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모두 433행에 이르는 장편가사이다.
첫머리가 “어호 친구네야 팔자타령 드러보소 해배한지 두달 만의 두번구양 무삼일고”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1863년(철종 14)에 고석현(高奭鉉)의 모함에 빠져 당돌히 상소를 올렸다가 신지도(薪智島)로 유배되어 약 1년간을 지낸 뒤에 고종 즉위로 해배되어 여주(驪州) 생가에서 머무는데, 다시 같은 곳으로 정배되어 신지도에 이르러 가지가지 고생하는 이야기들을 자탄(自嘆)으로 표현한 것이다.
맨끝에는 “획죄우쳔 무소도은 모르는게 아니언만 압압히 말못ᄒᆞ고 식ᄌᆞ우환 진졍ᄒᆞᄂᆡ”로 끝맺고 있다.
섬지방의 귀양살이가 얼마나 어려웠었나를 실감시켜 주는 점과 당시의 섬지방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원래 이 작품은 천안의 장씨가 소유하고 있는 원본의 복사물을 김영수(金榮洙)가 학계에 처음 보고하여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