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 1973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행당(趾行堂)강서린(姜瑞麟)을 추모하기 위해 1732년(영조 8)에 세운 건물로 조정으로부터 사액(賜額)되었다 한다. 그 후 수차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데 전체적 모습은 그다지 오래된 모습이 아니다.
자연석 주초에 원주를 사용하였으며, 평면은 동측 한 칸이 마루이고 나머지 두 칸은 방을 들였다. 서쪽 끝칸은 전후 2칸을 모두 방으로 만들고 전면에 2짝의 띠살창을 달았다. 옆방은 전면에 툇마루를 시설하였는데, 전면과 마루와 면하는 측면에 각각 2짝의 띠살문이 있다.
두 개의 방은 현재는 터져 있으나 본래는 공간이 구분되어 있었다. 마루는 전면을 개방하였고 측벽과 뒷벽은 칸마다 2짝의 판문을 달아 필요할 때 삼면을 개방할 수 있었다.
마루에는 ‘趾行堂’이란 현판과 1961년 작성된 기문(記文)이 걸려 있다. 현판은 1838년(헌종 4) 공조판서에 지경연춘추관사(知經筵春秋舘事) · 홍문관제학을 겸하고 있던 이익회(李翊會)가 쓴 것이다. 당우 주위에는 담장을 두르고 일각문을 냈으며, 서측 마당 한쪽에는 1882년(고종 19)에 세운 사적비(事蹟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