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1년(충렬왕 27) 사신이 되어 원나라에 다녀와서 원나라가 북쪽의 정벌을 정지하였다고 알리니, 재추(宰樞)들이 기뻐하여 백금 3근을 주었다.
이 해 호군(護軍)에 올라 다시 원나라에 가서 새매를 바쳤다. 1303년 호군으로서 일찍이 전왕을 수종하던 신하로 오랫동안 원나라 서울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투옥되었다.
1307년 낭장으로 있다가 원나라에서 충렬왕·충선왕 부자를 이간시키는 등 간계를 꾸미다가 같은 해 4월 충선왕이 다시 국정을 장악하고 충렬왕의 세력을 제거할 때 서흥후(瑞興侯) 왕전(王琠), 왕유소(王惟紹)·송방영(宋邦英)·송린(宋璘) 등과 함께 참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