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군 ()

대동여지도 중 경상북도 영덕, 청송 부분
대동여지도 중 경상북도 영덕, 청송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경상북도 동부 중앙에 위치한 군.
정의
경상북도 동부 중앙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영덕군과 포항시, 서쪽은 안동시 · 의성군 · 군위군, 남쪽은 영천시, 북쪽은 영양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8°50′∼129°15′, 북위 36°09′∼36°35′에 위치한다. 면적은 846.00㎢이고, 인구는 2만 6384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7개 면, 136개 행정리(88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에 있다.

자연환경

보현산맥의 지맥인 삼도산맥(三都山脈)이 군의 중앙부를 횡단하여 지형을 남북으로 나누는 지체구조(地體構造)를 이룬다.

동쪽은 태행산(太行山, 933m) · 금은(金銀)광이(812m) · 주왕산(周王山, 721m) · 무포산(霧抱山, 717m) · 대둔산(905m) · 무장산(霧藏山, 641m) 등이 솟아 험한 산악지역을 이룬다.

중북부에 방광산(519m) · 중대산(680m), 서쪽에는 사일산(649m) · 연점산(鉛店山, 871m) · 산지봉(産芝峰, 890m) · 구무산(676m) · 산두봉(719m) 등이 솟아 안동시와 의성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북쪽은 비봉산(飛鳳山, 671m) · 고산(529m) · 광덕산(484m) 등이 솟아 있다. 남쪽은 구암산(九巖山, 807m) · 면봉산(眠峰山, 1,113m) · 베틀봉(930m) · 보현산(普賢山, 1,124m) 등이 보현산맥을 이루어 포항시 · 영천시와의 경계를 이룬다.

주요 하천으로는 용전천(龍纏川) · 길안천(吉安川) · 보현천(普賢川)을 들 수 있다. 용전천은 주왕산면 · 부남면에서 흐르는 지류를 합하여 청송읍과 파천면을 경유하여 영양에서 안동을 흐르는 반변천(半邊川)과 합류한다.

길안천은 현서면방각산(方覺山)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현서면보현산에서 발원하여 갈전리 · 성재리 · 복리를 지나 북류하는 보현천과 안덕면 명당리에서 합류한다. 더 나아가 신성리에 이르러 베틀봉 · 면봉산 등의 보현산맥에서 발원하여 월매리 · 개일리 · 도평리를 지나 북류하는 눌인천(訥仁川)과 다시 합류한다. 그리고 화부산(花釜山, 626m)과 연점산(鉛店山, 871m) 사이에 감입곡류를 형성하면서 관류한다.

그 뒤 안동시 중앙부를 관류하며 임하면 신덕리에 이르러 반변천으로 흘러든다. 길안천의 중하류 유역에는 충적평야가 전개되며, 이 지방의 주요 농업지대로 취락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지질은 중생대 경상계 퇴적암 가운데 신라통에 속하며, 지형은 삼면이 산악으로 중첩되어 기복이 심하다. 전체적인 지세는 북서 및 동에서 남으로 경사지며, 평야는 북서로 전개되고 토양은 대체로 비옥하다. 따라서 청송군의 생활권이나 역사적 배경은 이러한 지형 · 지세와 관련되어 크게 안덕(安德) · 청송(靑松) · 진보(眞寶)로 구분된다.

기후는 한서의 차가 심한 내륙성기후를 이루며, 풍향은 겨울철에 북서풍, 여름철에 남서풍이 분다. 연평균기온 12.1℃, 1월 평균기온 -2.3℃, 8월 평균기온 23.9℃이며, 연강수량은 1.305㎜이다.

역사

이 지역의 초기 역사에 대해서는 아직 고고학적 연구가 축적되지 않아 잘 알 수 없다. 문헌에 의하면, 이 지역은 본래 고구려의 영역으로 청기현(靑己縣: 청송읍) · 이화혜현(伊火兮縣: 안덕면) · 칠파화현(漆巴火縣: 진보면)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 뒤 신라에 편입되어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시 각기 적선현(積善縣) · 연무현(緣武縣) · 진보현(眞寶縣)으로 개명되어 야성군(野城郡: 영덕읍) · 곡성군(曲城郡: 임하면) · 문소군(聞韶郡: 의성읍)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후삼국의 쟁패기에 이들 지역은 각기 유력한 호족들이 대두하여 할거하고 있었지만, 주로 고려와 후백제의 각축장이 되었다. 이 후 점차 고려의 세력권에 들어가게 되었다. 922년(태조 5) 진보성 장군 홍술(洪術)이, 930년 재암성(載巖城: 진보면) 장군 선필(善弼)이 고려에 차례로 귀부하였다.

통일 이후 점진적인 지방제도의 개편에 따라 적선현은 부이(鳧伊) 또는 운봉(雲鳳)으로 불리다가 986년(성종 5) 청부현(靑鳧縣)으로 개명되어 예주(禮州: 영해)의 속현이 되었다. 연무현은 940년 안덕현(安德縣)으로 개명되었다가 1018년(현종 9) 안동부에 예속되었다.

진보현은 고려 초에 진안현(眞安縣)과 합해져 보성부(甫城府)가 되었고, 1018년 예주에 속하였다. 또 현재의 청송읍 송생리 지역에 송생현(松生縣)이 있어 예주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고려 초 이후 이 지역은 독자적인 군현을 구축하고 있지 못해 지역의 이합이 빈번하게 이루어진 편이라 하겠다.

1394년(태조 3) 청부현은 보성부에 병합되었고 진보현에는 감무가 설치되었다. 같은 해 안덕현은 송생현에 병합되었고, 1418년(세종 즉위년)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沈氏)의 본향이라 하여 청부와 진보현이 합해져 청보군(靑寶郡)으로 승격되었다. 1423년 청부현과 송생현이 합쳐지면서 새로이 청송군이 되었고 진보현은 독립하였다.

송생현에 병합되었던 안덕현은 청송군의 속현이 되었다. 이처럼 잦은 지역적 변화를 거친 뒤 1459년(세조 5) 청송도호부가 설치되어 조선 후기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진보현은 1474년(성종 5) 고을사람 금맹함(琴孟諴)이 현감 신석동(申石同)을 능멸하였다는 이유로 폐현되었다가 4년 만에 다시 복현되었다. 안덕현도 청송부의 속현인 상태가 계속되었다.

