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리(法舍利)라고도 한다. 후대에는 불경을 다층탑 형태의 도형(圖形) 내부에 절묘하게 배치한 것을 일반적으로 탑다라니라고 하였다. 본래 다라니(陀羅尼, dha-rani)란 총지(總持)·능지(能持) 등으로 번역되며, 통칭하면 진언(眞言)으로 신주(神呪)를 의미한다.
7세기 전반 인도를 순례한 당나라 현장(玄奘)의 ≪대당서역기 大唐西域記≫에는 승군(勝軍)이라는 수행자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
“인도의 법식에는 향나무의 가루를 이겨서 5, 6촌 크기의 소탑(小塔)을 만들고, 경문을 베껴 그 안에 안치하는데 이를 법사리라고 한다. 그 수가 차츰 불어나면 큰 탑을 세우고서 이를 그 안에 모아 함께 공양한다.”고 하여 당시 인도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당나라 의정(義淨)의 ≪남해기귀내법전 南海寄歸內法傳≫에도 진흙으로 소탑을 만들어 불상의 모습을 비단이나 종이에 찍어서 널리 공양하며 또는 모아서 불탑을 만들었다. 또 금·은 등 여러 재료로써 불상이나 탑을 만들 때 그 안에 두 종류의 사리(舍利)를 안치하는데, 이를 곧 부처의 신골(身骨)과 연기법송(緣起法頌)이라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 같은 예가 신라 석장사지(錫杖寺址)에서 확인된 바 있다. 즉, 석장사지 발굴에서 얻어진 연기법송명탑상문전(緣起法頌銘塔像文塼)에는 벽돌의 각면 불상과 탑 사이에 연기법송을 기록하였으므로, 우리 나라에서도 7세기경에 이미 유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불탑 속에 봉안되었던 가장 확실한 예는 역시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다.
이 경은 신라시대 건탑의 기본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짐작되며, 특히 경문 내의 4종 다라니는 탑내 봉안 99기 소탑으로도 유명하다. 또, 고려시대 것인 익산 왕궁리석탑에서 발견된 순금 금강경판, 서산 보원사지 5층석탑 사리기(舍利器)에서 발견된 연기법송 등이 모두 탑다라니의 일종이다.
이와 같은 탑다라니의 유행이 북방불교의 한자문화권 안에서는 경문의 전권을 탑형(塔形)의 도상 내부에 배치하는 형식으로 변화되었다. 이때의 불경은 ≪금강경≫·≪아미타경≫이 대종을 이루었고, 목판으로 개판되어 널리 보급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