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권1 기이편(紀異篇) 천사옥대(天賜玉帶)에 수록되어 있다.
진평왕의 성은 김씨로 백정왕(白淨王)이라고도 하였는데, 신장이 11척이었다. 왕이 천주사(天柱寺)에 행차할 때 오르는 돌계단을 밟으니 돌기둥 세 개가 한꺼번에 부러졌다. 왕은 시중한 신하들에게 일러 이를 옮기지 말고 뒷사람에게 보이게 하였는데, 이것이 성중 오부동석(五不動石)의 하나가 되었다.
진평왕이 왕위에 오르던 해에 한 천사가 하늘로부터 옥대(玉帶)를 가지고 내려와 상제의 명을 받들어 이를 왕에게 바쳤다. 왕이 친히 두 무릎을 꿇고 공손히 받자, 천사는 곧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 뒤 천지에 제사하거나 종묘에 제사할 때는 으레 왕이 이 옥대를 띠었다.
그 뒤 고려 태조 20년(937) 경순왕이 이 띠를 태조에게 바쳤다. 길이가 10위(圍)이며, 띠쇠[銙]가 62개였다. 태조는 이를 받아 내고(內庫)에 간직하여 보물로 삼았다. 고려왕이 신라를 침범하려 할 때 신라에는 천사옥대를 비롯한 세 가지 보물이 있어 침범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일연(一然)의 찬문, “하늘이 주신 긴 옥대는 임금의 곤의(袞衣)에 알맞았네. 우리 임금 이로부터 몸 더욱 중하니 다음에는 쇠로써 섬돌을 지으려 하네.”는 석제설화(石梯說話)와 옥대설화를 이어 진평왕의 지위를 더욱 신성화시켜 주고 있다.
그 뒤 고려왕이 신라를 치려 할 때 신라에는 황룡사의 장륙존상(丈六尊像)·구층탑, 진평왕의 천사옥대 등 세 가지 보물이 있어 침범하지 못한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