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난국으로 보고 그 원인을 인물빈곤이 아닌 정책의 빈곤에 두고 서민정치의 구현을 표방한 오재영(吳在泳)·전용길(田龍吉) 등이 1963년 5월 8일 창당발기인대회를 열고, 53개 지구당을 조직하여 17일 창당하였다.
창당대회에서 오재영을 회장에, 임병하(林炳河)를 부회장에 선출하여, 그 해 8월 3일 정당등록을 마쳤다. 주요 당면정책으로는 대통령의 권한 축소와 국무회의의 권한 강화로 권력을 분산, 대폭적인 중앙집권체제의 지양과 행정권의 지방 이양으로 지방자치제 실시, 정부기구의 대폭적인 정비축소로 인한 재원으로 균등하고 충분한 생활보장, 각급 선거에서의 철저한 공영제 실시와 군·경·정보기관의 엄정한 정치적 중립, 서민대중을 본위로 하는 경제정책과 외자도입의 억제로 자립경제체제확립, 한·일협정의 전면적인 개폐의 단행과 한·일경제교류의 재검토 등이다.
1962년 10월의 제5대대통령선거에서 오재영이 후보로 출마하여 총유효투표수의 3.7%인 40만8664표를 얻어 낙선하였으나, 박정희(朴正熙)·윤보선(尹潽善) 후보 다음으로 3위를 차지하였으며, 그 해 11월의 제6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귀족군벌을 물리치고 서민대표 뽑아보자’는 구호 아래 지역구 33명, 전국구 5명을 공천하였으나 모두 낙선하였다.
그 뒤 1967년 3월 25일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헌개정을 통하여 통한당(統韓黨)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1971년 5월 3일까지 활동하였다. →통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