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658년, 화원 박란, 화승 법능 등이 그린 영산회괘불도.
제작 배경
내용
괘불의 도상은 석가가 깨달은 바를 인도의 영축산에서 청문중(聽聞衆)에게 설법하는 영산회(靈山會)를 전거로 한다. 중앙의 부처는 광배를 배경으로 높은 단상에 앉아 결가부좌하였다. 한 손은 어깨만큼 들고, 한 손은 무릎 위로 살짝 올린 설법인(說法印)을 하고 있다. 석가불 광배 뒤쪽에서는 여의(如意)와 연 봉오리를 쥐거나 합장한 모습의 나한들이 부처의 설법을 듣고 있다. 부처의 무릎 쪽 가장 가까운 곳에는 연꽃 줄기를 든 문수보살과 경권을 받친 연꽃 줄기를 잡은 보현보살이 서 있다. 그리고 그들의 뒤쪽 사선 방향으로 네 명의 보살이 서 있다. 앞쪽 두 보살은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고, 뒤쪽으로는 정병을 든 관음보살과 합장한 대세지보살이 서 있다. 그 뒤쪽에는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이 서 있다. 화면은 설법에 참여한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코끼리 관을 쓴 야차(夜次), 사자관을 쓴 건달바(乾闥婆), 4위의 인왕이 화염문(火焰文)을 배경으로 서 있으며, 용녀와 용왕은 맨 끝에 배치되었다. 하늘 위에서는 칠여래가 구름을 타고 부처의 설법을 찬탄하고 있다. 한편, 부처의 앞쪽에 가사와 장삼을 입고 승려처럼 머리를 깍은 인물이 뒤돌아 앉아 있는데, 석가의 제자 중 가장 지혜로운 사리불(舍利佛)이다. 이 도상은 명대(明代)와 조선 전기 법화경변상도의 영향을 받아 그려진 것으로, 괘불에서는 청룡사 「영산회 괘불탱」 등 3점에만 등장하는 보기 드문 예이다. 불화가 보통 붉은 색, 녹색, 남색의 진채(眞彩) 위주로 그려지는 데 비해, 청룡사 「영산회 괘불탱」은 담채(淡彩)의 사용으로 맑고 산뜻한 느낌을 준다. 또한 노란색, 하늘색 등의 중간색이 조화를 이룬다. 천상의 세계를 상징하는 천개(天蓋)와 바닥에 그려진 꽃문양, 채운(彩雲) 등이 산뜻한 채색과 어우러져 석가가 머무는 곳이 정토(淨土)임을 알려준다.
참고문헌
원전
- 「청룡사사적비(靑龍寺事蹟碑)」
- 『세종실록(世宗實錄)』
단행본
- 『깨달음에 대한 설법, 서운산 청룡사 괘불, 보물1257호』(국립중앙박물관, 2015)
- 『사경 변상도의 세계 부처 그리고 마음』(국립중앙박물관, 2007)
- 『안성 청룡사 괘불탱』(통도사 성보박물관, 2006)
- 『국역 국조인물고』(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4)
논문
- 박은경, 「일본 소재 조선 전기 석가설법도 연구」(『석당논총』 50,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11)
- 황현정, 「조선후기 안성 청룡사의 불사 후원자 연구」(『지방사와 지방문화』 13-2, 역사문화학회, 2010)
- 허흥식, 「나옹의 사상과 계승자(상·하)」(『한국불교학연구총서: 124 나옹 혜근』, 불함문화사, 2004)
- 박도화, 「봉정사 대웅전 영산회후불벽화: 조선시대 영산회상도의 조형」(『한국의 불화: 17 법주사본말사편』, 성보문화재연구원, 2000)
- 박도화, 「조선조 묘법연화경 판화의 연구」(『불교미술』 12, 동국대학교 박물관, 1999)
- 최연식, 「조선후기 『석씨원류』의 수용과 불교계에 미친 영향」(『보조사상』 11, 보조사상연구원, 199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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