한편, 당시 이 지역의 토질은 척박하였으며 풍속은 솔검(率儉)하였다고 한다.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호구수는 청송부가 144호 1589인, 진보현이 78호 994인이었다고 한다. 여말선초 이래 이 지역의 대표적인 가문은 청송심씨(靑松沈氏)로서 청송을 도호부로 승격시키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진보현에는 이씨(李氏) · 조씨(趙氏)가 가세를 떨쳤다.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을 한 심청(沈淸) · 이홍중(李弘重) 등이 이 지역 출신이다.

갑오개혁으로 1895년 전국에 23부제가 실시되자, 두 지역 모두 군이 되어 안동부에 속하였다. 다음해 13도제가 실시되자 4등군으로 분류되어 경상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부군면의 통폐합에 따라 진보군이 폐지되었고 그 관하 4개 면이 청송군에 편입되었다.

개화기에 신교육이 보급되자 이 지역 유지들은 낙일학교(樂一學校)를 세워 인재양성에 노력하였고, 항일 의병투쟁이 전개되었을 때에는 수많은 인사들이 산남의진(山南義陣)을 비롯한 의병항쟁에 참여하였다. 그 결과 이 지역은 경상북도지방 의병투쟁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이러한 항일의식은 3 · 1운동에도 이어져 3월 26 · 27일에 수백 명의 군민이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73년 7월 1일 현서면의 복동 · 덕성동 · 성재동이 안덕면에 편입되었고, 1979년 5월 1일 청송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2월 15일 영양군 입암면 흥구동 · 방전동이 진보면에 편입되었으며, 1985년 12월 7일 진보면 영양군 입암면 흥구동 일부를 진보면 광덕, 방정동 일부를 시량동에 통합, 진보면 광덕동을 광덕1동과 2동으로 분동하였다. 1987년 1월 1일에는 부동면(현 주왕산면) 상평동 일부가 부남면 감연동에 편입되었으며, 1989년 1월 1일진보면 진안1리가 진안1리, 진안4리로 분리되었고, 1993년에는 군청 소재지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유물 · 유적

이 지역에서는 아직 선사시대 유물 · 유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현대의 지리적 조건과는 대조적으로 다른 시대의 유물 · 유적도 매우 적은 편이다.

불교문화재로는 청송읍 덕리의 보광사에는 보광사극락전(보물, 2014년 지정), 부동면(현 주왕산면) 상의리의 대전사 보광전(보물, 2008년 지정), 부동면(현 주왕산면) 상의리의 대전사 보광전 석조여래삼존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004년 지정), 파천면 송강리의 수정사대웅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진보면의 청송이촌리오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부동면(현 주왕산면) 상의리의 대전사 명부전 지장탱화(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04년 지정)와 대전사 명부전 지장삼존및시왕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019년 지정), 대전사 주왕암 나한전후불탱화(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04년 지정)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청송읍 월막리의 청송향교와 찬경루(보물, 2019년 지정) · 운봉관(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90년 지정), 덕리의 만세루(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17년 지정), 진보면의 청송추현리박씨효자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6년 지정), 세장리의 백호서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6년 지정)이 있다.

또한, 광덕리의 진보향교(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안덕면 신성리의 금대정사(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93년 지정), 현서면의 도리추원당(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92년 지정, 파천면 신기리의 기곡재사(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94년 지정) 등이 있다.

이 밖에 청송읍 청운리에 청운동성천댁(국가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 현동면 창양리에 창양동후송당(국가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 파천면 덕천리에 송소고택(국가민속문화재, 2007년 지정), 중평리에 평산신씨판사공파종택(국가민속문화재, 2014년 지정) · 서벽고택(국가민속문화재, 2014년 지정), 파천면 덕천리의 청송초전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02년 지정), 현동면 개일리의 청송오체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02년 지정), 부동면(현 주왕산면) 상평리의 청송덕양재(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02년 지정) 등의 가옥이 보존되고 있다.

안덕면 신석리에 방호정(경상북도 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 현서면 월정리에 침류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92년 지정)이 있다. 파천면 송강리에는 청송한지장(경상북도 무형문화재, 1995년 지정), 진보면 진안리에 청송옹기장(경상북도 무형문화재, 1997년 지정), 진보면 추현리의 청송추현상두소리(경상북도 무형문화재, 1997년 지정)가 전승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전국에서 유명한 주왕산(周王山)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파천면 신기리 청송신기동의 느티나무(천연기념물, 1967년 지정), 관리의 청송관동의 왕버들(천연기념물, 1968년 지정), 장전리에는 청송안덕면의 향나무(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 부남면 흥원리의 흥원리 개오동나무(천연기념물, 1998년 지정), 현서면 월정리의 청송침류정(枕流亭)향나무(경상북도 기념물, 1995년 지정) 등 오래된 나무들이 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1404년(태종 4)진보면 광덕리에 창건된 진보향교(眞寶鄕校)를 효시로, 청송부사로 부임한 정지아(鄭之雅)가 1426년(세종 8)청송읍 월막리에 창건한 청송향교(靑松鄕校)가 있다. 또한 서원으로는 1602년(선조 35) 이황(李滉)을 주향하기 위해 진보면 이촌리에 세워진 봉람서원(鳳覽書院), 1699년(숙종 25) 이황 · 김성일(金誠一) · 장현광(張顯光)을 향사하기 위하여 안덕면 장전리에 세워진 송학서원(松鶴書院), 1701년 이이(李珥) · 김장생(金長生)을 봉안한 부남면 구천리의 병암서원(屛巖書院)과 파천면 중평리의 사양서원(泗陽書院) 등이 세워졌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최초로 1906년 청송읍에 사립 낙일학교가 개교되어 1912년 청송공립보통학교로 개칭되었으며 지금의 청송초등학교로 이어져온다. 중등 교육기관으로는 1953년 진보종합고등학교가, 1954년 청송고등학교가, 1974년 부남고등학교가, 1975년 안덕고등학교 등이 개교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8개교, 중학교 8개교, 고등학교 6개교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5개의 복지회관, 군민회관, 공공도서관, 문화원이 있다. 또한 청송읍 송생리에 위치하고 있는 청송민속박물관은 부지 1만 5120㎡(4,574평)에 1999년도에 건립된 1종 전문박물관이다. 전시방법은 내부전시와 야외전시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부전시는 청송지방에서 절기별로 행하여지던 세시풍속을 자료와 모형으로 전시하고 있다. 청송야송미술관은 지역출신 한국화가로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지낸 한국화가 야송(野松)이원좌(李元佐) 화백이 소장하고 있던 한국화 및 도예작품 등 350점, 국내외 유명 화가와 조각가들의 작품 50여 점, 미술관련 서적 1만여 점을 기증받아 진보면 신촌리의 구 신촌초등학교를 현대식 미술관으로 단장하고 2005년 4월 29일에 개관하였다.

