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산군 ()

대동여지도 중 평안북도 초산 부분
대동여지도 중 평안북도 초산 부분
인문지리
지명
평안북도 중북부에 위치한 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평안북도 중북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위원군·강계군, 서쪽은 창성군·벽동군, 남쪽은 희천군·운산군, 북쪽은 압록강을 경계로 만주지방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5°36′∼126°10′, 북위 40°12′∼40°54′에 위치하며, 면적 2,327.63㎢, 인구 7만 8383명(1943년 당시)이다. 9면 62동리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초산면 성동동이다.

자연환경

대부분의 지역은 내륙산악 고원지대를 이루는데, 적유령산맥이 남부를 동서로 가로 뻗어 동림산(東林山, 1,165m)·우현령(牛峴嶺, 536m)·각대봉(角臺峰, 1,164m) 등이 솟아 있으며, 강남산맥의 중앙부가 북동에서 남서로 뻗어내려 다락령(多樂嶺, 659m)·득측산(得測山, 1,081m) 등의 산지가 솟아 있다. 그 밖에 동쪽에는 사덕산(寺德山, 1,291m), 서쪽에는 대봉산(大峰山, 1,149m)·괘봉(掛峰, 994m), 남쪽에는 피난덕산(避難德山, 1,316m)·대암봉(大巖峰, 1,025m), 북쪽에는 연대산(煙臺山, 519m)·삼각산(640m) 등이 있다.

하천은 동림산에서 발원한 충만강(忠滿江)이 북류하면서 용수천(龍水川)·송수천(松水川)을 합류한다. 다시 북류를 계속하여 고면천(古面川)·가막천(加幕川)을 합류하며, 초산·벽동 군계를 흐르면서 충면천(忠面川)과 합류하여 연대산 아래에서 압록강으로 유입된다. 또한, 초산천(楚山川)이 면의 북동부를 흐르다가 압록강으로 유입된다.

특히, 충만강의 유로연장은 138㎞로 하천 유역에는 대규모의 평지 또는 분지가 발달되었으며, 임산자원과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 강 및 그 지류 유역을 중심으로 생활하여 주요 거주지대와 생산지대를 이룬다. 그러나 하류 유역의 대규모의 평야는 1940년삭주 수풍댐이 완공됨에 따라 대부분 수몰되었다.

기후는 북부내륙지방에 위치하여 한서의 차가 심한 대륙성기후이다. 따라서, 더운 여름철이라도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하며, 겨울철에는 기온이 -30℃까지 내려간다. 연평균기온 6.7℃, 1월평균기온 -15.9℃, 8월평균기온 24.7℃, 연강수량 914.3㎜이다. 첫서리는 9월 하순경에, 마지막 서리는 4월 하순경까지 내린다.

역사

[고 대]

구석기뿐 아니라 신석기·청동기·초기철기 시대의 유적이나 유물이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인접한 위원군 용연리와 벽동군 송연리에서 청동기와 초기철기시대의 유물 및 주거지가 발견되어 이 지역에도 청동기시대부터는 사람이 살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연(燕)의 소왕(昭王) 때(기원전 312∼279)에 진개(秦開)를 보내어 조선을 침공하고 만번한(滿潘汗:지금의 요동)을 경계로 하였다 하고, 연의 화폐인 명도전(明刀錢)이 철산·영원·희천·위원·자성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음을 보아 고조선시대에 이곳에도 중국 상인이 들어와 무역에 종사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고구려의 영역에 들어 군현이 설치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이 군은 민족의 시조 단군이 군의 남쪽경계에서 불과 30㎞ 떨어진 영변의 묘향산에 강림하였다는 설화와 더불어 민족의 발상지와 근접해 있고, 또 압록강 건너 약 50㎞ 떨어진 동가강(佟佳江)변의 졸본(卒本:지금의 환인)은 고구려가 건국한 곳이므로 민족의 요람지에 속하는 중요한 곳이다. 발해시대에는 서경압록부에 속하였다.

