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석준(錫俊)·석유(錫濡). 평안북도 삭주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 상경하여 평안북도 삭주군과 창성군의 거사를 종용받고 이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수배를 받자, 만주로 건너가 관전현(寬甸縣)을 근거지로 삼고 동지들을 규합, 활동하였다.
그 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는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200여 명의 동지를 모아 대한민국임시정부 직할의 통군대(統軍隊)를 결성하였다. 통군대는 평안북도 의주·용천·선천·철산 등지에서 수시로 출격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고, 군자금 모집 요원을 안전하게 임시정부까지 호위하는 임무도 수행하였다.
1922년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는 동시에 무기구입을 위하여 이륭양행 상선편으로 상해에 갔다가 돌아온 뒤 잡혀 의주경찰서로 압송당하였다.
여기에서 계속 저항하면서 일본경찰에 무력투쟁을 선언하는 등 극렬한 투쟁을 가하자 이호영(李浩英)과 함께 압록강변 청마령(淸馬嶺)에 끌려가 총살당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