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다. 창건에 관한 기록은 없으나 『삼국사기』에 최치원(崔致遠)이 이곳에서 즐겨 놀았다고 하였으므로 신라 말기 이전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전에 의하면 이 절이 해인사보다 먼저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절은 오랫동안 폐사가 되었다가 1811년(순조 11) 회은(晦隱)이 중건할 때 3칸의 법당과 요사채를 지었으며, 최근에 주지 경암(景庵)이 요사채를 중건하고 법당을 중수하였다.
일반적인 산지 가람의 유형을 따라 석축을 높이 쌓아 마련한 3단의 대지 위에 대웅전을 비롯하여 적광전과 상락당(常樂堂)·감로당(甘露堂) 등의 요사를 갖추었다. 사지 근처에는 다양한 신라시대 석물(石物)들이 산재하는데, 그 중에는 불상·불탑·석등(石燈)이 잘 갖추어져 있다. 이들은 월류봉(月留峰) 아래 남북 일직선상에 놓여 있으며, 모두가 건립 당시의 조각예술을 대변하는 빼어난 작품이다. 이 중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은 경주석굴암 불상의 유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석굴암이 경도(京都)의 장인(匠人)에 의하여 조성된 8세기를 대표하는 걸작이라면, 이 불상은 지방의 장인에 의하여 이룩된 9세기를 대표하는 수작이다. 또한,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형식을 보이고 있다. 조각수법이 경쾌하고 우아한 작품이며, 1958년 수리할 때 3층 옥신에 사리공(舍利孔)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석등은 9세기 석등을 대표할 만한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