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사등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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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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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예조에서 청나라와 사신의 파견에 관한 절차 등을 수록한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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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예조에서 청나라와 사신의 파견에 관한 절차 등을 수록한 등록.
내용

13책. 필사본. 1637년(인조 15)부터 1800년(정조 24) 사이의 사실이 수록되어 있으며, 예조에서 편하였다.

제1책과 제3∼12책까지는 계제사(稽制司)에서 등록한 칙사등록이고, 제2책은 전객사(典客司)에서 등록한 칙사등록이며, 제13책은 필자 미상의 조칙등록으로 되어 있다.

제1책과 제3∼12책에는 접대 절차의 결정 과정, 행례처소(行禮處所)의 준비, 행례시의 복색·의물(儀物)의 준비, 그 밖에 중국에 가는 사은사(謝恩使)·성절사(聖節使) 등 사신의 방물(方物) 및 문서 준비, 회환(回還) 때의 출영행례 준비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제2책에는 전객사에서 칙사를 접대할 접반관(接伴官)·통역관의 차정(差定)·파견과 숙소(宿所)·용악(用樂)·잡희(雜戲)의 준비 등 칙사의 거둥에 상응하는 구체적인 접대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제1책은 병자호란 후 대청 관계에서의 특수한 사정을 살필 수 있는 자료를 수록하고 있다.

즉, 1638년 5월 비변사(備邊司)의 비밀 계사(啓辭)에 조선이 명나라에 원병을 요청한 사실을 청나라에 진주사(陳奏使)를 보내어 원만히 무마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제3책은 1644년(인조 22)부터 1658년(효종 9) 사이의 기록이다.

부록에는 부경사목(赴京事目)이 포함되어 있는데, 1648년에서 1701년(숙종 27)까지의 기록으로 특수한 물종(物種)의 매매 금지 등 사신회환시의 금제사목이 수록되어 있다.

제4책은 1662년(현종 3)부터 1680년(숙종 6), 제5책은 1649년부터 1676년, 제6책은 1682년부터 1691년, 제7책은 1692년부터 1713년, 제8책은 1713년부터 1720년, 제9책은 1721년(경종 1)부터 1724년, 제10책은 1725년(영조 1)부터 1731년, 제11책은 1732년부터 1754년, 제12책은 1799년(정조 23)부터 1800년 사이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한편 제13책 조칙등록은 1636년(인조 14) 12월에서 1670년(현종 11) 5월까지의 청나라에서 온 조칙문을 수록하고 있다. 병자호란 직후의 청태종(淸太宗)의 고유문(誥諭文)에서는 조청(朝淸) 사이의 군신 관계를 합리화시키는 내용 및 조선의 태도에 대한 경고 등이 실려 있어, 당시의 미묘했던 양자 사이의 관계가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뒤의 강희(康熙)·순치(順治) 연간의 조칙에서는 청나라에서의 은사 등의 조치와 반사예물(頒賜禮物)의 목록 등 의례적인 내용으로 전환하고 있어, 양국 관계의 변모 양상을 살필 수 있다. 따라서, 북벌론(北伐論)이 강력히 주장되던 시기의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칙사등록(勅使謄錄)』 1·2(국사편찬위원회, 1997·1998)
『규장각한국본도서해제』-사부 2-(서울대학교도서관,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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