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평양 출신. 1938년 3월 평양 창동교회(倉洞敎會)에서 기독소년척후대와 독서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던 중 일제의 박해를 피하여 중국 북경(北京)으로 망명하였다.
1941년 1월 한국광복군 제5지대 화북지구(華北地區) 공작책 김천성(金天成)·백정현(白正鉉)과 접촉하여 광복군에 참가, 그 해 5월 산시성[山西省]을 근거지로 유격전을 전개하던 중국군 제10전구 호종남(胡宗南)사령의 유격대에 배속되어 장덕기(張德棋)·유덕량(劉德亮) 등과 함께 북경·타이위안[太原] 등지에서 초모활동·대적선전공작·적정탐지·유격전 등을 전개하였다.
1941년 9월과 1942년 8월 두차례에 걸쳐 국내에 침입하여 김화식(金華植)목사 등과 만나 국내동향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귀대하였으며, 1943년 1월 특별간부훈련반 수료 후 광복군 제2지대 2구대 1분대 부분대장으로 복무하다가 한미군사합작 OSS특수훈련을 받고 국내진공을 위하여 대기중 조국광복을 맞았다. 1946년 2월 제1차교포송환임무에 따라 귀국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