문화행사로는 청송문화원이 주관하여 2년에 한번씩(홀수년 10월) 격년제로 가을에 청송읍내 용전천 하천변에서 열리는 청송문화제를, 짝수년 10월에는 군민체육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민속

이 고장의 대표적 민속놀이로는 줄다리기를 들 수 있다. 줄다리기는 이 고장의 여러 마을에서 성행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청송읍 청운리의 줄다리기는 유래가 오래되고 규모가 크기로 유명하다. 정월이 가까워오면 마을의 청장년들이 농악을 치며 집집마다 다니면서 지신을 밟아주고 짚을 거두어 줄을 만든다.

시합이 대개 윗마을과 아랫마을 사이에 벌어지므로 줄도 따로 준비하는데, 윗마을이 수줄을, 아랫마을이 암줄을 만든다. 줄의 모양은 용(龍)의 형태와 같이 머리부분이 굵고 꼬리부분은 가늘게 되어 있다.

줄다리기는 정월보름에 행하는데, 이 날이 되면 우선 암줄과 수줄을 매어놓고 시합 전에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당(堂)을 바라보며 제를 지낸다. 제가 끝나면 마을사람들 모두가 줄을 잡고 서로 어르기를 한 뒤 본격적인 시합이 시작되며, 승부가 쉽게 나지 않을 때는 쉬었다가 하기도 한다.

이곳의 줄다리기는 수줄이 이겨야 풍년이 들고 득남한다는 믿음이 있어서 항상 수줄이 이기게 된다. 이것으로 미루어 이곳의 줄다리기는 한낱 힘을 겨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협동심을 고취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주민들의 소망이 담긴 놀이임을 알 수 있다.

이 고장에서는 마을단위로 당제(堂祭)라 불리는 동제가 거행되고 있다. 당의 형태는 대부분 신목(神木)이며 누석단(累石壇)이나 당집으로 된 경우도 간혹 있다. 제일은 마을마다 일정하지 않으나 대부분 정월 중에 행하며, 제관은 생기복덕을 보아 예의바르고 단정한 남자 중에서 선택한다.

대표적인 예로 청송읍 월막리의 경우를 보면,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서낭당에서 매년 정월 당제를 올린다. 제관은 집 앞과 당에 금줄을 치고, 제수를 장만하는 우물가에도 향토를 깔고 뚜껑을 덮어 부정의 접근을 막으며 제 이외의 일은 일체 하지 않는다.

제는 축시(丑時)에 거행되고 제물은 통음식을 쓰는데 제를 지낼 때 동네의 세대주 이름이 적힌 소지를 올려 각 가정의 평안을 기원한다. 제가 끝난 다음날 아침에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제관의 노고를 치하한다.

설화 · 민요

이 고장의 대표적 설화로는 초막골의 지명에 얽힌 「윤효자전설」을 들 수 있다. 청송읍에서 약 2㎞ 떨어진 지점에, 앞에는 용전천의 맑고 푸른 물이 흐르고 뒤로는 소백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친 초막골이라는 마을이 있다.

옛날 이 마을에 윤씨라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병을 얻어 몸져눕게 되자 정성을 다해 간호하였다. 그러나 보릿고개가 있던 당시는 산이나 들에 나가서도 허기를 면할 수 있는 풀조차 제대로 구하기가 어려운 때라 아들의 지극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점점 쇠약해가기만 했다.

윤효자는 아침 일찍 산에 가서 나무를 하다가도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나뭇짐을 버려둔 채 집으로 달려오곤 했으나, 아버지의 병은 생명이 위험한 상태로 치달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윤효자가 이웃마을에 가서 문전걸식을 하여 양식을 구해 가지고 오는데 갑자기 그의 귀에 아버지의 신음소리가 쟁쟁하게 들려왔다. 애타게 아들을 찾는 아버지의 마음이 거기까지 미친 것이다.

결국 급히 달려온 아들을 앞에 두고 아버지는 눈을 감고 말았다. 윤효자는 아버지의 시신을 산 속 양지바른 곳에 고이 묻어드리고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무덤을 지켰다. 그런데 상기간이 끝날 무렵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어 윤효자는 부모님의 무덤 옆에서 6년간이나 초막생활을 하며 예를 다하였다. 이에 효자가 초막을 짓고 정성을 다한 뜻을 기리기 위해 마을이름을 초막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밖에도 어머니에게 고기반찬을 해드리기 위해 밤마다 호랑이로 변하여 개를 잡아오다가 그만 아내의 실수로 영원히 호랑이가 되어버렸다는 효자 시리에 관한 이야기, 지나치게 부를 탐하여 집안사람의 왕래까지 끊어버리는 바람에 벌을 받아 집안이 망하고 말았다는 「오층석탑전설」 등이 있다.

이 고장에는 「길쌈노래」 · 「베틀노래」 · 「시집살이노래」 · 「상여소리」와 같은 안동 · 영덕 등 경상북도지방에서 공통적으로 불리는 농요와 민요가 전승되고 있다.

이 중 「길쌈노래」와 「베틀노래」는 4 · 4조의 4음보 율격으로 되어 있어 그 유장한 가락에 호흡을 맞춰 일의 단조로움을 이겨내기도 하였겠지만, 그 안에 아낙네들이 겪던 정과 한이 구절마다 맺혀 있어 애달픈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중 「길쌈노래」를 들어보면, “영해영덕 긴삼가리 청송진보 관솔가지/우리아배 관솔패고 우리올배 관솔놓고/우리올배 동래부사 행주별감 열삼촌에/네이기니 내이기니(중략)/달은 벌써 다졌는데 닭은어이 또 우는가/저말많은 시어머니 이네잠을 또깨우네/영해영덕 긴삼가리 너캉나캉 왠정많아/아침저녁 따라다녀 새벽길쌈 지기는년/사발옷만 입더란다.”처럼 부른다.

