편 1점 등이며, 주거지 형태와 유물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보아 서북지방의 첨저형토기를 쓰던 선사인들이 남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첨저형 토기편이 발견된 주거지에서는 기둥자리가 보이지 않고 있으며 아울러 뚜렷한 노지의 출현이 없는 점이 특징이나, 토기편과 석기류 관계가 일치하는 점으로 보아 전형적인 청동기시대 주거지이다.

참고문헌

「중화군강로리 유적조사보고」(김영우, 『고고민속』1964년 1호, 사회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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