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군 ()

대동여지도 중 경상남도 창녕, 밀양 부분
대동여지도 중 경상남도 창녕, 밀양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경상남도 중북부에 위치한 군.
정의
경상남도 중북부에 위치한 군.
개관

창녕군은 동쪽으로는 밀양시, 서쪽으로는 합천군과 의령군, 남쪽으로는 함안군과 창원시, 북쪽으로는 대구광역시 및 경상북도 청도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8°21′∼128°39′, 북위 35°22′∼35°41′에 위치한다. 면적은 537.87㎢이고, 인구는 6만 3817명(2015년 기준)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12개 면, 285개 행정리(139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에 있다.

자연환경

지형은 북동쪽이 대체로 높고 남서쪽이 낮은 편이다. 동북부는 군립공원 화왕산을 중심으로 천왕산·관룡산 등 연봉이 솟아있는 산악지대이다. 서남부는 낙동강 연변의 구릉지와 평야지대로 비옥한 농경지를 이루고 있다.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의 지맥이 남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경상남도의 서부 및 동부에서 말단부를 형성하는 중간지점에 산지부를 형성한다. 저산성 산릉이 북동쪽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다.

대표적인 산으로는 북동부의 군계에 비슬산맥(琵瑟山脈)이 남쪽으로 뻗어 수봉산(秀峰山, 593m)·화왕산(火旺山, 757m)·관룡산(觀龍山, 740m)·영취산(靈鷲山, 737m)·영축산(靈蹙山, 682m) 등이 있다.

서부에는 구룡산(九龍山, 208m)·성지산(聖智山, 200m)·고운봉(高雲峰,241m) 등 표고 200m 내외의 구릉이 북부와 동부의 산지와 계속 연결되고 있다.

하천으로는 낙동강이 군 서쪽의 북부에서 남으로 남류하다가 남지읍 부근에서 서부에서 동류해 온 남강과 합수하며, 유로를 동쪽으로 변경하여 군의 남부를 동류한다. 북동부의 산지에서 발원하는 토평천(土坪川)·운봉천(雲峰川)·계성천(桂城川)·청도천(淸道川) 등이 계곡을 형성하면서 남류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이들 하천 연안에 평야부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군의 남서부 남지 일대는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하여 비옥한 충적평야가 비교적 넓게 형성되고 있다. 이 지역은 늪[沼]과 못[池]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며 관개용 저수지를 포함하여 상당수가 분포되어 있다. 장척늪[丈尺湖 또는 長者湖]·번개늪[電澤]·우포(牛浦) 등이 있다.

기후는 대체로 온난습윤한 난대성기후대에 속하나 내륙의 산간지역은 대륙성 기후의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연평균기온은 13.1℃, 1월 평균기온은 -1.3℃, 8월 평균기온은 26.3℃, 연강수량은 약 1,200∼1,300㎜이다.

중앙부의 일부 화강암지역을 제외하고는 중생대 경상계의 신라통 지층이 널리 분포한다. 식생은 온대남동부 삼림대에 속하며, 편백·리기다소나무·버지니아소나무·오동나무·호도나무 등이 있다.

역사

이 지방은 낙동강 중류에 위치한 곡창지대로서 일찍부터 농경문화가 싹튼 곳으로, 고인돌 등 청동기시대의 유적과 각종 유물들이 군내 여러 곳에서 많이 발견된다. 따라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부족국가가 형성되었는데, 삼한시대의 불사국(不斯國)이 이 지방에 있었던 나라로 비정되고 있다.

이것이 뒤에 비화가야(非火伽倻)로 발전하였을 것이다. 비화가야에 대한 문헌자료는 거의 없으나, 창녕읍 송현리·교리와 계성면의 고분군에서 출토된 부장품들이 다른 가야지역에서 볼 수 없는 수준 높은 유물들이다. 이러한 유물들은 비화가야가 김해의 금관가야나 고령의 대가야에 비해도 손색이 없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창녕은 신라가 서쪽으로 진출하는데 있어 마치 부채살의 꼭지와 같은 교통상의 요충이었으므로 555년(진흥왕 16)에 신라가 비사벌을 병합하고 이곳에 하주(下州)를 설치하여 군사상의 전진기지로 삼았다.

561년에는 왕이 이곳을 순수(巡狩)하고 진흥왕 척경비(眞興王拓境碑)를 세웠다. 그 뒤 565년에 하주가 합천으로 옮겨져 대야주(大耶州)가 되면서, 이곳은 비사벌군(比斯伐郡) 또는 비자화군(比自火郡)이라 불리게 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 화왕군(火王郡)으로 다시 개칭되었고 현효현(玄驍縣)이 영현(領縣)으로 되었으니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지역이다. 또한, 같은 해에 지금의 영산면 지역이 본래 서화현(西火縣)에서 상약현(尙藥縣)으로 개칭되어 밀성군(密城郡: 지금의 밀양시)의 영현이 되었다.

940년(태조 23)에 화왕군이 창녕군(昌寧郡)으로, 현효현이 현풍현(玄豊縣, 또는 玄風縣)으로 각각 개칭되었다.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상약현은 영산현(靈山縣)으로 고쳐져 밀성군의 속현으로 남았다.

1018년(현종 9)에는 창녕군과 현풍현이 밀성군의 속현으로 되었고, 같은 해에 지금의 계성면 지역인 계성현(桂城縣)도 밀성군의 속현이 되었다. 그 뒤 1172년(명종 2)에 창녕군에, 1274년(원종 15)에 영산현에 각각 감무(監務)가 파견되었으며, 1366년(공민왕 15)에는 계성현이 영산현에 합쳐졌다가 1390년(공양왕 2) 다시 밀성군으로 이속되었다.

한편, 고려 말에 왜구가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영산현을 침구하니 그 피해가 막심하였으며, 공민왕 때 정권을 잡고 개혁을 실시하려다 실패한 신돈(辛旽)은 바로 이 지역의 옥천사(玉泉寺: 지금의 창녕읍 옥천리 소재) 출신 승려였다.

