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분권 1책. 필사본. 서문과 발문이 모두 없어 편집 경위와 필사 연대를 알 수 없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1985년 여강출판사(驪江出版社)에서 『화담급문제현집(花潭及門諸賢集)』이라는 제목으로 영인하였다.
시 20수, 서(序) 2편, 설(說) 1편, 기(記) 1편, 발(跋) 3편, 제문 5편, 묘갈명 2편, 행장 1편, 부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분량이 적은 편이나, 작품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하고 널리 알려진 것들이다. 평안도관찰사 이준경(李浚慶)에게 보낸 「기성정이동고관찰(箕城呈李東皐觀察)」은 대동강에서 즐기는 풍류를 희화적으로 묘사한 글이다. 아들 허균(許筠)이 엮은 『국조시산(國朝詩刪)』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 권필(權韠)은 이 시에 대해 “말을 놀리는 솜씨가 체를 얻었다(戱語得體).”라고 평하였다. 이 때문에 이 시는 「기성희제(箕城戱題)」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밖에 고성(高城) 해산정의 현판으로 지은 「고산해산정(高山海山亭)」, 1540년(중종 35) 겨울에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심수경(沈守慶)·윤결(尹潔) 등과 함께 독서하면서 지은 「중흥사제등월축(重興寺題燈月軸)」, 승려 지문(志文)에게 준 「증지문상인(贈志文上人)」 등도 유명한 작품이다. 나머지 작품들은 대부분 이항(李恒)·유희춘(柳希春)·이황(李滉)·조식(曺植) 등 당시 명공석학의 죽음을 애도한 만사이다. 이는 저자가 그들과 교분이 두터웠음을 보여주고 있다.
문은 대개 친지 등을 보내면서 지은 송서(送序) 또는 송설(送說), 문집이나 작품의 서(序)·발(跋), 그리고 제문 및 행장이 대부분이다. 그 중 「회재선생문집발(晦齋先生文集跋)」에서는 자신이 학문에 뜻을 두게 되었을 때 이언적(李彦迪)에게 가르침을 받아 경사(經史)를 읽음으로써 그 맥락을 잃지 않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처럼 학문의 성취 과정과 이언적에 대한 깊은 흠모의 정을 함께 토로하였다. 제문은 거의 만사를 지었던 인물들에 대한 것이다.
부록에는 노수신(盧守愼)이 지은 신도비명, 정구(鄭逑)가 지은 행장 등이 있다. 『남파집(南坡集)』·『상촌집(象村集)』·『수암집(守庵集)』 등의 문집이나 『석담일기(石潭日記)』·『미암일기(眉巖日記)』·『월정만록(月汀漫錄)』 등의 잡록에서 저자에 관한 내용을 발췌하여 수록한 글이 여러 편 실려 있다. 저자의 생애와 활동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저자가 죽은 뒤에 유문을 모아 편집한 것으로, 저자가 지은 시문보다 저자에 대한 후대인의 기록이 훨씬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후대인의 평가를 통해 저자의 생애와 학문세계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