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유치구(柳致球)가 지은 고전소설. 1권. 한문필사본. 현재 정봉진(鄭奉鎭) 소장본과 유민희(柳玟熙) 소장본이 전한다. 정봉진 소장본은 ‘유묵등초(遺墨謄草)’라는 표제를 가진 서한필사본(書翰筆寫本)에 부록된 것으로 필사자가 정창익(鄭昌翼)이다.
『천군실록』은 처음에 작자가 정창익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하였다. 김광순(金光淳)의 『천군소설연구』에서 유치구의 작품임을 밝혔다. 유민희 소장본에 실려 있는 발문에 의하여 유치구의 저작임이 더욱 분명하여 졌다. 저작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천군실록」 발문에 의하면 학문적으로 원숙한 경지에 이르러 심경정학(心經正學)을 자기 나름대로 펼 수 있었던 때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그의 만년의 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천군실록』의 저작동기는 김우옹(金宇顒)의 「천군전(天君傳)」과 석감(石嵌)의 「구서(軀書)」를 보니 「천군전」은 너무 간략하고 「구서」는 지나치게 번잡하여 두 작품을 절충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이루어놓은 것이라고 밝혔다.
『천군실록』은 「천군전」의 구조에다가 「구서」에 나오는 신체의 일부 명칭과 또한 심성론에 등장하는 용어들을 차용하여 이를 의인화하여 작중인물로 등장시키고 있는 의인소설(擬人小說)이다. 마음의 의인인 천군을 주인공으로 하여 천군 아래에 충신형 인물과 간신형 인물의 대립·갈등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천군실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상제(上帝)가 천군을 사람의 가슴속에 봉하니 천군이 격현(膈懸)에 자리잡고 궁궐을 지어 국기(國基)를 튼튼히 하였다. 이·목·구·비·수·족에게 각각 관직을 주고 주인옹(主人翁)에게도 관직을 주어 인·의·예·지의 각 직을 다스리게 하였다. 3년 뒤에 희·노·애(哀)·락·애(愛)·오·욕 등이 나타났다.
천군은 그들에게 중대부(中大夫)를 명하고 정전(情田)을 주었다. 또, 3년 뒤에 화요(禾幺)라는 자가 와서 백성이 되겠다고 원하므로 물리치지 못하고 받아들였다. 8, 9년이 지나 천군이 사방을 두루 돌아다녀 보고자 하니 주인옹은 말리려고 하였으나 듣지 않고 칠정과 함께 떠났다.
이로부터 천군은 미혹되어 간신무리들이 극성을 부린다. 화요가 자신의 손인 화도(禾刀)를 추천하여 객경(客卿 : 다른 나라에 와서 公鄕의 지위에 있는 사람)을 삼았다. 그래서 주인옹은 물러나와 은둔하여 버린다.
마침내, 화요와 화도가 마음대로 국정을 휘두르고 여융(女戎)이 일어나 이목지관(耳目之官)이 여융에 빠지게 되었다. 수족지관(手足之官)은 곡씨(麯氏)와 통하여 나라가 황폐하고 심지(心地)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되었다.
천군은 궁궐을 떠나 돌아다니다가 주인옹을 만났다. 천군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화요와 화도를 감옥으로 보내고 이목 등은 경계하고 지수(志帥)를 명하여 여융과 곡씨형제를 토벌하니 드디어 나라는 평정되고, 지수를 성의백(誠意伯)으로 삼아 육사(六師)를 다스리게 하였다. 천군은 다시 없는 어진 임금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천군실록』에서 마음을 어지럽히는 간신형 인물로 나오는 화요는 사(私)의 파자(破字)이다. 화도는 이(利)자의 파자이니 사리사욕을 경계한 것이다. 여융과 곡씨는 여자와 술을 가리킨 것으로 이 모두 심성을 어지럽히는 요인이므로 경계한 것이다.
『천군실록』은 천군소설로서는 비교적 후대의 작품이다. 초기작품인 「천군전」에 비하여 훨씬 다양한 삽화가 전개된다. 인간심리를 깊이 성찰하고 해부하여 마음의 갈등과 그 해결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이성이 본능적 욕구를 제어하였을 때에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온다는 사실을 소설형식에 담아 표현한 점에서 문학적 가치를 지닌다.
『천군실록』은 1975년 박노춘(朴魯春)에 의하여 『국어국문학』에 소개되었다. 김광순의 『천군소설연구』와 『천군연의·천군실록(天君演義·天君實錄)』으로 번역되어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