1394년(태조 3)에 계성현이 다시 영산현에 합쳐졌으며, 1414년(태종 14)에는 창녕군이 창녕현으로 강등되면서 감무를 현감으로 고치는 규례에 따라 창녕현과 영산현에 현감이 파견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당시의 호구수는 창녕현이 825호 4,352명, 영산현이 257호 1,134명, 계성현이 214호 972명이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郭再祐)가 이끄는 의병들이 남강과 낙동강의 왜군 수송로를 공격하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고, 그 해 8월에는 의병장 성천희(成天禧)가 창녕을 탈환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도 이 지방의 의병들이 산성을 수축하고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

1631년(인조 9)에 성지도(成至道)의 역모사건으로 창녕현이 폐현되어 영산현에 합쳐졌다가, 1637년에 다시 복구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1759년(영조 35)의 호구수는 창녕현이 6,192호 2만 8163명, 영산현이 4,264호 1만 9848명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대구부에 속하여 창녕현과 영산현이 모두 군으로 개편되었으며, 1896년에 경상남도 창녕군·영산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산군이 창녕군에 편입되었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영산에서 구중회(具中會) 등 24명이 결사대를 조직하여 창녕군 내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1956년 영산면민들이 남산에 3·1독립운동기념비를 세우고 매년 삼일민속문화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1922년에는 일본 육군이 대합면 일대를 군용지로 징발하여 군사시설을 설치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이 지역은 낙동강 교두보의 마지막 저지선으로, 치열한 공방전을 한 달 동안 계속한 끝에 공산군의 침공을 격퇴했으나 창녕과 영산 지역은 큰 피해를 입었다. 1955년 7월 1일에 창락면이 창녕면에 편입되었다.

1960년 1월 1일에는 창녕면이, 1963년 1월 1일에는 남지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1년 2월 13일 남지읍에 고곡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3년 부곡면에 유황온천이 개발되었고, 1977년에 군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구마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1976년 이래 소택지역(沼澤地域)인 창녕읍·유어면·대지면·대합면·성산면 등을 포함하는 창녕지구 농업종합 개발사업이 시행되어 광대한 수해 상습지역이 옥토가 됨으로써 창녕군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984년에 창녕읍 교리로 신군청사를 이전하였고 1998년 9월 행정조직 개편으로 고곡출장소가 폐지되었다.

유물·유적

불교문화재로는 창녕읍의 술정리 동 삼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술정리 서 삼층석탑(보물, 1970년 지정), 송현리의 송현동 마애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을 비롯하여 교리의 인양사 조성비(보물, 1963년 지정)가 있다.

또한 옥천리의 관룡사 약사전(보물, 1963년 지정)·관룡사 대웅전(보물, 1963년 지정)·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관룡사 석조여래좌상(보물, 1970년 지정)·관룡사 약사전 삼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관룡사 사적기(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관룡사 부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관룡사 석장승(경상남도 기념물, 1983년 지정)·관룡사 원음각(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가 있다.

그 밖에 말흘리의 석불사 석조보살입상(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직교리의 당간지주(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교상리의 퇴천리삼층석탑(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72년 지정), 도천면 송진리 관음사 미륵불비상(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관음사 석등(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도천 삼층석탑(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이 있다.

그리고 계성면 사리의 석조광배(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고암면 감리의 마애여래입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영산면 구계리의 석조여래좌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영산 법화사 다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성산면 성산초등학교 내의 석조여래좌상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창녕읍 교리의 창녕향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3년 지정), 술정리의 창녕객사(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3년 지정), 영산면 교리의 영산향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3년 지정), 대합면 대동리의 금헌묘 석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94년 지정)·금호재(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8년 지정), 유어면 진창리의 경모당(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광산리에 광산서당(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등이 있다. 창녕읍 송현리·옥천리·하리, 영산면 성내리, 성산면 대견리, 계성면 사리에서는 석기·토기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선사시대의 유물유적으로는 장마면 유리의 창녕지석묘(경상남도 기념물, 1974년 지정)를 비롯하여 영산면 죽사리·신제리, 도천면 도천리, 계성면 사리·광계리, 부곡면 부곡리·청암리 등에 지석묘가 있다. 고분으로는 창녕읍의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사적, 2011년 지정), 계성면 계성리의 계성고분군(사적, 2019년 지정), 영산면의 동리고분군 등이 대표적이다.

그 밖에 이방면·대합면·성산면 등지에도 크고 작은 고분들이 산재해 있다. 창녕읍의 고분군은 1918년에 조선총독부가 대대적으로 발굴하여 마차 20대 분의 막대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토기·청동제무기·장신구 등 출토품들은 경주지역에 비해 손색이 없는 유물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개인 분묘로는 남지읍 성사리의 조우희·조익수의 묘(경상남도 기념물, 1983년 지정), 고암면 우천리에 노변소의 묘(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96년 지정)가 있다. 또한 대지면 모산리의 물계서원소장책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90년 지정), 유어면 광산리의 청주양씨세고목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이 있다.

무형문화재로는 영산면에는 영산쇠머리대기(국가무형문화재, 1969년 지정)·영산줄다리기(국가무형문화재, 1969년 지정)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창녕읍 교리에는 보부상유품(국가민속문화재, 1992년 지정), 계성면에는 창녕 사리 배롱나무군(경상남도 기념물, 1995년 지정)이 있다.

산성으로는 창녕읍 옥천리의 화왕산성(사적, 1963년 지정)과 송현리의 목마산성(사적, 1963년 지정)을 비롯하여, 남지읍 고곡리의 고곡산성(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계성면 신당리의 신당산성(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영산면 교리의 영축산성(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성내리의 영산읍성지(경상남도 기념물, 1983년 지정), 이방면 성산리의 성산산성(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등이 있다.

창녕읍 교상리에 신라시대의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국보, 1962년 지정)와 창녕척화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 도천면 우강리의 충익공 망우당 곽재우유허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대지면 왕산리의 고려충신 성사제신도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가 있다.

