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KAL) 747기는 1983년 9월 1일 뉴욕에서 앵커리지를 경유하여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이 항공기에는 한국인 81명, 미국인 55명, 일본인 28명, 중국인 36명, 필리핀인 16명, 캐나다인 10명, 타이인 6명, 오스트레일리아인 4명, 스웨덴인, 말레이시아인, 인도인이 각 1명, 무국적자(베트남 난민) 1명 등과 승무원 29명 등이 탑승하고 있었다. 대한항공 747 민간여객기는 1983년 8월 31일 밤 10시(현국시간) 예정대로 앵커리지공항을 출발, 앵커리지∼서울 간 6개의 항로 중 최북단에 위치한 소위 로미오 20 항로를 택하여 비행하고 있었다. 이 항로는 소련 영공과의 최단 거리인 50㎞정도의 최단거리에 있었다.
1983년 9월 1일 오전 2시 7분 도쿄 국제통신국 나리타 관제소는 대한항공기로부터 “정상루트 통과지점인 캄차카 앞바다의 니피를 통과하였다”는 타전을 받았다. 사후 조사결과에 의해 밝혀진 것이지만, 그로부터 한 시간 조금 못된 3시 12분 대한항공기를 추적 중이던 소련 전투기 조종사가 “대한항공기를 육안으로 발견하였다”고 지상기지에 무전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일본 항공자위대의 레이더가 사할린 동쪽 해상에서 비행중인 대한항공기의 항적을 포착하였다. 3시 20분 추적하던 소련 전투기는 지상기지와 “조준을 맞추어라” 등의 3회에 걸쳐 교신을 주고받았고, 3시 25분 전후 일본 항공자위대의 레이더는 대한항공기 주변에서 수대의 소련 전투기들이 격렬히 움직이는 것을 포착하였다.
결국 대한항공기는 소련령 캄차카 반도 상공에서 소련 수호이 전투기의 추적을 받아 기수를 사할린 상공으로 틀고 있었다. 바로 그때 3시 26분 소련전투기는 대한항공기에 미사일을 발사하였고, 소련 조종사는 “명중하였다. 목표물을 파괴하였다”는 내용을 지상기지에 타전하였다. 3시 27분 전후 대한항공기와 일본 나리타관제소와의 교신이 두절되었고, 3시 29분 대한항공기는 사할린 서남해안 상공에서 일본 항공자위대 레이더로부터 사라졌다. 3시 30분 대한항공기 주변의 소련 조종사가 “대한항공기가 고도 5천m까지 급강하하였다”고 지상기지에 보고하였고, 3시 38분 대한항공기는 사할린 서남쪽 모네론섬 해상에 추락하였고, 3시 53분 소련 전투기들이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소련조종사는 마지막으로 “목표물로부터 이탈한다”는 보고를 지상기지에 전달했다.
실제 미사일을 발사했던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49세, 당시 중령)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소련 수호이 전투기는 유도비행을 하기 위해 여객기와 같은 고도로 날아가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고, 날개 쪽에 달린 경고등을 깜빡거리며 수차례 신호를 보냈다. 이는 국제 신호규정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여객기에서는 아무 응답이 없었다. 항공기 오른쪽은 녹색등이 왼쪽에는 빨간색 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소련 지상관제소는 “소령 조명탄 미사일을 발사하라”는 명령을 하달했고, 전투기는 여객기에서 반응을 보이지 않자, 연발형식의 조명탄 미사일을 네 차례 발사했다. 조명탄의 발사로 결과적으로는 250여 발의 산탄이 발사되었지만 여객기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소련 전투기는 재차 격추명령을 받고 여객기를 계속 추격했고, 사할린 항구도시 네벨스크시 상공까지 이르렀을 때 관제소로부터 “격추하라”는 명령을 하달 받았다. 결국 전투기는 여객기 앞으로 타원을 그리며 회전한 뒤 미사일을 발사했다. 처음에는 열추적 미사일을 발사하여 엔진부분을 명중시켰고, 두 번째로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여객기는 화염에 휩싸여 추락하였다. 격추된 여객기는 진행방향으로 나선형으로 약 5㎞를 날아가며 사할린 해상 마네론 섬 주위에 잔해들이 떨어졌다.
대한항공(KAL) 747기 피격사건으로 탑승자인 한국인 81명, 미국인 55명, 일본인 28명, 중국인 36명, 필리핀인 16명, 캐나다인 10명, 타이인 6명, 오스트레일리아인 4명, 스웨덴인, 말레이시아인, 인도인이 각 1명, 무국적자(베트남 난민) 1명 등과 승무원 29명 등이 전원이 사망하였다.
한국정부는 대한항공기 피격사건에 대하여 성명을 발표하여 소련의 비인도적 잔학행위에 강력히 항의하였고, 소련당국의 사과와 피해 보상, 사건책임자의 처벌, 유사한 사건의 재발 방지 보장 등 4개항을 요구하면서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긴급소집을 요구하였다. 이 사건으로 미국은 소련과의 문화교류를 단절할 것을 발표하였으며, 일본도 소련과의 외무장관회담, 무역회담의 중지를 고려하는 제재를 가하였다. 유럽의 여러 서방국가들도 미국의 강경한 대응책에 동조하였으며, 중국까지도 소련의 대한항공기 격추를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이라고 공식 비난하였다. 미국, 일본,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 우방국들은 강경한 자세로 소련의 만행을 규탄, 강력한 응징을 실행에 옮기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대한항공 747기 피격사건은 타국의 항공기가 영공을 침범했다고 하더라도 민간항공기에 대해서는 무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국제관례를 무시한 것으로 전 세계로부터 규탄을 받았으며, 동서관계를 급속히 긴장시켰다. 사건 다음날 오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개최되었고, 관련자 처벌을 주 내용으로 하는 5개항이 결의되었다.
각국의 정부차원에서의 강경한 대응책 이외에도 민간차원에서는 국제조종사협회연맹이 대한항공기 격추에 대한 보복조치로 60일간 모스크바 취항을 중단하는 결의를 하였고, 각국의 조종사협회는 이 결의를 즉각 지지하였다. 결국 이 사건에 대한 보복조치로 세계 80여 국이 공식적으로 소련의 만행을 규탄하였고 제재조치를 가한 셈이었다. 이에 따라 많은 국가들은 소련여객기의 서방 취항과 서방여객기의 소련취항을 잠정 규제하고, 소련과의 운송협정 폐기, 전략물자 금수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 미국은 소련항공사와 거래를 중지하였다.
이 사건은 사고 항공기의 블랙박스를 회수하지 못하여 항로이탈의 의문점이 풀리지 않았으며, 소련이 왜 한국의 민간여객기를 격추했는지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아 그 사건의 과정이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