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6년(문종 10) 예부낭중(禮部郎中)으로 칠도무문사(七道撫問使)가 되어 진주·나주·전주·청주·광주(廣州)·공주·홍주 등을 순시하고, 1058년 내사사인 지동궁시독사(內史舍人知東宮侍讀事)가 되었다.
이때 외국 손님을 접대할 때는 밤을 이용하지 말고 낮을 이용함이 재정을 허비하지 않게 됨을 주장하고 전송하는 예(禮)도 조회 때를 이용함이 좋다고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1061년 좌유덕(左諭德)이 되었고, 1065년 9월에는 예부상서(禮部尙書)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거란에 다녀오고, 1068년 4월에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가 되고, 같은 해 4월에는 지공거(知貢擧)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