또한 장마면 동정리의 어촌 양훤 묘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계성면 사리의 문암정·비각·신초의 초상(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등이 있다.

고가로는 1760년(영조 36)에 건립된 전통적 초가인 창녕읍 술정리의 진양하씨고택(국가민속문화재, 1968년 지정)을 비롯하여, 부곡면 부곡리의 이씨고가(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영산면 교리의 신씨고가(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등이 있다.

또한 팔락정(八樂亭)·학음재(鶴陰齋) 등의 재각이 있는데 팔락정은 유어면 미구리에 있는 정각으로, 조선 광해군 때의 학자 정구(鄭逑)가 창녕현감으로 부임하여 직접 학문을 가르치고 장려할 목적으로 1580년(선조 13)에 지은 것을 1582년(철종 3)에 중수한 것이다.

학음재는 유어면 세진리에 있는 재각으로, 고려 공민왕 때 문신인 조계방(曺繼芳)을 추모하여 1915년 후손들이 세운 것을 1965년에 재건하였다. 얼음저장고로는 창녕읍 송현리의 창녕 석빙고(보물, 1963년 지정), 영산면 동리의 영산 만년교(보물, 1972년 지정), 영산면 교리의 영산 석빙고(보물, 2011년 지정) 등이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창녕향교와 영산향교가 있었다. 창녕향교의 설립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1914년에 중수되었다. 영산향교는 1622년(광해군 14)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이 1604년(선조 32)에 복구되었다.

서원으로는 1620년(광해군 12)에 설립된 관산서원(冠山書院)이 고암면 우천리에 있었는데 1711년(숙종 37)에 사액되었다가 1869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밖에 1695년 성산면 후천리에 설립된 연암서원(燕巖書院), 1712년 대지면 왕산리에 설립된 물계서원(勿溪書院), 1703년 부곡면 부곡리에 설립된 덕봉서원(德峰書院), 1701년 도천면 도천리에 설립된 도천서원(都泉書院), 1713년 고암면 억만리에 설립된 고강서원(高岡書院), 1795년(정조 19) 유어면 광산리에 세워진 광산서원(光山書院), 1829년(순조 29) 이방면 동산리에 건립된 동산서원(東山書院), 1852년(철종 3) 고암면 우천리에 설립된 소곡서원(蘇谷書院) 등이 있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5년에 남창학교(南昌學校)가 최초로 개교하여 1910년에 창녕보통학교로 개편되었다. 1908년에 개교한 사립경명학교는 1911년에 영산보통학교로 되었다.

1920년대에 들어 남지·이방·대합·부곡·길곡·고암·유어·장마보통학교 등이 잇달아 개교하여 1면 1교의 체제가 갖추어졌다. 1926년에 지금의 영산중학교인 창녕공립농업학교가 개교하였다. 1930년대에는 농업보습학교가, 1945년에는 창녕중학교가, 1947년에는 남지중학교가 개교하였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17개교, 중학교 10개교, 고등학교 8개교가 있다. 창녕읍 교상리에 창녕도서관이 있다.

1961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영산삼일민속문화제는 영산쇠머리대기, 영산줄다리기, 문호장굿, 구계목도놀이 등 이 지방 민속문화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종합문화행사이다.

창녕군의 옛 이름인 비화가야(非火伽倻)의 뜻을 되새기고 추수이전에 대풍을 기원하는 비사벌문화제는 경남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제로 자리잡고 있다. 이외에도 화왕산갈대제, 낙동강용왕제, 부곡온천제 등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펼쳐진다.

민속

이 고장의 대표적 민속놀이로는 대합면 십이리의 농악과 영산면의 문호장굿·영산쇠머리대기·영산줄다리기 등을 들 수 있다.

문호장(文戶長)은 이곳에서 신인으로 숭앙되는 인물인데, 단오날에 그를 추모하는 굿을 거행한다. 마을에서는 음력 4월 15일에 호장계총회를 열어 호장·수로(首奴)·암무이[女巫]·무부(巫夫)를 선정한다.

이들은 4월 25일부터 굿이 시작될 때까지 목욕재계하며 집에 황토를 뿌리고 금줄을 쳐 부정을 막고 제물을 비롯하여 굿청과 말 4필을 마련하는 등 제반준비를 한다. 5월 1일 아침부터 굿이 거행되는데, 상봉당·말재죽골(호장의 유적지)·두릉각시왕신당에 제물을 진설하고 호장·수로·암무이의 순으로 사배한 후 마당굿을 벌인다.

이때 암무이는 10여 명의 무당과 7∼8명의 무부(잽이)를 대동하여 큰 굿판이 된다. 각 당을 옮겨 다니며 마당굿을 논 뒤에는 현청에 들렀다가 굿청에서 막음굿을 한다.

2일은 쉬면서 다음 굿을 준비하고, 3일 새벽에는 남산먹이지성국당에 제물을 진설하며 삼시랑당에서 제례하고는 가망굿을 한다. 지성국당에 갈 때 신마(神馬)를 앞세우고 가는데, 이 때 본처와 첩의 패거리들이 싸우는 연희가 벌어진다.

4일에는 전날의 굿을 되풀이하고 굿청에서 성주풀이를 한다. 5일에는 제물을 새로 차려 호장당에 제사하고 전과 같은 절차를 끝낸 뒤, 오후에 ‘열네 바퀴돌기’라 하여 지세골에서 왕신당까지 1㎞를 신마를 앞세우고 호장·수로·암무이가 말을 타고 돈다.

이때 사람들이 회초리로 말을 때리면 안장도 없는 말 위에서 춤을 추며 뛰어난 재주를 펼친다. 6일에 호장의 혼백을 배송하는 굿을 벌임으로써 놀이를 마감한다. 이 놀이는 일제 말에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 복원되었으나 점점 쇠퇴하고 있다.