[고 려]

발해가 멸망한 뒤 한때 발해유민 열만화(烈萬華)가 만주의 동가강 유역과 자성·후창·강계·위원·초산·벽동 등 압록강 유역에 정안국(定安國)을 세워 거란에 항거하였으나 986년(성종 5) 정안국이 멸망하자 이 일대에는 여진족이 무리를 지어 살았다. 당시 고려에서는 이곳의 여진을 서여진 또는 동번(東蕃)이라 하였다. 그 뒤 고려 후기에 원의 동녕부(東寧府)가 설치되면서 그에 소속되었다가 고려 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고려의 영토가 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에는 이곳에 군현을 설치한 기록이 보이지 않지만, 1759년(영조 35)에 편찬된 『이산부여지도 理山府輿地圖』와 『여지도서』에 의하면 1317년(충숙왕 4) 두목리만호(豆木里萬戶)를 설치하였고, 그 뒤 이주(理州)로 고쳐 치소를 산성(山城)으로 옮겼다가 충혜왕 때 다시 이산(理山)으로 개칭하여 지군사(知郡事)를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두목리와 이주·이산은 초산의 전신으로, 이 기록은 『주고기 州古記』에서 인용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확실한 전거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산군은 본래 여진족이 살던 두목리로서 고려 공민왕 때 인물이 점점 부성하였다고 한 것을 보면, 충숙왕이나 충혜왕 때는 몰라도 공민왕 때 동녕부를 수복하고 두만강과 압록강까지 북진하면서 두목리에 만호가 설치되고 이 지역이 고려의 영토에 편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조 선]

1402년(태종 2)산양회(山羊會, 또는 山羊湖)·도을한(都乙漢)·봉화대(烽火臺)·등이언(等伊彦) 등을 합쳐 이주라 하였으며, 1413년에 이산군으로 개편하였다. 그 뒤 세종 때에 치소를 앙토리에 옮겼고, 세조 때에는 진(鎭)을 설치하였다. 관원은 군수(종4품)·훈도(訓導, 종9품) 각 1원이 있었고, 이산진에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 종3품) 1원이 두어졌다. 1432년(세종 14) 호수는 577호, 인구는 1,686명이고, 군정(軍丁)은 익군(翼軍) 492명, 수성군 28명이었다.

야인방어의 최전선에 위치한 요지로, 1439년 7월 10일 수 미상의 야인이 산양회구자(山羊會口子)에 내습하여 군인 5명에게 화살 상처를 입히고 도망한 적이 있었는데, 이 같은 사건은 건주여진(建州女眞)에 의한 초산변경의 침범이 빈번하였음을 말해주는 하나의 사례가 된다.

임진왜란 때 초산 사람 김진(金珍)은 군관으로 출전하여 적의 부장을 사살하는 등 공을 세워 선천 선사포첨사(宣沙浦僉使)로 임명되었고, 그의 손자인 김국관(金國寬)은 1616년(광해군 8) 3월 조선과 명의 연합군이 심하(深河)에서 후금에 대패하고 강홍립(姜弘立)이 항복할 때 좌영장 김응하(金應河)와 같이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1712년(숙종 38) 청의 목극등(穆克登) 일행이 백두산정계비를 세울 때 흥경 방면으로부터 두도구(頭道溝)를 거쳐 압록강을 건너와 초산면 앙토리 합지(合池) 근처에서 묵고 백두산으로 떠난 사실이 읍지에 있다. 영조 때 편찬된 『초산읍지』에 의하면 1724년(경종 4) 평안감사 오명항(吳命恒)의 장청(狀請)으로 초산도호부로 승격하여 이로부터 초산이 공식 명칭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세종실록』 지리지·『동국여지승람』·『여지도서』·『이산부여지도』 등에서는 이산군의 별호가 초산이라 하여 그 이전부터 초산이라는 명칭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별호가 언제부터, 그리고 무슨 뜻에서 사용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1759년(영조 35) 18개 면으로 구성되었고, 호수는 1만 2232호, 인구는 4만 8822명이었다.

