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방(十方)주1은 범어로는 daśa-dig-lokadhātu 동서남북과 사유[남동, 남서, 북동, 북서]와 상하 등의 10개의 방위를 칭하며 십방이 아니라 시방으로 읽는다. 시방세계는 시방, 시방계, 시방찰 등으로 약칭한다. 이 시방의 세계에는 그 세계의 명칭이 있으며 각각 부처의 정토가 존재한다. 동방 묘희세계 아촉불, 동방 주2 약사여래, 서방 극락세계 아미타불, 서방 무승세계 석가불 등을 말하는데 그 명칭도 경전에 따라 동일하지 않다. 한 예를 『화엄경』 「여래명호품」을 통해서 보면 다음과 같다. 동방은 금색세계로 부동지불이다. 남방은 묘색세계로 무애지불이다. 서방은 연화색세계로 멸암지불(滅闇智佛)이다. 북방은 담복화색(薝蔔華色)세계로 위의지불(威儀智佛)이다. 동북방은 우바라화색(優鉢羅華色)세계로 명상지불(明相智佛)이다. 동남방은 금색(金色)세계로 구경지불(究竟智佛)이다. 서남방은 보색(寶色)세계로 최승지불(最勝智佛)이다. 서북방은 금강색(金剛色)세계로 자재지불(自在智佛)이다. 하방은 파려색(玻瓈色)세계로 범지불(梵智佛)이다. 상방은 평등색(平等色)세계로 관찰지불(觀察智佛)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방위의 나열순서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통상순서와 다르다. 즉 동 · 남 · 서 · 북 · 동북 · 동남 · 서남 · 서북 · 하 · 상의 순서이고, 사유의 명칭도 북과 남이 뒤에 온다. 단 하상의 순서는 화엄경, 금강경 등등 상하의 순서로 되는 경우도 있다.
불교에서는 이 시방세계에서 붓다가 가장 존귀하다고 하며, 경전에서는 붓다에 예의를 표하기 위해서 시방의 세계에서 많은 보살들이 찾아오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또한 붓다의 광명이 이 세계 외에 10개의 방향으로 광명을 비추거나 무한한 세계를 비추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방세계를 인식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 청나라의 『능엄경관섭(楞嚴經貫攝)』이라는 저술에서는 육안으로 시방세계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주3이라고 한다. 수행에 의해 경지가 높아지면서 보는 수준에 차이가 난다. 일반 사람들이 보는 주4과 그로부
터 경지가 높아지면서 주5, 주6, 주7, 주8이 있다. 시방세계는 천안의 경지에서 볼 수 있으니 아주 높은 경지에서야 볼 수 있는 세계는 아닌 것이다.
이 시방세계는 10개의 방위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주9의 『화엄경탐현기』에는 시방세계는 일체처라고 하듯이 모든 세계와 공간을 총괄 또는 총칭하는 말이다. 즉, 시방은 일체의 세계를 포괄하며 상징적으로는 세계 전체를 통칭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엄경』 「십행품」에서 보살이 시방의 국토 가운데에서 항상 보살행을 한다고 할 때의 시방은 일체 세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불교철학적으로 큰 것과 작은 것의 관계를 논할 때, 시방은 큰 것의 대명사로 작은 것과의 관계를 논할 때 자주 사용된다. 의상의 『법계도』에서는 한 티끌에 시방을 다 포함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 그 제자들의 해석 모음인 『법계도기총수록』에서는 시방세계를 다 포괄하여 하나의 티끌이 성립되기 때문에 시방을 포함한다고 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이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티끌이 새롭게 계속 시방을 포함한다고 설명한다. 한 터럭구멍 가운데서 시방국토를 널리 본다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방은 작은 것과의 관계에서 전체, 가장 큰 것을 의미한다. 『법계도기총수록』의 의상의 후예들은 시방에 의해 구분하여 무진의 세계를 논하는 것은 동교의 세계이고, 무진별교, 즉 『화엄경』의 세계에서는 방위가 없다고 표현한다. 이때 무방은 무애와도 연결된다. 즉 시방의 개념에 끝이 없음, 전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해도, 분별의 세계를 논할 때 사용한다는 것도 중요한 이해 방식이다. 10이라는 숫자 개념, 즉 분별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