영산쇠머리대기와 영산줄다리기는 각각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지금은 3·1절에 행하지만, 원래는 풍농을 기원하는 상원놀이로 온 군민의 대동놀이여서 군민의 단결과 애향심을 기르는 데 의의가 있다. 이 밖에도 옥천골과 연당골의 서낭기싸움, 동·서탑의 탑싸움·쇠싸움 등이 있다.

군내에는 아직도 동제를 지내는 곳이 많으며 서낭대를 가지고 있는 데가 많다. 대표적인 당집으로는 창녕읍 옥천리와 영산면 성내리에 있는 것을 들 수 있고, 창녕읍과 계성면의 신당리 등 당집과 관련된 지명도 허다하다.

제명은 당산제 혹은 동신제로 불리며 신명은 거의 당산신이고 서낭신인 곳도 있다. 제일은 상원이 가장 많고 10월 1일, 정월 15일 순이며, 제단은 당집·당나무·돌당산[積石] 등 형태가 다양하다. 제관은 대[竿]를 잡게 하여 선정하는데, 길게는 1년, 짧게는 3일간 엄격한 금기를 지킨다.

설화·민요

이 고장의 대표적 설화로 「문호장전설」과 「창녕조씨(昌寧曺氏)의 득성(得姓)전설」을 들 수 있다. 문호장은 약 360년 전 영산에 살던 사람이라 하는데, 관원에 억눌린 평민의 원한을 푼 영웅이요 신인(神人)으로 믿어지고 있다.

한번은 감찰사가 순무 중 영산현에 이르러 길가에 놓인 농부들의 밥광주리를 밟아버리자, 이를 본 문호장은 신술로 말발굽이 땅에 붙어 꼼짝도 못하게 하였다. 화가 난 감찰사가 문호장을 문초하는데, 곤장을 치면 몽둥이가 부러지고, 활을 쏘면 살이 하늘로 향하고, 총을 쏘면 총알 대신 개구리가 튀어나왔다.

놀란 감찰사는 경산의 자인에다 문호장을 투옥했으나, 문호장은 압송한 나졸보다 먼저 영산에 나타나니 문호장이 둘이 된 셈이었다. 이에 감복한 감찰사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소원을 묻자, 문호장은 자기에게 자식이 없으니 대신 제사를 지내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 뒤 문호장이 단오날에 죽었으므로 영산에서는 호장계원이 단오굿과 더불어 그를 기리는 제를 지내게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다.

「창녕조씨의 득성전설」은 조씨 시조의 모친이 나면서부터 배앓이를 했는데, 화왕산의 못이 영험이 있다 하여 목욕재계하고 기도하자 병이 완치되고 급기야 생남하게 되었다. 그 아들이 바로 조계룡(曺繼龍)으로 창녕조씨의 시조가 되었다 하는데, 지금도 화왕산에는 용지(龍池)와 창녕조씨득성비가 있다.

이 밖에도 「연화당 연당각씨」·「쥐설과 연잎설」·「용마바위와 아기장군」 등의 인물설화와 「장자늪과 부처고개」·「말무덤산」·「역마등 장사등」·「무정치고개」·「신선바위」·「운봉의 벌바위」 등의 지명설화가 다수 전한다.

이 고장에는 「정지」라고 불리는 「모내기노래」·「김매기노래」·「보리타작노래」·「불미노래」·「망깨노래」·「베틀노래」·「니비(누에)노래」·「나무꾼노래」 등의 노동요, 「지신밟기노래」·「상여소리」·「김선달네 굿노래」(일명 청대방타령) 등의 의식요, 술좌석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흔들거리며 부르는 「흔들개」등의 유희요, 기타 타령 및 동요 등이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대장간에서 풀무질하면서 부르는 「불미노래」는 “불 불 불미야 불 불 불미야/ 이불미가 뉘불민고 경상도 도대불미/ 나라에 충신불미 부모에 효자불미/ …… 쇠는 어디쇤고 황해도 자도쇠요/ 숯은 어디숯인고 양산내포 숯이요/ …… 우리 삼부자 똑딱똑딱 잘살아보자/불 불 불미야 불 불 불미야”라고 부른다.

노동형태가 변화된 오늘날에는 잘 부르지 않는 「망깨노래」가 수집되어 있다. 그 가사는 “해이야라 차하/ 해이야라 차하/ 천깨망깨는 공중에 놀고/ 해이야라 차하/ 열두자 말뚝은 땅밑에 논다/ 해이야라 차하/ 줄많이 땡기면 돈많이 난다/ 해이야라 차하/ 저기가는 저할마시/ 해이야라 차하/ 딸있거든 사위보소/ 해이야라 차하 ……”와 같다.

「나무꾼노래」는 “이후후후후/ 가자가자 아하 아하 아하야/ 나는간다 아하 아하 아하야아/ 다리다리 이히 이히 이히여/ 다리야 아하 아하 아으/ 다리아파 아하 아하 아하야/ 못가겠다 아하 아하 아아 ……”처럼 부른다.

「진금이타령」은 대화체 노래로 “…… (민금이)야 여봐라 진금아 내돈석냥 내어라/ (진금이)여 여봐라 민금아 네돈석냥 내가주마/ 내허리를 베어다 목매통에 팔아도/ 네돈석냥 내가주마 ……”라고 하여, 민금이가 진금이에게 꾸어준 돈 석냥을 내라고 하면 진금이는 사지를 비롯한 온몸을 팔아서 갚겠다는 내용이다.

이 밖에도 「양산도」·「외로운 아이노래」·「각설이타령」·「알밤노래」·「쌍가락지노래」·「등노래」 등이 있다.

산업·교통

이 지역은 농업 중심 지역으로서 시설채소가 많이 생산되며, 편리한 교통, 풍부한 공업용수, 우수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21세기 지향 지식 기반 산업의 요람으로 거듭나고 있다.