[근 대]

갑오개혁 이듬해인 1895년(고종 32) 5월 지방관제가 개편되면서 초산군으로 바뀌어 강계부에 속하였다가 다음해에 다시 지방관제가 13도제로 개편되자 평안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1907년 5월에는 22개 면으로 호수는 4,856호, 인구는 2만 2391명이었는데, 이렇게 격감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 뒤 1935년 호수 1만 4293호, 인구 8만 1437명으로 다시 급격한 증가를 보이고 있으며, 초산면·동면·남면·고면(古面)·풍면(豊面)·송면(松面)·도원면(桃源面)·판면(板面)·강면(江面)·성서면(城西面)의 10개 면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 군은 교통이 불편한 벽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3·1운동 소식도 뒤늦게 전달, 1919년 3월 16일에 천도교인의 주동으로 첫 시위를 벌이고 4월 1일에는 읍민 약 3,600명이 동원되어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벌였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집회횟수 4회, 집회인수 2,300명, 사망자 12명이었다.

3·1운동 후에 독립운동을 한 주요 인물을 보면 상해임시정부의 국내 지방행정조직인 연통제(聯通制)가 1920년 3월부터 가동되자 군감(郡監)에 임명된 남정봉(南廷鳳), 군인 출신으로 한말의 의병운동에 참가하고 3·1운동 후 중국에 망명하여 임시정부에 가담하였다가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른 최영호(崔永鎬)가 있다.

또한 1920년 남만주의 독립당에 가담하여 활약하다가 1925년 2월 27일 집안 고마령(輯安 古馬嶺) 계곡에서 초산경찰대와 초산주둔 수비군 약 200명의 기습을 받아 중과부적으로 대원 39명과 같이 전사한 최항신(崔恒信)도 있다.

그 밖에도 1920년 만주로 이주하여 독립운동에 가담하고 1924년 5월 19일 사이토(齋藤) 총독 일행을 위원군 마시(馬嘶)지방 대안에서 총격하였으나 실패했으며, 그 해 12월에 남만주 관전지방에서 국내 잠입을 계획하던 중 일본군경 약 80명의 기습을 받아 전사한 김관보(金官寶) 등이 있다.

이처럼 이 군은 직접 압록강을 건너 만주에 드나들기 쉬웠기 때문에 독립군활동의 온상지로 유명하였던 것이다. 1941년 수풍댐이 완공되어 성서면이 수몰됨에 따라 초산면에 흡수, 통합되었다.

유물·유적

이 군은 고려 말에 우리 영토로 수복된 이후 조선초에는 야인들의 끊임없는 침입을 받았으므로 이를 방어하기 위하여 많은 성채를 구축하였는데, 아직도 그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 있다. 고면 구아동에 있는 고리산성지(古理山城址)와 초산면 와인동과 수침동 사이에 있는 덕리산성지(德里山城址), 초산면 연무동에 있는 산양회보성지, 용암동에 있는 아이진성지, 도원면 관대동에 우현진성지(牛峴鎭城址), 송면 차령동에 차령진성지(車嶺鎭城址), 초산면 앙토동에 앙토리목책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덕리산성지는 1398년(태조 7) 고리산성으로부터 군치소를 이곳으로 옮기려고 축성을 시작하였다가 중단한 것으로, 지금도 둘레의 성곽과 청사를 짓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가뭄이 심할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유험하다고 한다. 이 밖에 누정으로 초산면 성동동에 영호정(暎湖亭)·백운루(白雲樓), 와인동에 망고정(忘苦亭), 송면에 요이정(樂二亭)이 있고, 초산면에 문묘대성전(文廟大成殿)과 우화루(雨化樓)가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1448년(세종 30) 초산면에 군치소를 설치할 때 향교를 건립하여 많은 유생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변방지대에 위치하여 여진·후금 등 야인의 끊임없는 침략으로 인하여 향교도 오랜 기간 황폐화된 상태였다. 그러다가 1662년(현종 3) 치안이 회복되면서 향교와 부속교육기관을 재건하여 본격적인 인재양성에 힘을 기울였으며, 1708년(숙종 34)부터는 향시제도를 도입하여 매년 백일장을 열고 학력을 신장시켰다.

