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1책. 목판본.
김정국의 자서에 의하면, “여러 의방약서 중에서 민간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약방(藥方)과 또는 시골 부로(父老)들의 문견(聞見)에서 효력을 보았다고 전하는 여러 방문들을 수집하여 『촌가구급방(村家救急方)』 1권을 편집하였다.”고 하여 편집경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가 경기도 고양망동(芒洞)의 촌가에 있을 때에 편집한 것을, 1538년(중종 33) 전라감사로 있을 때 남원에서 간행한 것이다. 이 책은 벽촌의 시골 백성들이 병이 났을 때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맨처음 본초부(本草部)에서 약재 120여 종에 향명(鄕名)을 붙여 알기 쉽게 기록하였으며, 그 다음에는 대방과(大方科)·부인문(婦人門)·소아문(小兒門)의 3부로 나누었다. 대방과에서는 늘 볼 수 있는 병증 70여 종에 대한 치료법을 논하고, 부인문에서는 24종, 소아문에서도 24종의 병증에 대한 치료법을 알기 쉽게 해설하였다.
권말에는 익수(溺水)·자액(自縊)·파상풍(破傷風)·괴질(怪疾)·육독(肉毒) 등의 치료방법을 부가하였다. 이 책은 1538년의 초간본과 1572년(선조 5)의 재간본이 현재 전하고 있는데, 『고사촬요(攷事撮要)』의 팔도책판목록(八道冊板目錄) 중에는 전라도 남원판과 경상도 진주판이 보인다.
남원판은 초간본에 해당되고, 진주판은 1585년(선조 18)에 허봉(許篈)이 『고사촬요』를 속선(續選)할 때 새로 추가한 것이므로 재간본에 해당한다.
책 첫머리의 목록 뒤에 ‘향명(鄕名)’이라 하여 본문에 나오는 약재 128종을 3단으로 싣고서, 쌍행으로 그 고유어를 이두와 한글로 표기하였다. 예컨대 ‘萎蕤(위유), 苦蔞(고루)’에 대하여 ‘豆應仇羅(둥구라), 天叱他里(하ᄂᆞᆯ타리)’라 한 것이 그것이다.
이들 자료와, 본문 안에 한글로 표기된 약간의 약재 이름이 중세 국어의 연구자료가 된다. 현재 공개된 책은 1572년 무렵 관찰사 이우민(李友閔)이 함경도 함흥에서 중간한 것이므로, 자료에는 당시의 함경도방언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된다.
한글자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방점과 ᅀᅠ·ᄠᅳᆷ이 사용되지 않았다. 중세국어의 ㅿ이 탈락된 ‘○나모 겨ᄋᆞ사리, 두ᄅᆞᆷ의 나이, 여의 오좀’과 함께 ㅅ으로 된 ‘새삼(菟絲子), 너삼(苦蔘)’이 있다. 다만 ᄠᅳᆷ은 본문 안의 한글표기에서 받침으로 쓰인 예가 있다.
둘째, 구개음화현상이 완성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예:○쟝가리<○댱가리(升麻), 셕죡화<셕○화(瞿麥). 더욱이 ‘지’가 ‘디’로 잘못 표기된 ‘디남셕<지남셕(磁石)’의 예에서 t구개음화가 완성되었음이 확인된다.
어두의 ㄱ이 구개음화된 ‘사ᄃᆞ새 지ᄅᆞᆷ<사ᄃᆞ새 기ᄅᆞᆷ(鶔鴣油)’의 예는 매우 주목할 부분이다. 이 자료가 반영하는 언어에서는 k구개음화도 일어났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구개음화현상은 전라도방언을 반영하는 『몽산법어언해』 등 1577년(선조 10) 중간의 송광사판에 처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 자료는 그보다 약 4년 앞선 점에서 국어사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셋째, 방언의 어휘로 보이는 ‘겁지(皮), 마아존(白薇)’ 등도 특이하다. 전자는 ‘겁질’에 해당되고, 후자는 ‘마하존’에서 ㅎ이 탈락한 예들이다. 이두 자료에서는 ‘叱科阿里 ᄭᅪ리’의 ‘叱’이 이른바 된시옷에 대응되는 점이 주목된다.
이두의 ‘叱分(ᄲᅮᆫ), 叱段(○단)’ 등에서 같은 ‘叱’이 사용되나 비자립형식인 조사의 예인 데 대하여, 이 예는 자립형식인 명사의 어두음을 표기하는 데 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