농경지면적은 2013년 기준으로 논이 54.61㎢, 밭이 92.25㎢이다. 이는 군내에서 낙동강 및 남강이 합류되어 동쪽으로 흐르면서 하천유역에 해당되는 남부지구를 평야지대로 만들면서 관개용수의 취득을 용이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도시적 토지이용이 나타나는 남지 및 창녕읍의 시가지 계획면적은 21.49㎢에 불과하며 나머지 510.14㎢가 지목상 임야나 기타지구로 되어 있다. 시가구역에 해당되는 두 읍의 면적 중 도시계획이 적용되는 용도지역 면적은 주거지역이 1.81㎢, 상업지역이 0.24㎢, 공업지역이 0.07㎢로 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주곡인 쌀 외에도 보리·콩·고구마·기타 잡곡, 과일 등이 있고, 고추·양파·마늘·수박 등의 채소류 생산도 비교적 많은 편이다. 한편, 축산업도 활발한 편인데 축산물은 한우·돼지·닭·젖소·산양·사슴·오리·꿀벌 등의 사육으로 농가부업을 하고 있다.

제조업종으로는 음식료품·섬유제품·기계 및 장비제품·비금속광물제품·조립금속제품 등이 있으나 고용기반이 대단히 취약한 편이다. 상설시장은 없으나, 그 중 창녕시장은 양파시장으로 명성을 지니고 있으며, 남지시장은 채소시장으로 유명하다.

그 밖에도 창녕읍의 창녕장이 3·8일, 남지읍 남지장과 대합면 십이리장이 2·7일, 영산면 영산장이 5·10일, 이방면 이방장이 4·9일 등에 개시된다.

동서남북을 관통하는 중부내륙고속국도와 국도를 통해 창원, 대구, 밀양, 합천, 의령 등이 1시간 이내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교통은 국도 5호가 달성∼함안 간, 국도 20호가 의령∼청도 간, 국도 24호가 합천∼밀양 간 등으로 나 있다. 중부내륙고속국도가 군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고 있으며 창녕, 남지, 영산 등 3개소에 나들목이 있어 접근이 매우 용이하다.

관광

옛 가락국의 지역으로서 가야고분을 비롯하여 각종 유적과 유물이 산재하는 역사적인 곳이다. 구마고속도로의 개통과 함께 국내 제일의 온천위락지인 부곡온천이 개발됨에 따라 새로운 관관명소로 등장했다.

부곡온천은 1973년에 발견·개발되었으며, 1977년 온천수를 중심으로 한 거문리 일대가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온천관광지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수온은 73℃이며, 수질은 자연유황수로 피부병·위장병·신경통·부인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특히, 하루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부곡하와이는 초대형 온천탕 및 각종 놀이터와 정원, 극장무대 등을 갖추고 있는 위락의 명소이다.

창녕읍 교상리에 있는 만옥정(萬玉亭)은 명승지이며, 또한 신라 진흥왕이 가락국을 정복·통합한 기념으로 건립한 진흥왕 척경비가 있다. 화왕산은 창녕의 진산으로 임진왜란 때 곽재우가 왜병을 섬멸시킨 전승지로도 유명하고, 사적으로 지정된 화왕산성이 있다. 경치 또한 좋아서 자하골과 정상의 갈대밭은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다.

이 밖에 583년(진평왕 5)에 건립된 관룡사, 1780년(정조 4)에 만들어진 영산 만년교, 1742년(영조 18년)에 건립된 창녕 석빙고 등과 철새도래지인 목포·우포늪 일대의 자연생태 보존지역도 관광명소로 손꼽힌다.

창녕읍 송현동에 있는 창녕박물관은 화왕산의 서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교동고분군과 인접하며 2개의 전시실과 시청각실 등을 갖추고 있다. 가야시대의 유물 총 166종 276점이 전시되어 있고 교동고분군과 계성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이 박물관의 주요 유물들이다. 가야고분 축조과정을 설명하는 모형관(디오라마)이 따로 설치되어 있다.

영산면 일원에서 개최되는 삼일민속문화제는 3·1독립운동 발상지인 영산지방의 항일 애국선열들의 민족혼을 후손에게 고취시키고, 영산쇠머리대기와 영산줄다리기 등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 1961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다.

읍·면
  1. 남지읍(南旨邑)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읍으로 면적은 55.25㎢이고, 인구는 1만 2408명(2015년 기준)이다. 읍 소재지는 남지리이다. 본래 창녕현 가장 남쪽 골짜기에 있어 남곡면(南谷面)이라고 하여 고곡·대곡 등 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산군 도사면(道沙面) 8개 리가 병합되었다. 1936년에 남지면으로 개칭되었고, 1963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1년에 남지읍 고곡출장소가 설치되었다.

읍 전역이 200m 이하의 구릉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낙동강이 읍의 서부와 남부 경계를 따라 흐르고 계성천과 고곡천 등의 작은 하천들이 구릉 사이를 흘러 낙동강에 유입한다. 하천 주변에 넓은 충적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이며, 복숭아와 고추·양파·마늘 등의 채소, 참깨의 생산이 많다. 또한, 군내 제1위의 누에고치 생산지이며, 양봉과 양계도 활발하다. 이 읍은 농업뿐만 아니라 낙동강 유역의 주요 하항으로 농산물의 집산이 활발하고, 정미업·조면업이 발달하였다.

교통은 읍의 동부를 중부내륙고속국도가 통과하고, 대구·창원·밀양·합천 등지로 연결되는 국도와 지방도가 지나고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시남리의 고분, 고곡리의 고곡산성지·구진산성지 등이 있다.

남지(南旨)·마산(馬山)·학계(鶴桂)·용산(龍山)·신전(新田)·성사(成士)·고곡(鼓谷)·아지(阿支)·수개(樹介)·시남(詩南)·칠현(漆峴)·반포(泮浦)·대곡(大谷)·월하(月下) 등 14개 리가 있다.

