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명사(明史)』·『대명회전(大明會典)』에는 충정관(忠靜冠)으로, 『삼재도회(三才圖會)』에는 충정관(忠靖冠)으로 기록되어 있다.
명나라 세종(世宗) 가정(嘉靖) 7년에 연거(燕居)의 복을 정하므로, 공경과 고관이 평시에 사용하게 된 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예종 때 관례 전 세자의 두건으로 언급이 되었으나, 예관이 아니므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대부들간에는 조선 중기 이후 평상시의 관으로 널리 사용되어 정착되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의하면 충정관에는 방건(方巾) 모양의 충정건(冲正巾)과 양관(梁冠)의 체제를 모방한 충정관(冲正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초상화나 기타 회화에서 충정관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김만중(金萬重)의 초상화를 통하여 보면 그 자세한 형태는 알 수 없으나 전체적인 형상으로 보아 중국의 『삼재도회』 충정관과 『각양건제(各樣巾製)』의 충정관과 흡사함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