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식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사간, 필선, 보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율정(栗亭)
  • 정칙(正則)
인물/전통 인물
  • 본관삭녕(朔寧)
  • 사망 연도1614년(광해군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사간
  • 출생 연도1562년(명종 1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태진 (서울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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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사간, 필선, 보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정칙(正則). 호는 율정(栗亭). 최준문(崔濬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계종(崔繼宗)이고, 아버지는 최변(崔忭)이며, 어머니는 우성훈(禹成勳)의 딸이다. 최동립(崔東立)의 동생이다. 대사성 우성전(禹性傳)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8년(선조 21) 진사가 되고, 159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학유·헌납을 거쳐 장령이 되었으나 대신의 미움을 받아 경성부판관으로 좌천되었고, 부임한 날로부터 주색을 즐겨 곧 파직당하였다.

이듬해 직강·사예를 거쳐 안변부사가 되어 제방을 쌓고 도랑을 파는 등 관개사업을 크게 일으켰다. 광해군 초에 문학·장령·사간·필선·집의 등을 거쳐 1612년(광해군 4) 보덕이 되고, 이듬해 사간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취임하지 않았다.

광해군이 궁궐을 새로 짓고 천도하려 하자 한(漢) 나라의 고사를 인용하여 그 부당함을 극간하였고, 정조(鄭造)·윤인(尹訒) 등이 폐모론을 발의하자 처음으로 반대의견을 제시하고는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뒤 다시 벼슬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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