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초적(草笛)은 삼국시대에 처음 등장한다. 『수서(隋書)』 동이전(東夷傳)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에 “취로이화곡(吹蘆以和曲)”이라 하여 갈대를 불어 연주하는 악기를 소개하고 있다. 고려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수록된 “문가성”(聞笳聲)이라는 고율시(古律詩)에는 “누가 숲속에서 푸른 잎 하나를 따다가, 입에 물고 불어서 맑은 소릴 내는고”[誰摘林間一葉靑, 拈吹口吻成淸弄]라고 하여 나뭇잎으로 연주하는 풀피리가 나타나고 있다.
조선시대 초적은 궁중을 비롯한 민간에서 폭넓게 연주되었다. 성종대에 편찬된 『악학궤범(樂學軌範)』에는 초적이 궁중 향악에 사용되는 향악기로 기록되었다. 연산군은 초적을 특히 사랑하여 전국에서 초적을 잘 연주하는 기녀들을 궁중으로 불러들이기도 하였다. 영조대에는 내연(內宴)에 참여하는 관현맹인(管絃盲人)으로 초적을 연주하였던 강상문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콜럼비아(Columbia)와 리갈(Regal) 유성기음반에 강춘섭(姜春燮)이 초금독주(草琴獨奏)를 취입하기도 하였다.
『악학궤범』을 보면 초적에는 주1를 말아 부는 것과 잎사귀를 잎에 물고 부는 것이 있다. 전자는 여러 재료로 관을 만들고 관 끝을 주2로 삼아 버들피리와 같은 형태로 연주하는 것이며, 후자는 떨림을 만들 수 있는 귤, 유자의 나뭇잎과 주3와 같은 재료를 입에 물고 진동시켜 소리내는 것을 말한다.
최근에는 전자를 호들기[버들피리], 보리피리, 민들레피리 등과 갈잎피리, 잎을 말아 부는 풀피리 등을 준호들기류로, 후자를 초금류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 이후 초적은 향악기로서 궁중의 연향에 활용되었다. 선조대에는 기영회 때 초적이 사용되었고, 영조대에는 갑자년 진연 중 내연에서 헌선도, 포구락, 연화대, 금척, 아박, 하황은, 처용무 등 정재 반주 악기로 사용되었다. 민간에서도 초적은 오락적인 목적으로 자주 활용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초적은 강춘섭에 의해 독주 악기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현대로 오면서 초적을 새롭게 문화 예술적으로 조명하여 1999년 서울특별시 무형유산 풀피리 보유자로 박찬범이 지정되었고, 2002년에는 경기도 무형유산 풀피리 보유자로 오세철이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