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지릉은 북한 개성특급시 장풍군 지릉리에 있는 고려시대 제19대 명종과 의정왕후 김씨가 묻힌 왕릉이다. 명종은 1202년 승하하여 장단에 묻혔으며 능호는 지릉이다. 의정왕후 김씨와 사후 합장되었다. 지릉은 고읍리 고려 무덤떼 인근에 있었으나 현재는 능역 자체가 훼손되어 원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지릉의 주검칸에서 청동화폐 3점과 함께 11점의 청자가 출토되었는데, 특히 지릉에서 출토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상감청자는 1255년경 지릉을 수축할 당시에 부장되었을 것으로 여겨져 13세기 상감청자의 기준작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정의
북한 개성특급시 장풍군 지릉리에 있는 고려시대 제19대 명종과 의정왕후 김씨가 묻힌 왕릉.
건립 경위
변천
1916년 일본인 학자 이마무시 류[今西龍]가 1867년의 표석을 근거로 고려 왕릉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실시하여 『고려제릉묘조사보고서(高麗諸陵墓調査報告書)』에 기록하였다. 1916년에 도굴되어 이것을 수습하고자 조선총독부 기수 세키타니 쵸노스케[關谷長之助]가 현장을 조사하였다. 이후 명종 지릉은 원래대로 복원되지 않은 채 능역(陵域)이 훼손되어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형태와 특징
주검칸[玄室]은 서쪽으로 15도 치우친 남향에 외칸의 돌방무덤이고, 돌방의 크기는 동서 길이 288㎝, 남북 길이 360㎝, 높이 213㎝이다. 돌방의 구조는 잘 다듬어진 장대석으로 네 벽을 쌓고 판석으로 천장을 덮어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이다. 천장은 3매판석(三枚板石)을 써서 덮고 있는 상형석실(箱形石室)로 되어 있으며, 전부터 천장석까지의 높이는 2m를 약간 넘는다. 석실에는 연도(羨道)가 없으나 남벽(南壁)에는 좁은 문의석(門倚石)이 각 1개씩 세워져 있고, 중앙에는 밖에서 맞추어 넣은 넓은 문비석(門扉石)이 있다. 그리고 석실 내면은 벽과 천장 전면에 회칠을 하고, 천장은 청색과 주색으로 성신도(星辰圖)를 그린 흔적이 있으나 네 벽은 공백으로 남겨 두었다. 벽 상부에 못이 돌려 있으며 사신(四神)을 그린 휘장을 둘러쳤던 것 같다.
무덤 칸 바닥 중앙에는 1변 30㎝의 방형 전(塼)이 깔려 있고, 중앙의 관대(棺臺)는 길이 272㎝, 너비 118㎝, 높이 20㎝이다. 명종과 의정왕후(義靜王后)가 합장되었다고 하는데 관대가 하나뿐인 단장용(單葬用)이다. 주검칸에서는 껴묻거리로 청자 계통의 발(鉢) 1개, 접시[皿] 6개, 금동고리(金銅環), 동전(銅錢) 3개가 출토되었다. 동전은 매몰토 속에서 수습되었는데, 화폐는 황송통보(皇宋通寶, 1039년), 개원통보(開元通寶, 713-742), 천성통보(天聖通寶, 1022-1031) 3점이다. 특히 1202년 지릉에서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청자상감여지문완(靑磁象嵌荔枝文碗)’의 경우 높이 8.4㎝, 입지름 20.3㎝의 크기이다. 이 유물을 통해 상감청자(象嵌靑磁)는 무신란(武臣亂)이 일어난 1170년 이후에 발생하여 명종 연간을 거치면서 급속도로 발전했다고 보는 등 도자기의 역사 연구에 획기적인 유물이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단행본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특별시사』 고적편(1963)
- 장경희, 『고려 왕릉』(예맥, 2008)
논문
- 윤용이, 「고려도자의 변천」(『간송문화』 31, 1986)
- 윤용이, 「12세기 고려청자에 관하여」(『삼불김원룡교수정년퇴임기념논총』, 일지사, 1987)
- 이승일, 「고려묘 출토 중국전에 대한 연구」(동아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 홍영의, 「조선시대 고려 왕릉의 현황과 보존 관리 실태」(『한국중세고고학』 5, 한국중세고고학회, 2019)
기타 자료
- 조선총독부, 『대정5년도 조선고적조사보고(大正5年度 朝鮮古蹟調査報告)』(191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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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능의 이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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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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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양석(羊石)과 호석(虎石)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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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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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능(陵)이 있는 구역.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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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섬돌 층계나 축대를 쌓는 데 쓰는, 길게 다듬어 만든 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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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고분의 입구에서 시체를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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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고분 안의 돌로 된 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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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고분 안벽에 그려진 별자리 그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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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네 방향을 맡은 신. 동쪽은 청룡, 서쪽은 백호, 남쪽은 주작, 북쪽은 현무로 상징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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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려서 무덤을 만듦. 또는 그 무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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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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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5
: 네모반듯한 모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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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6
: 예전에, 무덤 안에 관을 얹어 놓던 평상이나 낮은 대. 횡혈식 석실 따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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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7
: 장사 지낼 때, 시체와 함께 묻는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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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8
: 임금이나 귀족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이 생전에 쓰던 여러 가지 패물이나 그릇 따위를 무덤에 같이 묻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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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9
: 무덤을 만들기 위하여 흙을 쌓아 올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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