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법사상은 6세기경 중국에서 일어난 사상으로 불교의 독특한 시대의식과 역사관을 표현한 사상이다. 불교의 전통은 정법 · 주1 · 주2이라는 세 시대를 거쳐 점점 쇠멸에 이른다는 생각이 기조를 이룬다. 정법시대에는 정법이 존재하여, 진리와 수행과 깨달음의 3가지가 가능하지만, 상법시대에는 깨달음이 없어지고 진리와 수행만이 남으며, 말법시대에는 수행과 깨달음이 없어지고, 진리의 껍데기만 남아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3시대의 기간에 관해서는 경전에 따라 여러 가지 기술이 있는데, 말법사상의 발상지인 중국에서는 정법 500년, 상법 1000년, 말법 10000년으로 하는 것이 통설이다. 이에 따르면 주3 주4 후 1500년이 지나면 말법시대에 들어가게 된다. 말법과 비슷한 개념으로 말세가 있다. 말세는 일반적으로 붓다가 입멸한 후 교법이 쇠퇴하는 기간을 의미하지만, 나아가 교법이 멸하고 교법이 혼란해지는 상황을 표현하기도 한다. 즉 말세 혹은 말법은 기본적으로 비관적, 부정적 표현이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삼시사상에 근거한 말법사상은 성립하지 않았다. 법화경에 말법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원어는 붓다의 입멸로부터 '뒤의 시기'라는 의미이다. 금강경에 자주 나오는 ‘말세’ '후오백세'라는 표현도 붓다가 교설이 온전히 존재한다고 인정한 예언에 기반을 두고, '법이 멸하려고 하는 때에'라는 의미가 부가된 것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에서도 말법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시기를 한정한 표현은 아니며, 보현보살이 그 쇠퇴하는 법[末法]을 흥륭시킬 것이라고 예언한다. 따라서 비록 말법이 부정적인 표현이지만, 붓다의 예언에 의해 극복된다.
중국에서 말법시대 인식을 가장 먼저 보여준 사람은 혜사(慧思, 515577)이다. 그의 『남악사대선사입서원문』에서는 말법에 들어와서 82년 되는 때에 태어났다고 서술하고 있다. 수나라 대에는 말법사상을 설한 대집월장경(大集月藏經)이 번역되었다. 이러한 시대 환경을 통해서 중국에서는 수 · 당 대에 교법과 교단이 타락하는 시대에 대응하는 신앙의 방법과 구제론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혜사는 금자 마하반야경을 만들어 미륵의 출세를 기다렸다. 주7의 신행(信行, 540594)은 말법의 시대에는 세번째 등급[제3계]의 시대에 들어온 것을 의미하여 이 시기의 범부는 말법탁세에 살고 있기때문에, 모든 붓다, 모든 경전, 모든 승려에게 주5할 것을 가르쳤다. 그것이 주6, 보법(普法), 보경(普敬)이다. 한편, 주8의 도작(道綽, 562645), 선도(善導, 613681)도 말세의 범부 중생을 위해서 염불하는 것만으로 극락세계에 도달하여 구제된다고 가르쳤다.
신라의 원효는 『대승기신론소』 하권에서 말세의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올바로 서원을 세운 사람이 적고 삿된법을 구하는 자가 많다고 하였다. 즉 고요함에 빠져 헛되어 세월만 낭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원효가 말법사상을 고취시켰다고는 할 수 없다. 원효가 사용하는 말세는 3시기를 염두에 둔 용어인데, 『금강삼매경론』에서 상법과 말세 중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붓다는 이들 중생을 동등한 일미로 해탈시키려고 한다고 설명하였다.
고려시대 의천은 당시를 불법이 쇠퇴하는 말세에 들어간 시기라고 보았다. 의천은 신참학도 지웅(智雄)에게 보인 글에서 당시를 여래가 입멸한 후 마지막 5백 년에 해당하여 불법이 쇠해진 말세로 보았다. 또한 세상 인심도 탁해진 난세로서 불법에 절실한 자가 적고, 처음에 발심을 했어도 계속 이어가 끝을 맺는 자가 드믈다고 하였다. 의천의 이러한 말세관은 중국의 주9과 주10의 영향 하에 성립된 듯하다. 의천이 말세에는 교법대로 실천하기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에 몸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한 것은 이러한 의천의 말법사상에 해당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함허 득통은 『금강반야바라밀경오가해설의』에서 말세의 중생들도 금강경을 믿으면 깨닫는다고 선언하였다. 또한 말세에도 뛰어난 주11는 있기 때문에 반드시 믿음을 낸다고 설명하였다. 이상과 같이 한국에서의 말법사상은 불법이 쇠퇴하는 시기를 인식하는데 의미가 있을 뿐, 그 시기에도 올바른 깨달음을 얻는 수행자의 존재는 변함없이 인정된다며, 9세기 신라시대 말법인식이 형성될 때 오히려 주12의 동참으로 이끄는 계기를 만들거나 선종이 성장하는 예를 찾을 정도로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