1727년(영조 3)에는 섬학고(贍學庫)를 설립하여 재정적으로 교육을 지원하였으며, 장학제도를 운용하여 면학기풍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1894년(고종 31)에 철폐되었다. 또한, 지방 여러 곳에는 서당을 중심으로 한문을 전수하였다. 그리고 주민들이 한학에 대한 미련 때문에 신교육 실시 이후에도 1920년대까지 29개 소의 서당과 981명의 학동이 있었다고 한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1895년 4년제 초등교육기관인 공립시무학교가 설립되었으며, 국권상실 후에 6년제 공립보통학교로 개편되었다. 1908년 장로회 계통인 사립배신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11년 초산공립보통학교, 1919년 고장공립보통학교 등이 계속 설립되어 1면1교의 교육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1945년 당시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2개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종교상황은 1883년 동학이 포교를 선포할 때부터 천도교가 전파되었으며, 1896년 교주 손병희(孫秉熙)가 직접 포교에 힘쓴 바 교세가 급격히 팽창하여 문화운동과 항일독립운동에 선구적 활동을 하였다. 기독교는 1908년 예수교 장로회가 전파되어 선교 및 육영사업에 힘썼다. 1945년 현재 불교사찰 2개, 개신교교회 17개가 있다.

이 고장에는 〈황새의 노래판정〉이라는 설화가 전한다. 어느 날 꾀꼬리와 따오기가 서로 자기가 노래를 잘한다고 노래자랑 다툼을 하였는데, 아무리 저희들끼리 다툼질을 해보아도 결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배운 것도 있고 재간이 많은 황새에게 가서 누가 노래를 잘 하는가를 판정해 달라고 하고는, 어느 날 황새 앞에서 노래자랑을 하기로 하였다.

따오기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제 노래가 꾀꼬리만은 못하니까 어떻게든지 이기겠다고 여러 모로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황새가 개구리를 좋아하니 개구리를 많이 잡아다 황새한테 주고 꾀꼬리보다 노래를 잘한다고 판정을 내려달라고 청해 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따오기는 개구리를 많이 잡아 황새한테 가져다 주면서 꾀꼬리하고 노래자랑 할 때에 나를 이기게 해달라고 하였다.

꾀꼬리와 따오기는 황새 앞에서 노래자랑을 하게 되었다. 먼저 꾀꼬리가 노래를 불렀다. 그 다음에 따오기가 불렀다. 황새가 노래를 다 듣고 나서 꾀꼬리가 더 잘한 것 같은데, 따오기한테서 개구리를 많이 얻어 먹었으니까 꾀꼬리가 더 잘 불렀다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황새는 “야 꾀꼬리가 노래는 잘 불렀어도 에미나이 소리 같구나. 그런데 따오기는 노래를 힘차고 크게 불렀으니까 따오기가 더 잘 불렀다.”라고 하였다.

산업·교통

산악고원지대로 평야가 협소하여 밭농사 위주의 농업이 행하여진다. 주요 농산물로는 콩·조·수수·옥수수·감자·대마·잎담배 등이 생산되며, 농가부업으로는 축우·양돈·양잠·양봉 등이 행하여진다. 특산물인 개가죽 담배쌈지는 동면이 주산지로 개가죽을 재료로 만든 일종의 공예품이다.

임업은 이른바 압록강재를 산출하는 대삼림지구의 일부로서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벌채된 원목은 압록강의 수운 또는 삼림철도를 이용하여 신의주와 함경도 방면으로 운반된다. 주민들은 제재업을 자영하기도 하지만, 벌채·제재의 노무자로 노임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산지에서는 산삼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한약재가 산출된다. 광업은 금·은·운모·인상흑연 등이 산출되지만 그 채광활동은 부진하다. 〈盧道陽〉

상업활동은 『임원경제지』에 의하면 1830년 읍내에는 관전장과 남면에 남면장, 강면에 강면장, 별면에 별면장 등의 4개 시장이 있었다. 주요 거래품은 소·돼지·옥수수·콩·수수·감자와 포목·솜·놋그릇·철물·나무그릇·옹기·사기그릇·꿀·담배·삿자리 등이었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1902년에 읍내장(邑內場)·동창장(東倉場)·동건장(童巾場)·강창장(江倉場)·고면장(古面場)이 있었다.

