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정칙(正則). 호는 율정(栗亭). 최준문(崔濬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계종(崔繼宗)이고, 아버지는 최변(崔忭)이며, 어머니는 우성훈(禹成勳)의 딸이다. 최동립(崔東立)의 동생이다. 대사성 우성전(禹性傳)의 문인이다.
1588년(선조 21) 진사가 되고, 159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학유·헌납을 거쳐 장령이 되었으나 대신의 미움을 받아 경성부판관으로 좌천되었고, 부임한 날로부터 주색을 즐겨 곧 파직당하였다.
이듬해 직강·사예를 거쳐 안변부사가 되어 제방을 쌓고 도랑을 파는 등 관개사업을 크게 일으켰다. 광해군 초에 문학·장령·사간·필선·집의 등을 거쳐 1612년(광해군 4) 보덕이 되고, 이듬해 사간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취임하지 않았다.
광해군이 궁궐을 새로 짓고 천도하려 하자 한(漢) 나라의 고사를 인용하여 그 부당함을 극간하였고, 정조(鄭造)·윤인(尹訒) 등이 폐모론을 발의하자 처음으로 반대의견을 제시하고는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뒤 다시 벼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