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충주(忠州). 일명 이달수(李達洙). 서울 출신.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池靑天)의 맏아들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건너가 길림성의 검성중학교(儉成中學校)에서 수학하였다. 오상현(五常縣)에서 농촌청년들에게 항일독립사상을 계몽하던 중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군사조직인 한국독립군(韓國獨立軍)에 입대해 총사령관인 아버지 밑에서 복무하였다. 9 · 18사변이 일어나자 한국독립군은 중국호로군(中國護路軍)과 연합군을 편성해 항일전투를 적극적으로 전개했는데, 쌍성보(雙城堡)를 둘러싼 세 차례의 전투에 참가해 무공을 세웠다.
1933년 영안현(寧安縣) 구국군 총사령관 왕더린[王德林]부대와의 연합작전에서는 소대장으로 징보후[鏡泊湖] · 우린쯔[武林子] · 주자툰[朱家屯] 전투에 참가하는 등 크고 작은 20여 회의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1933년 중국중앙군관학교 제2분교에서, 1934년 중국군관학교 뤄양분교[洛陽分校]한국인특별반에 입학해 군사교육을 받았다. 1936년 임시정부에서 화북 · 평수지구공작단원(華北平綬地區工作團員)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또한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 중앙위원 겸 쑤이위안성[綏遠省] 당위원장을 역임하다가 1940년 9월 한국광복군 편성에 참여하였다. 1941년 2월에는 광복군 제2지대 2구대장으로 임명되어 활약하였다. 지대장 공진원(公震遠) 및 유해준(兪海濬) 등 간부와 더불어 장자커우[張家口]시내에 침입해 10여명의 청년을 포섭해 지하조직망을 굳혔다.
이후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의 편입에 의한 광복군의 조직개편 이후 제2지대 2구대 구대부(區隊附)로 배속되어 초모훈련 및 항일선전에 힘을 쏟다가 조국광복을 맞았다. 귀국 후 한국광복군전우회 · 한국광복군동지회 · 대한독립동지회 등에서 임원을 역임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