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사유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춘추관기사관, 헌납, 성균관사예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휘지(徽之)
인물/전통 인물
  • 본관삭녕(朔寧)
  • 사망 연도1455년(세조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성균관사예
  • 출생 연도1372년(공민왕 2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희권 (전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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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춘추관기사관, 헌납, 성균관사예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휘지(徽之). 최선보(崔善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충(崔忠)이고, 아버지는 호조전서(戶曹典書) 최윤문(崔潤文)이며, 어머니는 어백유(魚伯游)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399년(정종 1) 생원시 ·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1402년(태종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09년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 1414년 장흥고사(長興庫使)가 되었는데, 이 때 질이 나쁜 종이를 납궐(納闕)한 죄로 의금부에 하옥되었다.

1432년(세종 14) 사간원좌헌납이 되었다. 이듬해 상정색녹사(詳定色錄事) 한유린(韓有隣)과 책봉도감녹사(冊封都監錄事) 허완(許完)에게 7등급을 초과하여 참직(參職)을 제수하자, 3등급을 초과할 수 없는 초천법(超遷法) 규정을 들어 이의 시정을 상소하였다.

누천(累遷)하여 성균관사예에 이르렀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퇴거하여 경사를 읽으며 세월을 보내다가 뒤에 수직(壽職: 80세 이상의 노인에게 은전으로 주는 벼슬)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참고문헌

  • - 『태종실록(太宗實錄)』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조선명신록(朝鮮名臣錄)』

  • - 『삭녕최씨보(朔寧崔氏譜)』

주석

  • 주1

    : 사마시 급제 : 『사가집(四佳集)』 補遺1, 碑誌類, [최문정공비명(崔文靖公碑銘)]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一(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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