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양(平壤). 문하시중을 지낸 조인규(趙仁規)의 딸이다.
1292년(충렬왕 18) 당시 세자인 충선왕과 혼인하여 세자비(世子妃)가 되었으며, 뒤에 원나라의 계국대장공주(薊國大長公主)와 혼인한 충선왕과 함께 귀국하였다.
충선왕과 조비는 금실이 좋았으므로 이를 질투한 한국공주는 충선왕이 조비만 총애한다고 수종하는 사람편에 원나라 황태후에게 편지를 띄웠다. 그 편지에는 조비가 공주를 저주하여 왕으로 하여금 공주를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고 무고하였다.
이 때 “조인규의 아내가 귀신과 무당을 섬기며 저주하여 왕으로 하여금 공주를 사랑하지 않고 조비에게만 사랑을 쏟게 한다.”라는 내용의 익명서가 궁궐문에 붙여져 공주가 조인규와 그 아내 등을 옥에 가두고 이 사실을 원나라에 알렸다.
이 해 원나라 사신들이 와서 황제의 명으로 조비는 국문을 받고 아버지와 함께 연경(燕京)으로 압송되었다. 그리하여 충선왕은 폐위되고 충렬왕이 복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