한편, 「상여소리」는 이와는 달리 선소리꾼이 메기는 선소리와 상여꾼들이 이를 받아 반복하는 후렴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망산천 찾아가서 무덤안고 통곡하니/너호너호너호 넘차 너호/너왔구나 소리없다 누구에게 한탄하랴/너호너호너호 넘차 너호/초로같은 우리인생 백발되면 황천길에/너호너호너호 넘차 너호.”

이 노래는 선소리꾼의 구성진 가락과 함께 고인을 애도하는 상주(喪主)들의 울음소리가 어울려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고 인생의 무상함을 실감하게 한다. 이밖에 「자장가」 · 「갈가지노래」 · 「열무김치」등의 동요도 전해오고 있다.

산업 · 교통

2008년 현재 청송군의 토지이용은 총면적 842.68㎢ 중 임야가 79.1%, 경지가 9.3%, 기타가 11.6%로 다른 군에 비해 경지율이 낮은 반면 임야의 비중이 크다. 경지 중 논은 1,859㏊로 약 23.8%를 차지하고 밭은 5,963㏊로 약 76.2%를 차지하여 밭농사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진보면 고현리에 진보저수지와 이 외에도 성덕저수지 · 장전저수지 · 구천저수지 · 갈평지 등의 저수지에서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농가 인구는 12,156명(2008년)으로 전체 인구의 약 43.4%이며, 밭작물의 의존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주곡생산 외에 담배 · 고추 · 마늘 · 약초 등의 재배가 활발하다. 특산물은 사과 · 고추 · 표고버섯 · 대추 · 화문석(꽃돌) · 옹기 · 청송불로주 등이다.

사과는 주왕산 근처의 마평과수단지에서 세계적인 품질의 사과를 생산하고 있다. 청송군에서 사과재배가 차지하는 비중은 농업 생산액의 28% 정도로 단일작목으로는 최고를 이루는 주요 작목이다. 해외로 수출되고 있는 청송꿀사과는 해발 250m이상의 산간지로 일교차가 평균 12℃이상인 이상적인 기후조건에서 생산되며 맛과 당도가 뛰어나고 과즙이 많으며 신선도와 저장성이 높아 전국에서 최고의 사과로 인정받고 있다.

고추생산은 경상북도에서 제일이며, 진보면이 집산지로써 농촌지역으로는 특이하게 상업이 발달하였다. 청송세척태양초는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산풀과 퇴비등 유기질 비료를 사용하여 재배하므로 가공시 분말이 많고 고울 뿐만 아니라, 그 맛이 담백하여 식욕촉진제로서 효능이 탁월하며 상품화 과정에서 자체개발한 고추세척기를 사용, 세척하여 1993년 전국최초로 품질인증을 획득하였으며 일반건고추, 세척고추, 세척태양초, 세절건고추가 판매되고 있다.

맑은 물 깨끗한 공기속에서 참나무 자목으로 생산되는 청송표고버섯은 과피가 두텁고 향기가 진하며 무공해 식품으로 생표고와 건표고가 있다. 청송군 일원에서 재배되는 청송토종대추는 조상 대대로 전승 · 보존되어 온 토종으로서 열매가 작고 껍질이 얇으며 과육이 단단하고 향기가 독특하여 한약재 및 다류재로 널리 각광을 받고 있다.

꽃돌은 보통 원석을 절단한 후 꽃을 형태에 따라 연마하고, 사포질한 뒤 광택을 내는 작업을 거치면 완성된다. 진보면 화문석 공예특산지에서는 국내 꽃돌의 80%가 생산된다. 해바라기석 · 국화석 · 장미석 등 온갖 꽃들이 돌에 새겨져 신비하다.

진보면 진안리 옹기도막은 아직도 옛날의 제작방식을 고수하는 옹기가마이다. 옹기의 원료인 진흙의 질이 좋고 땔감이 되는 소나무숲이 울창하여 약 100여 년 전에 옹기가마가 생기기 시작했으나, 지금은 어렵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청송불로주는 신촌약수와 달기약수를 이용해 만든 민속주이다. 한우사육은 예로부터 유명하며 현재는 비육우단지를 조성하여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입목축적은 700만 5454㎥로 부동(현 주왕산면) · 부남 · 현서 · 안덕면의 순으로 많고, 임산물 생산량은 12만 9517㎏으로 안덕 · 진보 · 청송의 순으로 많으며 버섯 · 산나물 · 밤 · 잣 등이 생산된다.

2008년 현재 광구수는 13개로 부동(현 주왕산면) · 부남 · 파천면에 가행광구 6개가 있고 그 외는 미가행광구이다. 부동면(현 주왕산면)에서는 고령토가, 부남면에서는 납석과 고령토가, 파천면에서는 석회석이 채굴된다. 조선 말기에는 대중용 백자를 굽던 청송가마가 있었으나 지금은 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공업은 명주 · 삼베 · 창호지 · 도자기 등을 생산하는 전통적 가내공업만이 있을 뿐이다.

상업활동은 청송 · 진보 · 부남 · 안덕 · 현동 · 현서 등의 6개의 5일장이 공설(公設)로 열리고 있다. 주거래 품목은 고추 · 마늘 · 약초 · 사과 등인데 특히 고추와 약초의 거래가 활발하다. 196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는 공설시장 및 정기시장의 사설화(私設化) 또는 상설화(常設化) 경향에 따라 1983년에 이르러 1개의 정기시장이 상설화되었고, 6개의 정기시장이 분포하고 있다 .

교통은 국도의 31호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이 외에도 안동 · 포항 · 영양 · 의성 등의 지방도가 각 지역으로 나 있다. 2007년부터 부분적으로 개통을 시작한 당진영덕고속도로가 청송군을 지나고 있다.

