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수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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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죄인을 직접 검거하여 구속할 수 있었던 관서.
제도/관청
  • 상급 기관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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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죄인을 직접 검거하여 구속할 수 있었던 관서.

내용

형조 · 병조 · 한성부 · 사헌부 · 승정원 · 장례원(掌隷院) · 종부시(宗簿寺) 및 관찰사와 지방 수령의 관서이다. 그밖의 관서에서 죄인을 구속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형조에 통보하게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비변사와 포도청이 직수아문에 추가되었다. 또, 종부시는 전주이씨의 족보를 편찬하는 작업이 진행 중일 때 외에는 직수아문에서 제외되었다.

이러한 직수 규제제도는 각 아문의 직권남용을 예방하고 형벌을 신중히 하기 위한 배려에서 마련된 것이었는데, 특히 각 군문(軍門)에서 함부로 백성들을 구인하는 폐단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 직수규정을 어길 경우에는 엄중한 추문이 있었다.

그러나 후기에는 각 아문에서 태(笞) 50까지는 자유로이 하게 하였고, 또 중죄가 아니면 형조에 통보하지 않고도 수금할 수 있게 하였다. 다만, 정규 관원 · 녹사(錄事) · 장교 및 액례(掖隷)의 정실부인들은 수금하지 못하였다.

참고문헌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대전회통(大典會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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