3개의 정기시장이 있는데 초산면 성동동 초산장이 1·6일, 고면 부평동 고장장이 3·8일, 판면 판평동 판평장이 5·10일에 각각 열린다. 주요 거래품목은 곡물류·가축류·땔감·가죽·면포 등이며, 그 밖에 일상생활용품이 거래된다. 이 가운데 초산장은 성동동 동문 밖에서는 동박장, 성서동 남대문 밖에는 남박장이 교대로 열렸으나 1940년부터 성동동으로 장소를 지정하여 통합하였다. 주로 잡곡류·축산물이 신의주 방면으로 반출되고, 해산물이 반입되었다.

교통은 신의주∼혜산진 간의 1등도로가 면의 북부를 통과하며, 만포·자성·신의주 방면과 연결된다. 신안주∼초산 간의 2등도로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통과하며, 안부(鞍部)를 교통로로 이용하여 극성령(棘城嶺, 765m)을 넘어 희천 방면에, 우현령을 넘어 운산 방면에 각각 연결된다. 그 밖에 주요 지역에 간선도로가 연결되어 있으나 산간벽지인 관계로 대체로 불편한 편이다.

또한, 압록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물자의 운반이 이루어졌으며, 수풍댐 건설 이전까지 프로펠러선이 기항하기도 하였다. 특히, 신도장(新道場) 포구는 이 군의 압록강 수운의 요지이다. 주요 관광지로는 고면 월악동에 월악굴, 남면 신막동에 신막굴, 초산면 연무동에 성인교, 운해천동에 봉황대, 평강동에 치열약수, 성서동에 명상루 등이 있다.

읍·면

[강면 江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인구 7,709명(1944년 당시). 면소재지는 동도동이다. 대부분의 지역은 산악지대를 이루어 동쪽은 득측산·동산(東山, 1,040m)·가어산(加御山, 1,070m), 남쪽은 대봉산, 북쪽은 두웅산(斗雄山, 768m) 등의 산이 솟아 있다. 판면으로부터 유입되는 충만강이 면의 남부를 북서류하다가, 벽동군의 동남부를 북류하는 가막천과 합류하여 벽동군계를 따라 흐르다가 남면으로 흘러들어간다.

산지가 많고 충만강과 가별천(加別川)이 격자상으로 흘러 평지가 협소하여, 제한된 소규모의 농경지에서 주곡 중심의 농업이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조·수수 등이다. 임업은 임산자원이 풍부하며, 생산된 목재는 압록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운반한다. 광업은 인상흑연이 산출된다. 교통은 주요 지역에 등외도로가 지나며, 남면·풍면·판면 등과 연결되어 있으나 불편한 편이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 교가 있다. 동도(東島)·석상(石桑)·신풍(新豊)·풍덕(豊德)·용성(龍星) 등 5개 동리가 있다.

[고면 古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인구 9,504명(1944년 당시). 면소재지는 부평동이다. 강남산맥의 여맥이 뻗어내려, 서쪽은 가마봉(加馬峰, 872m), 남쪽은 삼봉산(三峰山, 1,585m), 북쪽은 삼각봉(三角峰, 1,058m) 등의 산이 솟아 있다. 삼봉산에서 발원한 고면천이 면의 중부를 북서류하다가 풍면으로 흘러들어가 충만강으로 유입되며, 백면천(柏面川)이 면의 서부를 흐른다.

경지가 협소하여 제한된 소규모의 농경지에서 밭농사 중심의 농업이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은 콩·조·수수 등이다. 임업은 침엽수·활엽수 등의 임산자원이 풍부하며, 생산된 목재는 충만강·압록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운반한다. 교통은 신안주∼초산 간의 2등도로가 면의 서부를 지나며, 동면 방면으로 도로가 분기되어 면의 북서부를 남북으로 지난다. 풍면·남면·동면·송면·위원군 등과 연결되어 있으나 불편한 편이다.