  1. 창녕읍(昌寧邑)

군의 중앙에 위치한 읍으로 면적은 61.41㎢이고, 인구는 1만 7141명(2015년 기준)이다. 읍 소재지는 송현리이다. 본래 창녕현 지역으로 읍내면(邑內面)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암면의 2개 마을이 병합되었고, 1918년에 창녕면으로 개칭되었다. 1955년에는 창락면(昌樂面) 전역이 편입되었고, 1960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읍의 동쪽에 영취산, 서쪽에 성지산, 남쪽에 지경골과 비들재, 북쪽에 화왕산과 관룡산 등이 있어 다른 면과의 경계를 이룬다. 하천으로는 화왕산과 관룡산에서 계성천이 발원하여 계성면으로 들어가고 토천(兎川)과 남창천(南昌川)이 서류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이며 특히 양파 등의 소채생산이 많다. 양파는 냉동저장시설을 이용하여 수출한다. 교통은 중부내륙고속국도가 지나며, 대구·창원·밀양·합천 등지로 연결되는 국도가 지나고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교상리에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술정리에 창녕객사·동 삼층석탑·서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송현리에 송현동 마애여래좌상, 옥천리에 화왕산성과 관룡사 약사전·대웅전·용선대 석조여래좌상·약사전 삼층석탑, 교리에 고분군·인양사 조성비, 송현리에 고분과 목마산성·석빙고 등이 있다. 그 밖에 술정리에 하씨초가가 있다. 교동 고분군에 위치한 창녕박물관에는 많은 문화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송현(松峴)·교하(橋下)·교(校)·말흘(末屹)·교상(橋上)·술정(述亭)·직교(直橋)·조산(造山)·도야(道也)·하(下)·토천(兎川)·탄하(呑下)·신촌(新村)·용석(龍石)·외부(外釜)·여초(餘草)·옥천(玉泉) 등 17개 리가 있다.

  1. 계성면(桂城面)

군의 중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은 27.86㎢이고, 인구는 2,533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명리이다. 본래 계성현 지역인데 1394년(태조 3)에 영산현 계성면이 되어 남방(南防)·천리 등 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고면(麻姑面) 오암리(鰲巖里) 일부가 병합되어 창녕군에 편입되었다. 영산면과의 사이에 영축산이 있고, 동쪽은 화왕산의 연봉에 접하며 서쪽은 평야를 이룬다. 계성천이 서쪽으로 흐르다가 남쪽의 낙동강으로 유입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특산물로는 송이재배가 활발하여 양송이 가공공장이 있다. 교통은 중부내륙고속국도와 대구∼창원 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난다.

문화유적은 계성리에 고분군, 신당리에 신당산성지, 사리에 석조광배 등이 있다. 명승지로는 사리의 문암정과 옥천계곡, 사은암(四隱巖)·약천(藥泉) 등이 있다. 계성리에 영산신씨(靈山辛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명(明)·사(舍)·신당(新堂)·계성(桂城)·광계(廣溪)·봉산(鳳山)의 6개 리가 있다.

  1. 고암면(高巖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은 44.45㎢이고, 인구는 2,202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중대리이다. 본래 창녕현 지역으로 예로부터 바위가 많아 고암면이라고 하여 중대·억만 등 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도야·하 등 2개 리가 읍내면에 이관되었고 월미면(月未面)의 계상·우천 등 3개 마을이 편입되었다. 화왕산의 북쪽에 북각봉(北角峰)이 있어 계곡이 깊다. 고암면과 성산면 사이에 왕령산(旺嶺山, 248m)이 있고, 방골재(258m)·산영재·감골재 등의 고개가 있다. 평지로는 기름진 어물리들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그 밖에 감·복숭아·양파 등이 많이 생산되고 누에치기도 한다. 감리에서 송이버섯·풍란·석란이 자생한다. 교통은 밀양·합천 및 청도 등으로 통하는 국도가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감리의 마애여래상, 간상리의 대효각(大孝閣), 억만리의 창효각(彰孝閣), 대암리의 효절각(孝節閣) 등이 있다. 중대리 상대마을은 밀양손씨(密陽孫氏), 계상리은 서홍김씨(瑞興金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중대(中大)·억만(億萬)·원촌(元村)·대암(大巖)·간상(澗上)·우천(牛川)·계상(桂上)·감(甘) 등 8개 리가 있다.

  1. 길곡면(吉谷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은 27.54㎢이고, 인구는 1,557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증산리이다. 본래 영산현 길곡부곡(吉谷部曲) 지역으로 길곡면이라 하여 금곡·내동 등 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녕군에 편입되어 길곡 등 4개 리로 개편되었다. 골짜기의 생김이 매우 깊고 낙동강이 있는 남쪽으로 나오면서 넓어져 기(箕)와 같이 생겼으므로 기곡(箕谷)이라고 하다가 조선시대에 길곡으로 되었다.

도천면과의 사이에 석천산(石泉山, 344m)·도덕봉(道德峰)이 있어 낮은 산악을 형성한다. 남쪽은 전 지역이 낙동강에 임하여 있고 길곡천(吉谷川)이 길곡리의 사창고개와 지피실고개에서 시작되어 남쪽의 증산리를 거쳐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특산물로는 무·배추가 있고 그 밖에 수박·참외·땅콩·감자도 많이 난다. 교통은 창녕과 부곡으로 통하는 지방도가 낙동강을 따라 통과하고 있다. 증산리의 하내마을에 벽진이씨(碧珍李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증산(曾山)·오호(五湖)·마천(馬川) 등 4개 리가 있다.

  1. 대지면(大池面)

군의 중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은 17.99㎢이고, 인구는 2,614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모산리이다. 본래 창녕현 지역으로 지포면(池浦面)이라 하여 왕산·모산 등 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초면(大招面)의 창산 등 5개 마을이 병합되어 두 면의 이름을 따서 대지면이 되었다. 대부분이 평야지대이며, 토평천이 모산리를 거쳐 우포·호포로 들어간다.

토평천 연변은 예전에 배후습지로 늪지였으나 수리시설로 인해 현재 논으로 이용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특산물로는 양파가 유명하여 양파저장고가 있다. 또한 배와 복숭아도 생산된다.

