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관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민국독립단에서 국내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군자금 모집 및 친일파 처단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33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0년(고종 7)
  • 출생지평안북도 구성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상태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민국독립단에서 국내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군자금 모집 및 친일파 처단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평안북도 구성 출신. 1919년 3·1운동 후 만주에 건너가 민국독립단(民國獨立團)에 가담, 국내 특파원에 선출되었다.

이 해 민국독립단이 임시정부 산하인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에 통합되자, 역시 국내 특파원이 되어 평안북도의 연통제(聯通制) 조직의 임무를 띠고 입국하였다.

단원 홍식(洪植)·배준오(裵俊五) 등과 같이 각처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면서 김순호(金順浩)·최운봉(崔運鳳)·손봉선(孫鳳善)·임명규(林明奎) 등에게 권유하여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시켰으며, 이들과 함께 군자금을 모아 총단장 조맹선(趙孟善)에게 송금하였다.

1920년 8월 일본경찰의 앞잡이 홍응겸(洪應謙)을 중국에서 파견된 암살단원 이명서(李明瑞) 등과 함께 습격하여 살해하였고, 구성군주재소를 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뒤 군자금모금에 진력하다가 1920년 일본경찰에 붙잡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 3차의 감형을 받아 13년 만에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유공자공훈록』4(국가보훈처, 1987)

  •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 - 『독립운동사자료집』1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 -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