주요 관광지로는 월악동에 천연종유동굴인 월악굴이 있으며, 유물·유적으로는 구아동에 고리산성지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 교가 있다. 부평(富坪)·월악(月岳)·영풍(永豊)·문덕(文德)·소수(小水)·대수(大水)·구아(舊衙) 등 7개 동리가 있다.

[남면 南面]

군의 중북부에 위치한 면. 인구 8,624명(1944년 당시). 면소재지는 구평동이다. 강남산맥이 뻗어 내려 동북쪽은 각고봉(角高峰, 921m), 서쪽은 신평봉(新平峰, 931m), 남쪽은 두웅산 등의 산이 솟아 있다. 충면천이 면의 중앙을 서류하다가 충만강으로 유입된다. 경지가 협소하여 제한된 소규모의 농경지에서 1년1작의 밭농사 중심의 농업이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은 콩·조·수수·옥수수 등이다. 임업은 침엽수·활엽수 등의 임산자원이 풍부하며, 생산된 목재는 압록강·충만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운반한다.

교통은 신안주∼초산 간의 2등도로가 면의 동부를 지나며, 벽동군 방면으로 도로가 분기되어 면의 중부를 동서로 지난다. 동면·고면·풍면·강면·초산면·벽동군 등과 연결되어 있으나 불편한 편이다. 주요 관광지로는 신막동에 천연종유동굴인 신막굴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 교가 있다. 구평(龜坪)·창평(倉坪)·신막(新幕)·충상(忠上)·송묘(松廟)·부평(富坪)·충하(忠下)·용상(龍上) 등 8개 동리가 있다.

[도원면 桃源面]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인구 3,924명(1944년 당시). 면소재지는 관대동이다. 적유령산맥이 뻗어내려 동쪽은 각대봉, 남쪽은 우현령·극성령, 북쪽은 사덕산 등의 산이 솟아 있다. 각대봉에서 발원한 용수천이 흐르다가 충만강으로 유입된다. 경지가 협소하여 제한된 소규모의 농경지에서 밭농사 중심의 농업이 이루어지며, 일부 고산지대에서는 화전형태의 원시경작이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은 콩·조·옥수수·기장 등이다.

임업은 임산자원이 풍부하며, 생산된 목재는 압록강·충만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운반한다. 광업은 인산과 과인산석회비료의 원료인 인회석이 채광되고, 고무공업과 바륨원료인 중정석광상(重晶石鑛床), 질코니움의 원광인 풍신자광(風信子鑛) 등이 있다. 교통은 신안주∼초산 간의 2등도로가 면의 서남부를 통과하며, 안부인 우현령과 극성령이 교통로로 이용된다. 운산군·희천군 등과 연결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 교가 있다. 관대(館垈)·동창(東倉)·회목(檜木)·희창(熙倉) 등 4개 동리가 있다.

[동면 東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인구 6,924명(1944년 당시). 면소재지는 구룡동이다. 강남산맥과 낭림산맥의 아득령으로부터 분기된 지맥이 이 면으로 뻗어내려 대부분의 지역이 산악지대를 이루어, 서쪽은 각고봉, 남쪽은 삼각봉, 중앙은 고산덕봉(高山德峰, 872m) 등의 산이 솟아 있다. 화신동의 산간계곡에서 발원한 초산천이 면의 북동부를 흐르다가 초산면을 지나 압록강으로 유입된다. 경지가 협소하여 제한된 소규모의 농경지에서 1년1작의 밭농사 중심의 농업이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은 콩·조·수수 등이며, 특산물로는 개가죽으로 만든 담배쌈지가 있다. 임업은 침엽수·활엽수 등의 임산자원이 풍부하며, 생산된 목재는 압록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운반한다. 교통은 신안주∼초산 간의 2등도로가 면의 서부를 지나며, 고면 방면으로 도로가 분기되어 면의 서남부를 동서로 지난다. 초산면·남면·고면·위원군 등과 연결되어 있으나 불편한 편이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 교가 있다. 구룡(龜龍)·양덕(陽德)·신장송(新場松)·화신(花薪)·건양(建陽)·화풍(化豊) 등 6개 동리가 있다.

