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명주(溟州). 예부낭중(禮部郎中) 최효온(崔孝溫)의 손자로 아버지는 추밀원부사를 지냈다.
문음(門蔭)으로 양온령동정(良醞令同正)을 받아 이후 권지각문지후(權知閣門祗候)·안동대도호부판관(安東大都護府判官)·감찰어사(監察御史)·각문부사(閣門副使)·이부원외랑(吏部員外郎)을 지냈다.
충주와 영삭진(寧削鎭)의 부사와 형부낭중(刑部郎中)·사재소경(司宰小卿)·이부시랑(吏部侍郎)·추밀원우부승선(樞密院右副承宣)·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수사공(守司空) 등을 지냈다. 참지정사이부상서판호부사(參知政事吏部尙書判戶部事)로서 사퇴하였다. 1232년(고종 19) 몽고의 1차 침략 때에는 접반사가 되어 몽고 원수 살리타이[撤禮塔]가 파견한 사신의 영접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1254년에 작성한 묘지석이 현재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