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경기도도수군절제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388년 왜구가 삼도에 침입하여 민가를 불사르고 약탈을 자행하자 밀직부사로서 자혜부사(慈惠府使) 조언(曺彦)과 함께 이를 격퇴시켰으며, 다음해 경상도 원수(元帥) 박위(朴葳)가 대마도를 정벌할 때 그를 뒤따라가 대마도인 300여명을 잡아가지고 돌아왔다.
뒤에 대마도를 정벌한 공으로 왕으로부터 칠석(七夕)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1390년(공양왕 2) 윤이(尹彛)·이초(李初)의 옥(獄)에 연루되어 한때 유배되었다.
고려가 망하자 종손인 최양(崔瀼)과 함께 고향에 은거하였다가 태조의 부름을 받아 1394년(태조 3) 경기도도수군절제사(京畿道都水軍節制使)에 보임되었으나 곧이어 병으로 죽었다.
기골이 장대하고 남달리 키가 컸으며, 임금의 명을 받아 기선(騎船)을 만들었고, 특히 왜구를 방어하는 데 공이 많았다. 시호는 위정(威靖)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태조실록(太祖實錄)』
- 『조선명신록(朝鮮名臣錄)』
- 『대동기문(大東奇聞)』
- 『전주최씨보(全州崔氏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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