교통은 중부내륙고속국도와 대구∼창원을 잇는 국도, 밀양∼합천 간의 국도가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왕산리에 고려충신 성사제신도비, 모산리에 맥산재(麥山齋)·영보각(永寶閣)에 족보·물계서원현판·우계전집목판이 있다. 모산리에 창녕성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모산(牟山)·왕산(旺山)·석(石)·창산(蒼山)·효정(孝亭)·본초(本招)·구미(九尾)·용소(龍沼) 등 8개 리가 있다.

  1. 대합면(大合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은 46.54㎢이고, 인구는 4,080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십이리이다. 본래 창녕현 지역으로 큰 골짜기 안에 있다고 하여 대곡면(大谷面)이라고 하여 내우·대곡 등 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합산면(合山面)의 대동 등 7개 이와 개복면(介福面)의 모전 등 3개 리가 병합되었고 대곡과 합산의 이름을 따서 대합면이라 하여 16개 리로 개편되었다.

1922년 대동·합·목단·내우·도개·신당·주매리 등의 일부가 일본의 군용지로 되어 이 곳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 살다가 광복 후 다시 돌아와 살게 되었다. 성산면과의 사이에 있는 태백산(泰白山, 238m)과 왕령산을 비롯하여 야산이 많으며, 늪·못·저수지가 30여 곳이나 된다.

농산물 중 특히 복숭아와 배가 유명하고 양파도 많이 생산된다. 교통은 중부내륙고속국도와 대구∼창원 간의 국도가 지나며 창녕읍∼이방면을 잇는 지방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합리에 고분과 벽진이씨열녀문이 있고 대동리에 금헌묘 석상과 금호재가 있다. 토산리와 십이리에 밀양박씨, 신당리에 달성서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십이(十二)·등지(燈旨)·장기(場基)·모전(茅田)·소야(所也)·주매(主梅)·신당(神堂)·토산(兎山)·평지(坪旨)·도개(道介)·내울(內鬱)·대곡(大谷)·목단(牧丹)·이방(伊方)·대동(大同)·합(合) 등 16개 리가 있다.

  1. 도천면(都泉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은 29.37㎢이고, 인구는 2,937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도천리이다. 본래 영산현 지역으로 예전에 도천향(都泉鄕)이 있었으므로 도천면이라 하여 논동·덕곡 등 1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녕군에 편입되어 8개 이로 개편되었다. 길곡면과의 사이에 도덕봉·석천산, 부곡면과의 사이에 원앙고개, 북쪽의 영산면과의 사이에 함박산이 있어 산맥을 이루고 있다. 남쪽은 낙동강에 접하여 영남평야(靈南平野)에 들어서 곡창지대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그 밖에 사과·자두·배·감 등의 과일이 많이 나고 참외·고구마·감자의 생산도 많다. 교통은 대구∼마산 간의 국도와 남지에서 밀양시 하남을 잇는 지방도가 지난다.

문화유적은 송진리에 도천 삼층석탑·관음사 미륵존불상·관음사 석등, 도천리에 지석묘 등이 있다. 우강리에 충익공 망우당 곽재우유허비·우강리의 망우정과 요강원(要江院)이 있다. 도천리에 영산신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도천(都泉)·덕곡(德谷)·예(禮)·논(論)·우강(友江)·송진(松津)·일(一) 등 8개 리가 있다.

  1. 부곡면(釜谷面)

군의 남동단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은 40.13㎢이고, 인구는 3,971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부곡리이다. 본래 영산현 지역으로 부곡(가마실)의 이름을 따서 부곡면이라 하여 강정·현곡 등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산부 북면(北面)의 하천리(下川里) 중사도(中沙島)가 병합되어 10개 리로 개편되었다. 면의 북쪽으로 밀양시와의 사이에 덕암산(德巖山, 545m)을 좌우로 큰고개·삼방고개가 있고, 도둑바위가 있어 군계를 이룬다.

남쪽은 전 지역이 낙동강에 임하고 있고 청도천이 수다리에서 학포리까지 흘러 밀양시와 경계를 이룬다. 온정천(溫井川)은 거문리에서 시작하여 부곡리를 지나 남쪽의 임해진에서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매실과 살구가 특산물로 유명하다. 교통은 영산·남지와 밀양시 하남, 창원시로 통하는 지방도가 여러 갈래로 지난다. 문화유적은 부곡리·청암리에 지석묘군, 구산리에 의산사(宜山祠), 부곡리에 덕봉서원터, 학포리에 독곡사당(獨谷詞堂) 등이 있다. 명승지로는 거문리 일대의 부곡온천과 청암리의 임해정이 있다.

거문리에 안동김씨, 노리에 상주주씨(尙州朱氏), 부곡리에 벽진이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1973년에 유황온천이 발견되어 1977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온천관광지로 전국적인 명성을 가졌으며 1997년에는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부곡(釜谷)·거문(巨文)·사창(社倉)·온정(溫井)·청암(靑巖)·노(魯)·학포(鶴浦)·구산(九山)·비봉(飛峰)·수다(水多) 등 10개 리가 있다.

  1. 성산면(城山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은 47.08㎢이고, 인구는 1,691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냉천리이다. 본래 창녕현 지역으로 조선시대 성산향(城山鄕)의 위쪽이 되므로 성상면(城上面)이라 하여 가복(加福)·대산 등 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하면(城下面)의 냉천 등 4개 마을이 병합되었다. 1932년에 가복리가 덕곡리로 고쳐졌다. 임야면적이 대부분을 차지하여 경상북도와의 경계에 수봉산·비티재(290m)·묘봉산(妙峰山, 513m)·천왕산(天王山, 619m)·연화봉(蓮華峰) 등이 있다.

운봉천이 덕곡리 동남쪽 천왕산 밑에서 발원하여 서북쪽으로 흘러내린다. 감과 양파가 많이 생산된다. 교통은 대구∼창원 간의 국도가 면의 서부를, 합천∼밀양을 잇는 국도가 동부를 지난다. 문화유적은 운봉리에 고려장터 고분, 대산리에 불의대(拂衣臺)가 있다. 대산리의 대뫼마을에 파평윤씨, 방리에 순천박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냉천(冷泉)·정녕(丁寧)·대견(大見)·후천(後川)·대산(垈山)·연당(蓮塘)·운봉(雲峰)·방(芳)·덕곡(德谷) 등 9개 리가 있다.

