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언명(彦明), 호는 월담(月潭). 한양 출신. 감찰 최문손(崔文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훈련원도정 최경(崔瓊)이고, 아버지는 군수 최여주(崔汝舟)이며, 어머니는 한세륜(韓世倫)의 딸이다. 이중호(李仲虎)의 문인이다.
1566년(명종 2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572년(선조 5) 학유를 거쳐 검열이 되었고, 사국(史局)에 뽑혀 직필로써 김성일(金誠一)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그 뒤 공조·형조의 좌랑, 정언, 해운판관을 지내고, 경상도도사가 되어서는 군적(軍籍)을 잘 다스렸다.
1576년 수안군수로서 선정을 베풀어 고을사람들이 송덕비를 세웠으며, 그 이듬해 함경도암행어사로 나가 그 지방의 기한(饑寒)과 국방대책 8조를 상소하였다. 그 뒤 집의·사간·예조참판·대사간·이조참판·한성판윤·대사헌 등을 거쳐 1590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그간에 1583년에는 성절사로, 1589년에는 사은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평난(平難)·광국(光國) 공신에 각각 3등으로 녹훈되고 해성군(海城君)에 봉하여졌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평양까지 선조를 호종하였으며, 왕비와 세자빈을 배종(陪從), 희천에 피난하였고, 이듬해 검찰사(檢察使)가 되어 왕과 함께 환도하여 좌찬성·세자이사(世子貳師)로 지경연사를 겸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