관광

대표적 관광지는 주왕산(周王山)과 달기골의 약수탕이다. 주왕산의 절경과 약수탕의 효험만으로도 청송군은 뛰어난 관광지로서 평가받을 수 있는 명승관광지이다. 주왕산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은 일찍이 경상북도립공원으로 지정, 개발되었는데 197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주왕산에는 주봉이 721m로 그리 높지 않으나 산세가 웅장하고 험준하여 석병산(石屛山)이라고도 불리는 ‘전설의 산’이다. 이 산에는 보현국사(普賢國師) · 무학대사(無學大師) · 서거정(徐居正) · 김종직(金宗直) 등의 명승과 석학이 수도하던 유서깊은 대전사 · 광암사(光巖寺) · 연화암(蓮花庵) · 백련암(白蓮庵), 기암(旗巖) · 풍치절경의 학소대 · 급수대(汲水臺)와 같은 기암괴석이 있다. 그리고 월외(月外) · 내주왕(內周王) · 외주왕(外周王) · 내원계곡 등의 계곡, 주왕굴 · 무장굴(武藏窟) · 연화굴(蓮花窟) 등의 동굴이 있다.

주왕산 국립공원내에 있는 주산지(主山池)는 길이 100m, 넓이 50m, 수심은 7.8m 로 그다지 큰 저수지는 아니지만, 저수지 속에 자생하는 약 150년생 능수버들과 왕버들 20여수는 울창한 수림과 함께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특히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영화가 촬영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또한 구룡소(九龍沼) 등의 지소(池沼)가 있다.

그리고 구슬을 내뽑는 듯 맑은 물줄기를 이루는 제1 · 2 · 3폭포와 월외폭포, 주왕이 고려군을 막기위해 쌓았다는 자하산성, 경관이 빼어난 시루봉 · 향로봉, 왼팔로 돌을 던져 바위에 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아들바위 등 30여 개의 명소가 모여 절경을 이룬다. 그 결과 이 산은 경상북도의 소금강(小金剛)이라고도 불린다.

주왕산 부근에는 달기약수탕이 있어 보건휴양지로도 적지이다. 달기약수탕(達基藥水湯)은 청송읍 부곡리 달기마을에 있는 상탕 · 중탕 · 하탕 · 신탕 · 성지탕 등으로 형성된 약수탕을 말한다. 약수는 탄산성분이 강하며 철성분이 많은 광천수로 빛과 냄새가 없고, 아무리 많이 마셔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 빈혈 · 위장병 · 관절염 · 신경질환 · 심장병 · 부인병 등에 특효가 있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각처에서 모여든다.

그리고 달기약수 부근의 옻닭요리는 위장병에 좋다는 건강식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향나무 · 느티나무 · 왕버들 등의 식물과 산짐승, 100여종의 산새가 서식하여 동식물의 별천지를 이루고 있다.

그 외 안덕면과 현동면 사이의 신성계곡과 주왕산면 항리의 얼음골이 유명하다. 차고 맑은 하천, 깨끗한 자갈, 울창한 송림이 약 3㎞에 걸쳐 펼쳐져 있는 신성계곡에는 1619년(광해군 11) 방호조준도가 건립한 방호정이 있다.

계곡에서 8㎞ 가량 떨어진 고와리에는 눈으로 뒤덮인 듯한 3천여 평의 암반인 백석탄이 있다. 항리얼음골은 말 그대로 섭씨 30℃가 넘는 무더위가 찾아오면 작은 샘에서 얼음이 얼고 그 사이로 찬바람과 찬물이 나오며 가까이에는 무장산이 있다.

한편 부남면 대전리 일대에는 65만 평에 조성된 청송자연휴양림이 있다. 통나무집 · 산막 · 물놀이장 · 농구장 · 야영장 · 취사장 · 샤워장 등의 편의시설과 넓은 주차공간, 완벽한 전기 · 급수시설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휴식지로 적당하다. 청송 월막온천은 청송읍 월막리 소재 주왕산관광호텔 부지 내 심도 719m 깊이에서 양질의 온천수가 발견되어 2000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온천허가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매년 5월경 주왕산 일원에서 열리는 주왕산수달래제, 매년 10월경 청송사과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널리 홍보하는 청송사과축제, 청송군 주왕산면 내룡리 얼음골의 인공폭포에서는 2004년 2월에 시작된 청송주왕산 전국빙벽등반대회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

읍 · 면
  1. 청송읍(靑松邑)

군의 중부에 위치한 읍. 면적 82.43㎢, 인구 5,501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월막리이다. 본래 부내면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청송면이 되었고, 1979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로 되어 있으며, 북쪽 경계에 태행산(太行山, 933m) · 중대산(608m) · 대둔산(大遯山, 905m) · 방광산(放光山, 512m) 등이 솟아 있다. 동남쪽 경계에 있는 금은광이(812m)에서 발원한 괴내와 큰내가 서쪽으로 흐르다 북류하는 용전천에 합류되며, 용전천이 흐르는 좁은 골짜기를 따라 취락과 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중심시가지는 용전천의 북쪽 하안에 발달하여 관공서 · 시장 등이 집중되어 있으나 평탄지의 부족으로 하천의 남쪽에도 시가지가 연속되어 있다.

총경지면적은 9.7㎢로 11.9%, 임야면적는 66.79로 80.1%, 기타는 8.0%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이 6.26㎢로 64.5%를 차지하고 논이 3.45㎢로 35.6%를 차지하며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면의 대부분이 임야로 밤 · 잣 · 대추 · 은행 등 임산물의 생산이 많다. 또한 고구마 · 콩 · 호박 · 수박 · 마늘 · 파 · 약초 등의 생산이 두드러지며 한우사육은 1위를 차지한다. 그 외 산양 · 닭의 사육이 행해지며 또한 행정의 중심지이자 주변에서 생산되는 고추 등 농산물의 집산지이다.

교통은 용전천을 따라 국도가 남북을 관통해 북쪽은 진보면에서 안동 · 영양 · 영덕으로 연결되며 남쪽으로는 포항 · 영천 · 대구로 연결되고, 지방도와 군도가 있으나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덕리에 보광사극락전 · 만세루, 월막리에 청송향교 · 찬경루, 청운리에 성천댁 등의 건축물이 있다. 부곡리에는 천연기념물인 왕버들이 있으며, 그리고 달기약수탕과 태행산 · 대둔산을 포함하는 동부 산악지역은 주왕산국립공원 구역의 일부로 경관이 수려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다. 월막(月幕) · 덕(德) · 금곡(金谷) · 청운(靑雲) · 송생(松生) · 교(橋) · 거대(巨大) · 월외(月外) · 부곡(釜谷) 등 9개 리가 있다.

