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수무

  • 예술·체육
  • 작품
조선 중기부터 전하는 향악정재(鄕樂呈才).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사훈 (전 서울대학교, 음악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진작의궤 / 첨수무 미디어 정보

진작의궤 / 첨수무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중기부터 전하는 향악정재(鄕樂呈才).

내용

조선 중기부터 전하는 향악정재(鄕樂呈才)의 하나로 지금은 전하지 않음. ≪순조무자진작의궤 純祖戊子進爵儀軌≫(1828)에 의하면,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고 그 손을 반복하여 절주를 삼아 추기 때문에 속칭 ‘엽무(葉舞)’라고도 한다.

그러나 영조 때 악원(樂院)에 명하여 ‘첨수무’로 고쳐 부르게 하였다. 이 춤은 여기(女妓)의 춤과 무동(舞童)의 춤 두 가지가 있다. 여기의 춤은 4명이 오색한삼(五色汗衫)을 끼고 두 대(隊)로 나누어 상대하면서 춘다. 무동이 출 때는 2명이 피변관(皮弁冠)을 쓰고 첨수의(尖袖衣)를 입고 각각 칼을 둘씩 들고 상대하면서 춘다.

칼을 들고 추는 첨수무는 농검(弄劒)·연귀소(燕歸巢)·연풍대(筵風擡) 등 검기무(劒器舞)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순조무자진작의궤≫에는 2명이 칼춤을 추고, 18명의 협무(挾舞)가 두 줄로 늘어서서 춤을 추고 있다.

또, ≪순조기축진찬의궤 純祖己丑進饌儀軌≫(1829)에는 여기 4명이 칼 대신 첨수(尖袖)로써 춤을 추고 있는 그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춤의 형태와 무원의 수에 변화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춤의 반주로 쓰이는 음악은 향당교주(鄕唐交奏)이다.

≪순조기축진찬의궤≫에 의하면, 순조 29년 명정전(明政殿) 진찬 때의 무동의 복식은 부용관(芙蓉冠)을 쓰고, 백질흑선중단의(白質黑縇中單衣)·홍질남선상(紅質藍縇裳)·녹색단령(綠色團領)에 화화방보(畫花方補)한다. 두석록정대(豆錫綠鞓帶)를 띠고 흑화(黑靴)를 신는다.

여기는 화관을 쓰고, 초록단의(草綠丹衣)·황초단삼(黃綃單衫), 속은 남색상(藍色裳), 겉은 홍초상(紅綃裳)에 홍단금루수대(紅緞金縷繡帶)를 띠고, 오채한삼(五彩汗衫)을 매고, 초록혜(草綠鞋)를 신는다. 이 춤이 실려 있는 무보(舞譜)로는 ≪궁중정재무도홀기 宮中呈才舞圖笏記≫가 있다.

참고문헌

  • - 『순조무자진작의궤(純祖戊子進爵儀軌)』

  • - 『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

  • - 『고종계사정재무도홀기(高宗癸巳呈才舞圖笏記)』

  • - 『한국전통무용연구』(장사훈, 일지사, 197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