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활룡촌고분군은 통구(通溝) 하구에서 압록강 하류 방향으로 약 8㎞ 떨어진 상활룡촌 북쪽의 충적 대지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에 있는 압록강과 320m 거리를 두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일만강(一漫崗)과 배후의 산들과 접하고 있다. 1977년 겨울 집안현문물보사대(集安縣文物普査隊)에서 조사한 바가 있으며, 노호초(老虎哨) 수력발전소 건설에 따른 수몰지구에 대한 조사의 일환으로 1982년 5∼10월 집안현 문물보관소(集安縣文物保管所)에서 14기의 무덤을 발굴조사하였다.
상활룡촌고분군에서 확인된 무덤의 종류로는 돌무지무덤〔積石塚〕, 계단식돌무지무덤, 돌방무덤〔石室墳, 石室封土墳〕이 있다.
돌무지무덤은 3기가 조사되었다. 규모는 대체로 비슷하며 평면 형태는 네모모양〔方形〕이다. 모두 강자갈을 지표 위에 쌓아 만들었는데 그 형태는 언덕모양〔丘形〕이다. 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M2는 길이 9m, 너비 7m, 높이 1m이다. 무덤구덩이〔墓壙〕는 무덤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으며, 무덤구덩이의 네 벽은 파괴가 심하게 이루어졌으나 남벽에 동서 방향의 무덤구덩이 벽이 남아 있다. 무덤 벽은 30×50㎝ 크기의 자갈을 이용하여 축조하였으며, 길이는 4.8m, 남아 있는 높이는 약 30㎝이다. 무덤구덩이에서는 깊은바리모양토기〔深鉢形土器〕, 음각 물결무늬가 시문된 시루 등이 출토되었다.
계단식돌무지무덤은 모두 5기가 조사되었다. 보존 상태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M5은 무덤군의 가운데에 위치한다. 평면 형태는 네모모양이며, 길이와 너비는 각각 8m, 높이는 약 2m이다. 지표 위에 작은 강자갈을 깔아 기초를 만들고 그 위로 가공된 석회석을 각 층마다 12∼13개 가량 사용하여 3단의 계단식돌무지무덤을 축조하였다. 무덤구덩이는 약 1.4m 높이에 위치하는데, 네 벽은 이미 파괴되었으며 동·남·북 3면에 정연하게 가공된 석재가 일부 남아 있다. 무덤구덩이의 방향은 남-북쪽을 향하고 있으며, 평면 형태는 긴네모모양〔長方形〕으로써 길이는 약 3m, 너비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무덤구덩이 상부는 크기가 다른 강자갈을 덮어 분구를 만들었다. 무덤구덩이 안에서는 고운 점토질의 회색토기조각이 출토되었으며, 기단 동남쪽 모서리에서 2m 떨어진 곳에서 연꽃무늬수막새가 출토되었다.
돌방무덤은 6기가 조사되었는데, 모두 파괴되어 뚜껑돌은 대부분 결실되었다. 무덤의 조영 방식은 기본적으로 동일하여 대부분 석재를 쌓아 널방과 널길을 만들고 위에 뚜껑돌을 덮은 뒤 흙을 쌓아 원구형(圓丘形) 분구를 만들었다. 무덤의 내부구조는 널길의 위치에 따라 ‘편재 널길’(刀形)와 ‘중앙 널길’(鏟形) 2종류로 나눌 수 있다. 널방의 상부는 조금씩 들여서 쌓았으며 널길 가운데에는 막음돌로 막았다. M13은 널길이 널방 남벽의 서쪽에 붙어 있는 편재식 돌방무덤으로 널방의 크기는 길이 1.75m, 너비 1.1m, 높이 75㎝이다. 널방 바닥에는 작은 강돌을 사용하여 깔았으며 네 벽은 화강암을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널방 북쪽에서 두개골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머리방향〔頭向〕은 북향으로 판단된다. 널길은 길이 1.2m, 너비 60㎝, 높이 65㎝이며 널길 가운데에는 돌로 입구를 막았다. 출토된 유물로는 진흙 바탕질의 회색토기조각과 갈색토기조각 등이 있다. 그밖에도 이 고분군에서 청동거울과 ‘강(罡)’자가 새겨진 명문토기조각 등도 함께 출토되었다.
상활룡촌고분군에서 돌무지무덤, 계단식돌무지무덤, 돌방무덤 등 3종류의 무덤 형식이 확인되고 있어 고구려고분의 묘제 변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 가운데 돌무지무덤, 계단식돌무지무덤은 출토된 토기의 태토 사용과 제작기법 등을 통해 볼 때, 대체로 축조시기는 고구려 중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M7에서 출토된 ‘강(罡)’자가 새겨진 명문토기의 경우 광개토왕릉비문에의 글자와 비슷하며, M5 기단에서 출토된 연꽃무늬수막새의 경우 그 형태가 장군총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하다. 반면 돌방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청동거울은 당대(唐代) 중만기(中晩期)에 유행하던 양식으로 그 하한은 8세기 대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