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한 노정을 탈없이 마쳤다거나 아무 탈없이 잘 지냈다는 것은 전자의 예이고, 속담에 일이 크게 벌어진 것을 두고 ‘탈이 자배기만큼 났다.’ 하는 것은 후자의 보기가 된다. 탈은 그밖에 병(病)의 뜻으로도 쓰이는데, 먹은 음식으로 말미암아 체하거나 설사 나거나 하는 뱃속 병의 총칭으로 사용하는 배탈이란 용어에 잘 드러난다.
뜻밖에 발생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어떤 좋지 않은 결과를 두고 표현하던 탈이란 개념은 점차 민간 신앙에 수용되어 처벌과 관련된 막연한 영적 존재로 발전한다. 그런 막연한 민간신앙적 개념 가운데 임신 중이나 아이를 놓다가 죽은 여인들의 탈이 무(巫)에서 하탈(下頉)이라는 한 종류의 잡귀잡신(雜鬼雜神)으로 확정된다. 탈은 그러므로 한국인의 어떤 부정적인 관념이 하위신령으로까지 발전해 가는, 민간종교의 중요한 개념이다.
탈의 어원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그 문헌적 출처도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조선 후기의 학자 정동유(鄭東愈)가 지은 ≪주영편 晝永編≫에 탈에 관하여 언급한 것이 있다. 그는 우리 나라에는 자전(字典)에도 없는 글자가 많다 하고, 그 가운데 속명(俗名)과 뒤섞인 글자[雜字]의 한 예로 ‘칭탈(稱頉)’을 들었다. 사람들이 흔히 일을 사고(事故)라고 칭탁(稱託)하여 모면하는 것을 ‘칭탈’로 쓴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쓰는 탈의 한자인 ‘頉’이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진 한자임을 알 수 있다.
민속신앙·생활·문학작품·속담 등은 탈의 종류와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속담에는 ‘죽는 놈이 탈 없으랴.’하여 어떤 재앙이라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계집과 숯불은 쑤석거리면 탈난다.’는 여자가 남자의 유인에 잘 넘어감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모두 어떤 좋지 않은 결과나 그 원인으로서의 탈을 표현하고 있다.
생활 가운데서 탈은 여러 종류와 내용으로 사용된다. 앙탈·속탈·뒤탈·배탈·까탈 또는 가탈 등이 그러한데, 앙탈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핑계를 대어 피하거나 남의 말을 안 듣고 불평을 늘어놓거나 생떼를 쓰는 것이다. ‘앙탈을 부린다’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속탈은 먹은 것이 잘 삭지 않아 생기는 병으로 배탈과 유사한 뜻을 가진다.
뒤탈은 어떤 일에 대하여 뒷날의 걱정이나 근심, 또는 뒤에 생기는 탈을 말한다. ‘모든 일을 뒤탈 없이 잘 처리하자.’는 용례는 일반적이다. 까탈은 ‘왜 이 일에 그다지도 까탈이 많으냐.’는 예처럼 일이 수월하게 되지 않도록 방해하는 조건을 가리킨다.
탈의 생활적 용례는 이처럼 다양한데, 가요 가운데도 “이것 참 큰 일 났네, 큰 탈이 났네.”라는 구절이 있는 정도이다.
탈을 주제로 다룬 문학작품으로는 <변강쇠가>를 대표적인 것으로 손꼽을 수 있다. 변강쇠가 경상도 함양(咸陽)의 장승을 뽑아다가 도끼로 패어 군불을 많이 넣었는데, 이 변고를 들은 팔도 장승들이 회의하고는 변강쇠에 달려들어 각기 자기네 맡은 대로 온갖 병을 들게 하여서 변강쇠는 송장이 되고 만다.
장승을 패어 덥게 때고 그날 밤을 자고 깨어나서도 변강쇠가 아직 별고 없음을 판소리에서 “아무 탈이 없었구나.”라고 노래한다. 그 탈은 그러나 결국 장승들의 징벌과 변강쇠의 병사로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는 탈이 일상적인 뜻이 아니라 영적 존재 내지 민속신앙 대상의 처벌과 관련되어 있어 탈의 민속종교적 성격을 보이고 있다. 그런 면이 무(巫)에서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조상(祖上)과 관련하여 1930년대까지도 서울에서 불리던 <지두서 指頭書>라는 무가(巫歌)에 “청산의 청나비는 입이 걸려 못 나오고 흥산의 흥나비는 꽃이 걸려 못 나온다더니 아모씨 조상님네 탈에 걸려 못 나오실 제 애탈 지탈 넋의 넋탈 지방 너미 천너미 가시문 지게쇠문 지게 넘어 오실 제 진언이나 외어 가옵소서.”란 대목이 있다.
조상이 탈에 걸려 이승의 굿판으로 못 나온다면 그 탈은 이미 예사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런 탈이, 그 구체적인 뜻은 불분명하나 애탈·지탈·넋탈 등으로 개념화된다.
굿의 부정거리나 뒷전에는 탈이 잡귀잡신의 한 종류로 잡혀진다. 하탈이 그것이다. 제가(諸家)집 부녀 가운데 아이 배고 죽었거나 아이 낳다가 죽거나 아이 놓고 죽은 귀신을 가리키는 하탈은 전통굿의 뒷전에서 뒷전의 한 거리로 놀아졌던 것이다.
이것은 다시 잡귀잡신 가운데 억울하고도 비참하게 죽은 귀신인 영산과 연결되어 영산의 하위개념으로서의 하탈영산이란 종류를 형성한다. 그래서 부정거리에서는 “낳구 가구 배고 가든 하탈영산”이라며 한 대목이 불려진다.
한국사회가 근대화되면서 의학의 발달로 임산부나 산모나 해산 모가 죽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그에 따라 하탈이라는 잡귀잡신도 차츰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뒷전에서 더 이상 놀아지지 않는다. 다만 부정거리에서 하탈영산으로 잠시 언급될 뿐이다. 탈 개념도 근대화에 따른 서양과학 및 합리적 사고방식의 보편화로 이제 별로 쓰이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