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정(牒呈)은 하급 관서에서 동등 이상의 상급 관서에 보고 · 청원 등의 목적으로 발급한 관문서이다. 지방에서는 향촌 사회로부터 지방관과 관찰사(觀察使)에 이르는 보고 문서로 사용되었다. 향촌의 행정조직 및 단체 등은 첩정을 사용하여 관할의 수령에게 보고하였고, 수령 등 지방관은 지휘 관계에 있는 본도의 관찰사에게 첩정을 올려 보고하였다. 지방관 간에는 품계나 위계의 차이에 따라 첩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중앙에서도 관서의 고하에 따라 첩정을 사용하였는데, 육조(六曹)의 속아문은 육조에 첩정을 올리고, 육조는 의정부 등 1품 아문에 첩정을 올렸다.
상급 관서의 관할에 있는 하급관에서는 첩정과 함께 첩정의 내용을 요약한 서목을 함께 첨부하여 보내기도 하였다. 상급 관서는 첩정의 사안에 대해 처결을 작성하여 첩정 원장(元狀)을 참고 및 등록의 용도로 보관하였고, 서목은 하급 관서에 돌려보냈다. 서목에는 첩정과 동일한 내용의 처결을 기재하고, 착관과 서압을 하여 회신하였다.
첩정은 첩(牒)에서 분화한 관문서이다. 첩은 중국 한대(漢代)에 사용된 문서의 하나였고, 이후 역대 왕조에서 사용되었으며, 송대(宋代)에 이르러 상행 · 평행 · 하행 문서로 분화하였다. 원대(元代)에는 첩 중에서 상행 문서를 첩상(牒上) 또는 첩정상(牒呈上)이라고 하였고, 명대(明代) · 청대(淸代)에는 첩정이라고 하였다. 조선에서는 명의 『홍무예제(洪武禮制)』에 수록된 첩정식(牒呈式)을 수용하면서 첩정이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첩정식을 수록하여 상행 문서를 첩정으로 통일하였다. 이후 첩정은 조선시대 내내 사용되었으나 갑오개혁 이후 근대 공문서 체제로 변화하면서 혁파되었다.
첩정은 조선시대 관문서 중 상급 관서에 올리는 상행 문서로서 중앙 아문으로부터 지방 향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발급자들이 사용한 보고 문서이다. 첩정을 통해 조선시대 관문서 보고 체계와 처리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