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가호리 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는 돌무지무덤과 간석기와 민무늬토기가 껴묻혀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및 돌널무덤이 조사되었고, 이 밖에 선돌 1기가 확인되었다. 돌무지무덤은 6∼8㎝ 두께로 7층으로 돌이 쌓여 있었다. 맨 밑에는 7개의 큰 강돌을 깔아놓아 칠성판 · 칠성신앙과 연관된 것으로 해석된다.
묻힌 사람의 머리는 북북서 방향으로 놓여 있으며, 유구의 크기로 보아 굽혀묻기를 한 것으로 생각된다. 돌무지 사이에서는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굵은 금무늬토기〔太線文土器〕조각이 검출되어 신석기시대의 무덤으로 생각된다.
남해안의 동삼동식 토기가 이 지역에서 출토된 점은 문화의 북상 전파로를 밝히는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인돌은 이미 파괴되어 전형을 알 수 없으나 굄돌의 형태로 볼 때, 북방식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돌방의 남쪽 마구리돌 옆에서 간 돌칼과 돌살촉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 발굴 당시 동쪽 굄돌 옆에서 쇠뿔잡이 1점이 수습되었고, 돌방 밖에서는 가락바퀴조각 1점과 돌끌조각 2점을 비롯해 민무늬토기조각이 다량으로 채집되었다. 한편, 덮개돌에서는 246개의 성혈(性穴)이 확인되었다. 이 고인돌은 유구의 방향으로 보아 묻힌 사람의 머리방향이 물의 흐름과 같은 북북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돌널무덤은 고인돌 서쪽에서 2기가 발굴되었다. 제1호분은 판돌을, 제2호분은 모난돌을 세워 널을 만들었다. 제2호분에서는 일단병식(一段柄式)의 간 돌검 1자루가 출토되었다.
선돌은 전체적인 모습이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고 있었다. 고인돌을 쳐다보는 위치에 조영되어 있어 고인돌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유적은 한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의 무덤인 고인돌 · 돌널무덤 · 선돌이 같이 조사되어 무덤간의 상호관계를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