  1. 영산면(靈山面)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은 29.36㎢이고, 인구는 6,004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서리이다. 본래 영산현 소재지였으므로 읍내면이라 하여 교동·구계 등 1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계성면의 둔암리(屯巖里) 일부가 병합되어 9개 리로 개편되었다. 면의 동남쪽에 함박산, 북쪽에 영축산이 있어 북동부는 험하지만 서남쪽으로 가면서 길게 평야가 전개된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특산물로 양파·미나리가 많이 생산되고 딸기·감·복숭아·매실도 생산된다. 구계리에 송이버섯·풍란·석란이 자생한다. 교통은 중부내륙고속국도와 대구∼창원 간의 국도 및 남지·도천과 밀양시 하남 등으로 통하는 지방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죽사리에 지석묘군, 교리에 영취산성과 석빙고·영산향교, 성내리에 영산읍성지와 영산 보림사 삼층석탑, 구계리에 영산 법화암 다층석탑과 석조여래좌상, 동리에 만년교(남천석교), 서리에 육모정 등이 있다. 무형문화재로 영산쇠머리대기·영산줄다리기 등이 있다.

명승지로는 영산연지(靈山硯池)·영산약천·남산호국공원 등이 있고, 전설적 인물인 문호장의 유적도 있다. 매년 2월 28일부터 3월 3일까지 삼일민속문화제가 열린다.

서(西)·구계(九溪)·교(校)·성내(城內)·동(東)·죽사(竹紗)·신제(新堤)·월령(月嶺)·봉암(鳳巖) 등 9개 리가 있다.

  1. 유어면(遊漁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은 33.31㎢이고, 인구는 1,899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부곡리이다. 본래 창녕현 지역으로 유장면(遊長面)이라 하여 대대·선소 등 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어촌면(漁村面)의 진창·풍조·광산 등 3개 리가 병합되어 두 면의 이름을 따서 유어면이 되었다. 창녕읍과의 사이에 성지산이 있고 서쪽은 낙동강에 접하고 있다. 창녕읍에서 흘러오는 하천이 진창리를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예전에는 면화재배가 많았다.

주요 농산물은 쌀 외에 수박·무·매실·배추·감 등이다. 교통은 합천∼밀양 간의 국도가 면을 동서로 지나고 남지로 통하는 지방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광산리에 광산서원과 청주양씨 세고목판이 있으며, 진창리에 경모당, 미구리의 팔락정, 가항리의 모래사장이 있다. 가항리에 창녕성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부곡(釜谷)·미구(尾九)·가항(加項)·세진(世津)·대대(大垈)·선소(船所)·진창(陳倉)·광산(光山)·풍조(楓槽) 등 9개 리가 있다.

  1. 이방면(梨房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은 46.41㎢이고, 인구는 2,856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안리이다. 본래 창녕현 지역으로 배말리(梨旨浦)와 문방산(文房山)의 이름을 따서 이방면이라 하여 모곡·상동 등 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오야면(五也面)의 거남 등 7개 마을이 병합되어 13개 리로 개편되었다. 대합면과의 사이에 구룡산(九龍山, 208m)과 작은 구릉들이 있고 서쪽에는 낙동강 본류가 흐르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맥류·소채류이며, 단감·살구와 양파·땅콩·고구마·감자 등이 생산된다. 교통은 창녕읍으로 통하는 지방도와 달성군 현풍면으로 통하는 지방도가 지난다.

문화유적은 성산리에 성산성지, 거남리·송곡리·등림리에 고분군이 있다. 등림리의 황강(黃江)과 만나는 곳의 강변과 버들숲 절벽이 이수정(二水亭)·어부정(漁夫亭)과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동산리에 천연동굴이 있다. 안리에 충주석씨, 석리·현창리·동산리에 광주노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안(雁)·동산(東山)·석(石)·현창(玄倉)·성산(城山)·상(上)·모곡(牟谷)·옥천(玉泉)·초곡(草谷)·거남(巨南)·송곡(松谷)·장천(長川)·등림(登林) 등 13개 리가 있다.

  1. 장마면(丈麻面)

군의 중남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은 29.99㎢이고, 인구는 1,924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강리이다. 본래 영산현 지역으로 천태산의 마고(麻姑)할미가 하강하여 놀다 간 곳이라 하여 마고면이라 하여 강동·오암 등 1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가면(丈加面)의 동점 등 10개 리가 병합되어 두 면의 이름을 따서 장마면이라 고치고 8개 리로 개편되었다. 평지와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성천이 면의 동북쪽에서 중앙을 지나 남류하고 있다.

1925년에 영남수리조합이 설립되고 관내 전답이 개간·경지정리됨에 따라 영남평야의 일부를 차지하여 곡창지대를 형성하였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특용작물로는 감자·땅콩 등을 재배한다. 교통은 창녕·남지·유어와 밀양시 하남으로 통하는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문화유적은 유리에 지석묘, 동정리에 어촌 양훤 묘비가 있다. 강리에 밀양박씨, 동정리에 단양우씨(丹陽禹氏), 산지리에 김해김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강(講)·유(幽)·장가(丈加)·초곡(草谷)·산지(山旨)·신구(新龜)·동정(東亭)·대봉(大鳳) 등 8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창녕군통계연보』(창녕군, 2008)
『창녕군지』(창녕군지편찬위원회, 2003)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창녕군지』(창녕군지편찬위원회, 1984)
『내고향 경남』(경상남도, 1983)
『한국의 발견: 경상남도』(뿌리깊은나무, 1983)
『경남교육사』(경상남도교육위원회, 1980)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80)
창녕군청(www.cng.go.kr)
경상남도 창녕교육지원청(www.educn.or.kr)
집필자
이성학·김덕현·박경원·김무조·강용권·여증동·오건환·김일곤·김원경|배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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