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실되어 전해지지 않으나 1585년(선조 18) 간행한 어숙권(魚叔權)의 『고사촬요(攷事撮要)』의 팔도책판목록(八道冊板目錄) 중에 평안도 평양의 판본으로 실려 있다. 그런데 세종 때에 편찬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의 옹저창양(癰疽瘡瘍) 중에는 포창은 보이지 않으나,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잡병편(雜病篇)에는 옹창의 일종으로써 대풍창(大風瘡)·백라창(白癩瘡) 등과 함께 천포창(天疱瘡)을 들고 있다.
그 아래 일명 ‘양매창(楊梅瘡)’인데 나(癩)와 비슷하다고 하고, 천포창을 치료하는 처방들의 출전을 밝히는 인용서목 중 『치포방(治疱方)』이 세 곳이나 소개되었다. 이 『치포방』이 『치포이험』을 가리킨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포(疱)의 일명이 양매창이라는 데 비추어 『치포이험』이나 『치포방』은 매독을 치료하는 전문방서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매독은 15세기가 거의 끝날 무렵에 유행하기 시작하여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항해선원들에 의하여 유럽에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병은 중국에서도 1505년부터 1521년 사이에 포르투갈과 인도 상인들이 많이 내왕하던 남부무역항 광둥(廣東)에서 시작되어 곧 북으로 올라와서 전중국에 전파되었다.
우리나라에도 1550년경을 전후하여 매독이 인접대륙인 중국으로부터 전해왔으리라고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적혀 있다. 그리고 1613년(광해군 5)에 편찬된 『동의보감』에도 ‘천포창 일명 양매창’이라고 적혀 있으므로, 이보다 앞서 1585년경에 우리나라에서도 전문 매독치료서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