  1. 부남면(府南面)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22.50㎢, 인구 2,60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대전리이다. 청송부의 남쪽에 위치하므로 부남면이라 하였다. 고구려시대에는 청기현이라 불렸으나 신라시대에 이르러 적선현이라 개칭되어 야성군의 속현으로 되었다가 981년(성종 6)에는 예주의 속현이 되었다.

1395년(태조 4) 진보와 합현되었다가 1459년(세조 5) 청송도호부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청송군에 속하여 9개 리를 관할하였다.

대부분의 지역이 태백산맥에 속하는 산지로 되어 있으며, 기반암은 경상계 퇴적암으로 구성된다. 북쪽에 무포산(霧抱山, 717m) · 매봉산(642m), 남쪽에 구암산(九巖山, 807m) · 달의령(達義嶺, 743m) 등이 솟아 있다. 면의 중앙부를 마평천(馬坪川)이 북서류하며 그 연안에 상당히 넓은 충적평야가 전개된다.

총경지면적은 12.09㎢로 9.9%, 임야면적은 102.33㎢로 83.6%, 기타는 6.5%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이 8.52㎢로 70.5%를 차지하고 논이 3.57㎢로 29.5%를 차지하며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 이 외에 수수 · 옥수수 · 팥 등의 잡곡과 무 · 양배추 · 수박 · 고추 등의 채소류, 참깨 · 땅콩 등의 특용작물, 사과가 많이 재배된다.

임야면적이 넓어 대추 · 도토리 · 표고버섯 · 원료 · 약초 · 산수유 · 용재 · 퇴비원료 둥의 임산물이 많이 생산되고, 한우 등의 가축사육도 행해진다. 홍원리는 대추산지로 유명하며, 중기리의 국골에서는 국화가 많이 재배되고, 이현리의 상뜸마을에서는 토종벌을 길러 소득을 올리고 있다.

교통은 울산∼신고산간의 국도가 지나며, 중앙에는 여기서 갈라진 의성∼구룡포간의 지방도가 북서쪽에서 남동방향으로 뻗어 있다. 또 북부에는 부남∼남정(南亭)간의 군도가 있으나 그다지 편리하지는 않다. 문화유적은 구천리에 병암서원과 석비가 남아 있다. 그 주위는 여헌대(旅軒臺) · 병암 등의 산천이 선경을 이룬다. 하속리의 당나무길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마을 가운데 있는 당나무에 제사를 지낸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대전(大前) · 감연(甘淵) · 홍원(洪源) · 하속(下涑) · 구천(九川) · 화장(花場) · 이현(泥峴) · 중기(中基) · 양숙(陽宿) 등 9개 리가 있다.

  1. 주왕산면(周王山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32.99㎢, 인구 1,99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주산지리이다. 주왕산면은 본래 청송부의 동쪽에 위치하므로 부동면(府東面)이라 하였다. 금리(金里) · 상평 · 암전(巖前) · 상삼선(上三宣) 등 1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청하군(淸河郡) 죽북면(竹北面) 하옥리(下玉里)의 일부가 편입되어 현재의 10개 리로 되었다.

태백산맥에 속하는 고산(高山)이 지배적이며, 북쪽 경계에 최고봉인 금은광이(812m)가 솟아 있고, 면내에도 명산인 주왕산(周王山, 721m)을 비롯하여 무포산(霧抱山, 717m) · 무장산(霧藏山, 641m) 등이 있다. 서쪽 경계 가까이에는 마평천(馬坪川)이 흐르고 연안에 충적평야가 전개된다. 그 지류인 주방천(周房川) · 주산천(主山川)이 거의 동서방향으로 평행되게 흘러 전면에 걸쳐 하계망을 펴고 있다.

총경지면적은 9.19㎢로 6.9%, 임야면적은 116.77㎢로 88.1%, 기타는 5.0%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이 6.19㎢로 67.4%를 차지하고 논이 3.0㎢로 32.6%를 차지하여 밭농사의 비율이 높다. 주곡 이외에 고추 · 파 · 상치 · 참깨 · 땅콩을 주로 재배하며 한우 · 돼지의 사육도 행해진다. 또한, 도토리 · 은행 · 송이버섯 · 원료 · 약초 · 산나물 등 임산물의 생산도 많다.

신점리의 신점마을 뒷산에서는 고령토가 많이 산출되어 사기그릇을 구워 파는 곳이 있다. 주산지의 상이전(上梨田)마을에는 각종 임산자원이 풍부하며, 목재 외에도 송이 · 더덕 · 산삼 등이 유명하다.

교통은 울산∼신고산간의 국도가 면의 서쪽 경계 가까이를 지나고, 청송∼영덕간 지방도가 동서로 뻗어 있다. 청송∼대전사, 상평∼이전간의 군도가 서부에 나 있으나 대체로 불편한 편이다.

명승지로는 상의리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주왕산이 있는데, 산세가 웅장하고 기암괴석이 많아 소금강이라 불리며 11경과 제1폭포 · 제2폭포 · 제3폭포 · 나한봉(羅漢峰) · 선인봉(仙人峰) 등이 유명하다. 문화유적은 상의리의 대전사 경내에 보광전이 있다. 그 외 옥계계곡과리 주산지 리에 침수정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분교 1개 교가 있다. 이전(梨田) · 상평(上坪) · 지(池) · 하의(下宜) · 상의(上宜) · 부일(扶日) · 내룡(內龍) · 항(項) · 나(羅) · 신점(新店) 등 10개 리가 있다.

