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구술은 고려시대로부터 분과적으로 발전되었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초기부터 침구 전문의를 분리시켜 침구의 의과고시(醫科考試)를 따로 실시하였다.
1438년(세종 20) 3월에 침구전문생을 매년 3인씩 뽑아 전의감(典醫監)·혜민국(惠民局)·제생원(濟生院)의 3의사(醫司)에 각각 1인씩 배치하였는데, 이것이 침구 전문의로서 분과된 처음이다.
그런데 ≪경국대전≫의 의과취재(醫科取才)에 침구의는 다른 의원들과 분리되었으며, 고시과목으로 ≪찬도맥 纂圖脈≫·≪화제지남 和劑指南≫·≪동인경 銅人經≫은 기송(記誦)하도록 하고 그밖에 ≪직지맥 直指脈≫·≪침경지남 針經指南≫·≪자오유주 子午流注≫·≪옥룡가 玉龍歌≫·≪자생경 資生經≫·≪외과정요 外科精要≫·≪십사경발휘 十四經發揮≫·≪침경적영 針經摘英≫ 등은 임문(臨文)하게 하였는데, 이런 방서들은 거의 중국의 침구 전문서들이다.
그리고 ≪향약집성방≫에도 침구편(針灸篇)이 따로 분리되었는데 본편에서는 송나라의 왕집중(王執中)이 편집한 ≪자생경≫을 주로 인용하였으며, 그 뒤 침구 전문서로서 세종 때의 의관 전순의(全循義) 등이 엮은 ≪침구택일편집 鍼灸擇日編集≫과 선조 때 유성룡(柳成龍)이 엮은 ≪침구요결≫ 등을 들 수 있다.
침구 전문의를 분리시키고 침구 전문서를 편성한 것은 우리 침구술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