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사 「영산회 괘불탱」은 1658년(효종 9)에 제작되었으며, 현전하는 괘불 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제작된 작품이다. 괘불을 조성한 곳은 인평대군(麟坪大君, 1622~1658)의 원당(願堂)인 청룡사(靑龍寺)이다. 화기(畫記)에는 주상전하(主上殿下)와 왕대비전하(王大妃殿下), 왕비전하(王妃殿下), 세자저하(世子邸下)의 안녕을 받들어 모신다는 축원문과 성주(城主) 김홍석(金弘錫)이 괘불 조성을 위해 향대(香臺)를 시주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7세기에 보기 드문 왕실 관련 불화이다. 화원(畫員)인 사과(司果) 박란(朴蘭)을 비롯하여 화승 법능(法能), 명옥(明玉), 응상(應尙), 정심(淨心) 등 5명이 그렸다.
삼베와 비단을 이은 바탕천에 채색하였다. 그림의 전체 크기는 세로 915㎝, 가로 650㎝이고, 화면 크기는 세로 737㎝, 가로 607㎝이다.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사에 봉안되어 있으며, 199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괘불의 도상은 석가가 깨달은 바를 인도의 영축산에서 청문중(聽聞衆)에게 설법하는 영산회(靈山會)를 전거로 한다. 중앙의 부처는 광배를 배경으로 높은 단상에 앉아 결가부좌하였다. 한 손은 어깨만큼 들고, 한 손은 무릎 위로 살짝 올린 설법인(說法印)을 하고 있다. 석가불 광배 뒤쪽에서는 여의(如意)와 연 봉오리를 쥐거나 합장한 모습의 나한들이 부처의 설법을 듣고 있다.
부처의 무릎 쪽 가장 가까운 곳에는 연꽃 줄기를 든 문수보살과 경권을 받친 연꽃 줄기를 잡은 보현보살이 서 있다. 그리고 그들의 뒤쪽 사선 방향으로 네 명의 보살이 서 있다. 앞쪽 두 보살은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고, 뒤쪽으로는 정병을 든 관음보살과 합장한 대세지보살이 서 있다. 그 뒤쪽에는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이 서 있다.
화면은 설법에 참여한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코끼리 관을 쓴 야차(夜次), 사자관을 쓴 주1, 4위의 인왕이 화염문(火焰文)을 배경으로 서 있으며, 용녀와 용왕은 맨 끝에 배치되었다. 하늘 위에서는 칠여래가 구름을 타고 부처의 설법을 찬탄하고 있다.
한편, 부처의 앞쪽에 가사와 장삼을 입고 승려처럼 머리를 깍은 인물이 뒤돌아 앉아 있는데, 석가의 제자 중 가장 지혜로운 사리불(舍利佛)이다. 이 도상은 명대(明代)와 조선 전기 법화경변상도의 영향을 받아 그려진 것으로, 괘불에서는 청룡사 「영산회 괘불탱」 등 3점에만 등장하는 보기 드문 예이다.
불화가 보통 붉은 색, 녹색, 남색의 진채(眞彩) 위주로 그려지는 데 비해, 청룡사 「영산회 괘불탱」은 담채(淡彩)의 사용으로 맑고 산뜻한 느낌을 준다. 또한 노란색, 하늘색 등의 중간색이 조화를 이룬다. 천상의 세계를 상징하는 천개(天蓋)와 바닥에 그려진 꽃문양, 주2 등이 산뜻한 채색과 어우러져 석가가 머무는 곳이 정토(淨土)임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