  1. 안덕면(安德面)

군의 서부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107.82㎢, 인구 2,78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명당리이다. 고구려시대에 이화혜현이라 하였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연무현이라 하였다. 조선 세종 때 청송군 안덕현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덕면이라 하여 9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73년 현서면(縣西面)의 복리 · 덕성리 · 성재리가 편입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로 되어 있으며, 서쪽이 높고 서쪽 경계에 연점산(鉛店山, 871m) · 산지봉(産芝峰, 890m) 등의 산이 솟아 있다. 기반암은 경상계 신라통에 속하는 퇴적암이다. 면을 북류하다가 동류하는 보현천(普賢川) 연안에는 상당히 넓은 충적평야가 전개된다. 북부에서는 길안천(吉安川)이 산지 속에 감입곡을 형성하면서 흐르고 있다.

총경지면적은 10.99㎢로 10.3%, 임야면적은 87.27㎢로 81.6%, 기타는 8.1%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이 6.29㎢로 57.2%를 차지하고 논이 4.70㎢로 42.8%를 차지하며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로 행한다. 미곡의 생산량이 군내 2위일 정도로 많고 그 외에 조 · 옥수수 · 메밀 · 콩 · 녹두 등의 잡곡과 무 · 고추 · 배추 · 사과 · 대추 · 포도의 재배가 활발하다.

그리고 호두 · 대추 · 도토리 · 약초 · 산수유 · 용재 · 산나물 등의 임산물도 생산되며 젖소 · 돼지 · 토끼의 사육도 행해진다. 노래리의 배나무골에는 큰 배나무가 많이 자생하며, 지소리의 지소마을에는 닥나무로 종이를 생산하는 곳이 있다. 신촌마을은 하천을 끼고 있어 하천부지에 넓은 과수원이 있어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근곡리에는 약 50년 전에 개광하여 동 · 아연 · 철 등을 산출하는 청송광산이 있었고, 장전리에는 금광인 천마광산이 1887년 개광되었다가 광복 이후 폐광되었다.

교통은 의성∼구룡포간의 지방도와 감은∼도평간의 군도가 면을 횡단하며, 현서∼길안간의 군도가 남북으로 뻗어 있다. 문화유적은 신성리에 방호정, 장전리에 송학서원과 천연기념물인 향나무가 있고, 성재리는 약 200년 전 천주교도들이 심한 박해를 피해 거주하던 곳으로, 로마교황이 하사한 성기(聖器)가 보관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명당(明堂) · 감은(甘隱) · 장전(長田) · 문거(文居) · 신성(薪城) · 근곡(斤谷) · 노래(老來) · 고와(高臥) · 복(福) · 덕성(德城) · 성재(聖才) · 지소(紙所) 등 12개 리가 있다.

  1. 진보면(眞寶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109.51㎢, 인구 6,78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진안리이다. 삼국시대 때 칠파화현 · 청기현 등으로 불리다가 통일신라시대에는 진보현 · 진안현 · 적선현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에는 한때 야성군과 의성군에 포함되기도 하였고, 보성부 · 청부군과 합병되기도 했으나 조선시대에 다시 진보현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청송군에 편입되어 현재의 15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산지가 많으며 남부에 태행산(太行山, 933m) · 대둔산(大遯山, 905m) 등이 솟아 있다. 북으로 향하여 점차 고도가 낮아진다. 지질은 경상계에 속하는 퇴적암층으로 되어 있다. 중앙부를 반변천이 서류하면서 진안리 일대에 넓은 충적평야를 전개시킨다.

총경지면적은 17.63㎢로 16.2%, 임야면적은 81.66㎢로 74.8%, 기타는 9.0%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이 10.73㎢로 60.9%를 차지하고 논이 6.90㎢로 39.1%를 차지하며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농토가 비옥하여 흉년이 들 때가 별로 없으며, 미곡과 잎담배 생산은 군내 1위로 많다.

그 외 겉보리 · 조 · 옥수수 · 메밀 · 콩 · 팥 · 녹두 등의 잡곡, 고구마 · 감자 등 서류, 무 · 배추 · 양배추 · 오이 · 호박 · 고추 · 마늘 · 가지 · 상치 · 토란 등 채소류, 사과 · 복숭아가 생산된다. 또한 표고버섯 · 원료 · 퇴비원료 · 산나물 · 토석류 등의 임산물이 생산되고 한우사육도 활발하다. 세장리의 황골에서는 색깔이 노랗고 잘 건조된 우수한 담배가 많이 재배된다.

신촌리의 화문석공예특산지와 진안리의 오기도막에서 생산되는 화문석과 옹기는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현재의 면 소재지는 소도읍 가꾸기사업을 실시하여 현대도시의 형태를 갖추면서 모든 시설이 현대화되어 있다.

2개 노선의 국도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문화유적은 이촌리에 오층석탑, 광덕리에 진보향교와 귀암권덕조를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귀암정이 있다. 세장리에는 백호서당이 있으며, 추현리에는 박씨효자각이 있다. 기곡리의 압옥암(鴨玉巖) 위에는 명옥암폭포(鳴玉巖瀑布)가 있다. 신촌리에는 위장병과 속병에 효과가 뛰어난 신촌약수탕이 있다. 합강리는 함양오씨(咸陽吳氏), 광덕리는 안동권씨(安東權氏)의 동족마을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진안(眞安) · 이촌(理村) · 후평(後坪) · 합강(合江) · 기곡(基谷) · 추현(楸峴) · 부곡(釜谷) · 세장(世長) · 광덕(廣德) · 각산(角山) · 월전(月田) · 고현(高峴) · 신촌(新村) · 괴정(槐亭) · 시량(時良) 등 15개 리가 있다.

  1. 파천면(巴川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99.53㎢, 인구 1,90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관리이다. 본래 진보군의 지역으로 진보읍의 남쪽에 있어 남면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리면(上里面)의 괴정(槐亭) 일부와 부내면의 내부곡(內釜谷) 일부가 병합되면서 11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면 중앙을 흐르는 파질천(巴叱川)의 이름을 따서 파천면이 되었다.

대부분 지역이 300∼400m의 산지로 되어 있으며, 북쪽 경계에 비봉산(飛鳳山, 671m), 남동쪽에 중대산(680m) · 방광산(放光山, 519m) 등이 있다. 기반암은 경상계 퇴적암층으로 되어 있다. 반변천의 지류인 용전천(龍纏川)이 중앙부를 북류하면서 연안에 충적평야를 전개시킨다. 그 수지상(樹枝狀)의 지류는 산지 속을 개석한다.

