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거천(巨川). 호는 삼절당(三節堂). 집현전부제학 최만리(崔萬理)의 현손으로, 어머니는 이효종(李孝宗)의 딸이다. 조광조(趙光祖)·김정(金淨)의 문인이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명현들이 참화를 당하자 벼슬에 뜻이 없어 과거를 단념하였다. 1534년 비로소 성균관에 들어갔는데 뒤에 성균관의 천거로 직장·주부·한성부판관·의금부도사 등을 거쳐 성주목사에 이르렀다.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하여 학문으로 명성을 떨치었고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