[송면 松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인구 9,855명(1944년 당시). 면소재지는 양강동이다. 적유령산맥이 뻗어내려 동쪽은 사덕산·주덕산(朱德山, 1,087m), 남쪽은 동림산·대암봉, 북쪽은 묘암산(妙巖山, 1,763m)·백두산(白頭山, 1,623m) 등의 산이 솟아 있다. 충만강이 면의 중부를 북류하다가, 원대동에서 용수천을 유입하며, 양강동에서 송수천을 유입하여 판면으로 흘러들어간다.

경지가 협소하여 제한된 소규모의 농경지에서 밭농사 중심의 농업이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은 보리·기장 등이다. 임업은 임산자원이 풍부하며, 생산된 목재는 충만강·압록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운반한다. 교통은 신안주∼초산 간의 2등도로가 면의 중부를 지나며, 풍면·판면·도원면·운산군 등과 연결되어 있으나 불편한 편이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 교가 있다. 양강(兩江)·송수(松水)·송파(松坡)·송평(松坪)·송정(松亭)·송성(松城)·차령(車嶺)·원대(元垈) 등 8개 동리가 있다.

[초산면 楚山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인구 1만 8283명(1944년 당시). 면소재지는 성서동이다. 대부분의 지역이 산악지대를 이루어 서쪽은 연대산, 북쪽은 삼각산 등의 산이 솟아 있다. 초산천이 면의 북동부를, 충만강이 면의 서부를 북류하다가 모두 압록강으로 유입된다. 하천 유역에는 소규모의 평야가 형성되어 논농사가 이루어지며, 그 밖에 제한된 경지에서 밭농사 중심의 농업이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은 쌀·조·수수 등이다. 임업은 임산자원이 풍부하며, 생산된 목재는 충만강·압록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운반한다. 교통은 신의주∼혜산 간의 1등도로가 면의 남부를 동서로 지나며, 신안주∼초산 간의 2등도로가 면의 동부를 지난다. 성서면·동면·남면·혜산군·벽동군 등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주요 관광지로는 운해천동에 봉황대, 평강동에 치열약수 등을 들 수 있으며, 천연기념물로는 두루미가 서식하고 있다. 유물·유적으로는 성동동에 영호정, 성서동에 명상루, 앙토동에 앙토리목책·몽견사(夢見寺), 연무동에 아이진성·산양회보성지와 성인교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4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성서(城西)·성동(城東)·운해천(雲海川)·앙토(央土)·평강(坪江)·사기덕(沙器德)·와인(瓦仁)·수침(水砧)·직(直)·모단(慕段)·연무(蓮舞)·용암(龍巖)·안찬(安贊)·삼상(三上) 등 14개 동리가 있다.

[판면 板面]

군의 서남단에 위치한 면. 인구 6,875명(1944년 당시). 면소재지는 판평동이다. 적유령산맥이 뻗어내려 남쪽은 피난덕산, 북쪽은 대봉산·괘봉 등의 험한 산이 솟아 있다. 충만강이 동부를 북류하다가, 판평동에서 고면천과 피난덕산에 발원하여 면의 중부를 북류하는 부숭천(富崇川)을 유입하여 강면으로 흘러들어간다. 경지가 협소하여 제한된 소규모의 농경지에서 1년1작의 밭농사 중심의 농업이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은 조·수수·귀리 등이다. 임업은 임산자원이 풍부하며, 생산된 목재는 충만강·압록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운반한다. 광업은 판하동에서 인상흑연이 생산된다. 교통은 신안주∼초산 간의 2등도로가 면의 동부를 지나며, 운산군 방면으로 도로가 분기되어 면의 중부를 남북으로 지난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 교가 있다. 판평(板坪)·판막(板幕)·판하(板下)·삼거(三巨)·부숭(富崇) 등 5개 동리가 있다.