총경지면적은 12.16㎢로 12.3%, 임야면적은 79.59㎢로 80.7%, 기타는 7.0%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이 8.20㎢로 67.4%를 차지하고 논이 3.96㎢로 32.6%를 차지하여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미곡 이 외에 메밀 · 수수 · 조 · 옥수수 · 콩 · 녹두 등의 잡곡과 감자 · 배추 · 참외 · 마늘이 주로 생산된다. 그리고 밤 · 잣 · 송이버섯 등의 임산물 생산과 돼지사육이 행해진다. 신기리의 우매마을에는 사과나무 과수원이 많은데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장텃개마을에서 생산되는 담배와 곡식은 품질이 좋기로 이름나 있다.

교통은 울산∼신고산간의 국도가 동부를 지나며 의성∼청송간의 지방도가 중앙부를 가로지르고 있으나 대체로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덕천리에 묵재서당(默齋書堂)과 송소고택이, 신기리에는 천연기념물인 느티나무가 있다. 송강리에는 수정사대웅전이 있다. 이곳은 푸른 소나무숲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경치가 아름다워 많은 시객들이 모여든다. 덕천리에 청송심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관(官) · 중평(中坪) · 덕천(德川) · 신흥(新興) · 신기(新基) · 지경(地境) · 병부(丙夫) · 황목(皇木) · 어천(魚川) · 송강(松江) · 옹점(甕店) 등 11개 리가 있다.

  1. 현동면(縣東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78.72㎢, 인구 2,20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도평리이다. 고구려시대에는 이화혜현, 신라시대에는 연무현이라 하여 곡성군에 속하였다.

고려 초에는 안덕현의 한 지역이었고, 현종 때 안동부에 이속되었으며 안덕현의 동쪽이라는 뜻에서 현동면이라 하였다. 조선 세조 때 청송도호부에 소속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청하군 죽북면 오창리의 일부가 편입되면서 현재의 7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산지가 많으며, 기반암은 경상계 신라통에 속하는 퇴적암으로 되어 있다. 동부와 남부가 높고 북서부가 낮으며, 동쪽 경계에 자초산(紫草山, 763m), 남쪽 경계에 베틀봉(930m) · 면봉산(眠峰山, 1,113m) 등의 높은 산이 솟아 있다. 눌인천(訥仁川)의 상류가 면 전체를 개석하고 개일리 부근에서 북동류하면서 연안에 상당한 충적평야를 전개시킨다.

총경지면적은 7.83㎢로 9.99%, 임야면적은 65.40㎢로 83.5%, 기타는 6.5%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이 4.85㎢로 61.9%를 차지하고 논이 2.98㎢로 38.1%를 차지하며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미곡 이 외에 수수 · 팥 · 사과 · 대추 · 복숭아를 많이 경작하며, 밤 · 호두 · 대추 · 용재 · 퇴비원료 · 느타리버섯 등의 임산물생산과 닭 · 사슴 사육이 활발하다. 도평리 거두멧골에서는 토종벌을 기르는 등 여러 가지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어 마을의 생활수준이 높다.

교통은 울산∼신고산간의 국도가 남북으로 지나며, 북서부에는 의성∼구룡포간의 지방도와 감은∼도평간의 군도가 인근 면과 연결되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인지리에 단음정(檀陰亭) · 추모정(追慕亭), 창양리에는 일송정(逸松亭)과 후송당이 있다. 인지리는 함안조씨(咸安趙氏)의 동족마을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도평(道坪) · 거성(巨城) · 눌인(訥仁) · 월매(月梅) · 개일(開日) · 창양(昌陽) · 인지(印支) 등 7개 리가 있다.

  1. 현서면(縣西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12.52㎢, 인구 2,600(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구산리이다. 고구려시대에는 이화혜현에, 신라시대에는 연무현에 속하였다. 조선 세조 때 청송도호부에 편입되었고, 부의 서쪽에 있다 하여 현서면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내면의 대거리 · 중리의 일부가 편입되어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73년 3개 리가 안덕면에 이속되어, 현재 13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남쪽 경계에 보현산(普賢山, 1,124m), 서쪽 경계에 구무산(676m) · 산두봉(山頭峰, 719m) · 어봉산(魚鳳山, 634m), 남부에 고모산(顧母山, 764m) · 대정산(大頂山, 704m) · 방각산(方覺山) 등이 솟아 있다. 길안천(吉安川)이 방각산에서 발원하여 산지 사이를 개석하면서 북류하다가 구산리 북방에서 동류하고 그 연안에 충적평야가 전개된다.

총경지면적은 11.29㎢로 10.1%, 임야면적은 93.48㎢로 83.2%, 기타는 6.7%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이 7.52㎢로 65.1%를 차지하고 논이 3.77㎢로 34.9%를 차지하여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 수수 · 옥수수 · 메밀 · 녹두 · 감자 · 양배추 · 오이 · 호박 · 수박 · 토마토 등의 작물과 사과 · 포도 등의 과수가 많이 재배된다. 사슴 · 토끼 · 닭 · 오리 등의 사육과 양봉이 행해진다. 무계리 칠미기마을은 토종벌을 길러 수익을 올린다.

교통의 경우 서부에는 부산∼강릉간의 국도가, 북부에는 면계를 따라 모동∼현서간의 지방도가, 남동부에는 현서∼길안간의 군도가 지나고 있으나 대체로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도리에 추원당, 수락리 당골마을 앞에 수령 400년 정도의 단(檀)나무가 있다. 월정리에서는 해마다 정월보름이면 마을 뒷산의 큰 바위에 올라가 달맞이를 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구산(九山) · 백자(栢子) · 수락(水洛) · 무계(武溪) · 갈천(葛川) · 월정(月亭) · 도(道) · 모계(慕溪) · 천천(泉川) · 화목(和睦) · 덕계(德溪) · 두현(豆峴) · 사촌(沙村) 등 13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청송군통계연보』(청송군, 2008)
『경북통계연보』(경상북도, 2005)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3)
『한국관광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 1985)
『경상북도사』(경상북도사편찬위원회, 1983)
『청송의 향기』(청송군, 1982)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2)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79)
청송군(www.cs.go.kr)
집필자
박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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