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택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응교, 대사간, 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언성(彦誠)
이칭
무역(無斁)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537년(중종 32)
본관
인천(仁川)
주요 관직
부제학
관련 사건
정유삼흉사건
정의
조선 전기에, 응교, 대사간, 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인천(仁川). 초명은 무역(無斁). 자는 언성(彦誠). 채신보(蔡申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채연(蔡年)이고, 아버지는 채준(蔡浚)이며, 어머니는 김여영(金麗英)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24년(중종 1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지평·부교리·장령·응교 등을 거쳐 1535년 대사간, 그리고 이듬해 부제학이 되었다.

재임 중 당시 권신 김안로(金安老)의 당여(黨與)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무고하여 화를 입히고, 또한 조정의 상하 신하들까지 이간시키는 등 분규를 일으킴이 심하여 김안로·허항(許沆)과 함께 3흉(凶)으로 일컬어질 정도였다. 김안로·허항과 함께 1537년 문정왕후(文定王后) 폐위를 모의하다가 유배되어 사사(賜死)되었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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