[풍면 豊面]

군의 중부에 위치한 면. 인구 5,940명(1944년 당시). 면소재지는 용암동이다. 대부분의 지역이 산악지대를 이루어 동쪽은 묘암산, 서쪽은 가어산, 서북쪽은 득측산, 남쪽은 백두산, 중앙에는 명장상(明場山, 1197m) 등의 험한 산이 솟아 있으며, 그 밖에 대장항령(大獐項嶺, 517m)·주사령(朱砂嶺, 462m) 등이 있다. 고면으로부터 유입된 고면천이 면의 서부를 남류하다가 충만강으로 유입된다.

경지가 협소하여 제한된 소규모의 농경지에서 밭농사 중심의 농업이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은 보리·기장 등이다. 임업은 임산자원이 풍부하며, 생산된 목재는 충만강·압록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운반한다. 교통은 신안주∼초산 간의 2등도로가 면의 서부를 동서로 통과하며, 그 밖에 강면·동면·송면·판면 등과 연결되어 있으나 불편한 편이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 교가 있다. 용암(龍巖)·용흥(龍興)·용당(龍塘)·용연(龍淵)·용곡(龍谷) 등 5개 동리가 있다.

광복 후 변천

현재 자강도 서부 압록강 기슭에 있으며, 동쪽은 위원군, 서쪽은 우시군, 남쪽은 고풍군, 북쪽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접하고 있다. 면적은 590㎢, 인구 3만 4292명(1996년 추정)이다.

이 군은 본래 평안북도에 속하여 있다가 1949년 1월 자강도가 신설되면서 이 도에 속하게 되었다. 1952년 12월 이 군에 속하여 있던 고풍·송원 지역이 분리되어 나가고 종전의 초산면·동면의 전부와 남면의 대부분 지역, 그리고 위원군 서대면의 일부가 편입되어 초산군이 되었다. 1961년 3월 하창리가 우시군에, 신창리가 고풍군에 각각 분리, 병합되었다.

행정구역은 초산읍을 비롯하여 앙토·연풍(蓮豊)·이산(梨山)·운평(雲坪)·장토·연무·용상·안찬·수침·와인·직·구룡·신양송·화신·화건(和建)·구평·충상·송묘 등 18개 이가 있으며, 군 소재지는 초산읍이다.

[자연환경]

이 군은 저산성산지가 많은 군으로 충면천과 초산천 등에 의해 깍이여 지형이 복잡하다. 남쪽 경계에 강남산맥이 뻗어 있으며, 삼각봉(1,052m)·대바위봉(881m)·남해태산(1,079m) 등 1,000m 안팎의 산들이 솟아 있다. 북쪽 압록강 연안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져 해발 150m를 이룬다. 하천은 압록강과 그 지류인 초산천 등 49개가 흐른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나타내며, 연평균기온은 6.3℃, 1월 평균기온은 -15.7℃, 8월 평균기온은 22.8℃이다. 연평균강수량은 983.1㎜이며, 첫서리는 10월 4일경에, 마감서리는 4월 28일경에 내린다. 산림은 군 전체면적의 76.1%를 차지하며, 주로 소나무·잣나무·참나무·이깔나무 등이 섞여 있다.

[산업·교통]

주요 산업은 농업과 공업이다. 농업은 곡물생산을 위주로 하면서 특용작물과 채소생산을 하고 있다. 축산업은 소·돼지·양·염소·토끼·닭·오리 등을 많이 기르며, 잠업은 주요 소득사업의 하나로 도내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공업은 방직 및 피복 공업이 발달하였고, 그 밖에 화학·기계·건재·직물·일용품·식료품공업 등이 있다. 교통수단은 철도는 없고, 강계·고풍·우시 등지로 통하는 도로가 있으며, 만포·수풍 방면으로 가는 뱃길도 있다.

유물·유적은 초산읍남산 중턱 절벽에 영호정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산고등중학교가 있다.

참고문헌

『북한지지요람』(통일원, 1993)
『인물의 고향』-북한편-(중앙일보사, 1991)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초산읍지』
『한국독립운동지혈사』
『평안북도지』(평안북도지편찬위원회, 1973)
『초산군지』(초산군지편찬위원회, 1983)
관련 미디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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