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태백산사고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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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태백산 사고지 발굴모습
봉화 태백산 사고지 발굴모습
건축
유적
문화재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에 있는 조선후기 『조선왕조실록』 관련 사고터(史庫址).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봉화 태백산사고지(奉化 太白山史庫址)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91년 02월 26일 지정)
소재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산126-5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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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에 있는 조선후기 『조선왕조실록』 관련 사고터(史庫址).
개설

199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태백산 사고지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해오던 태백산 사고가 있던 자리로 조선시대 5대사고 중 하나이다.

내용

조선왕조는 오대산·마니산·적상산·춘추관·태백산에 각각 사고(史庫)를 지어 실록을 보관하였다. 사고(史庫)의 구조는 실록각(實錄閣)과 선원각(璿源閣)을 기본으로 하고, 그 밖의 부속 건물로 구성된다. 사고의 개고(開庫)는 정기적인 포쇄(曝曬)와 봉안·개수 등 특수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조정에서 사관(史官)을 파견하여 시행하도록 하여 지방 수령이 자의로 사고를 개폐할 수 없도록 하였다. 1606년부터 1892년까지의 태백산사고의 개고 횟수는 90회에 이른다.

대한제국 때에는 의정부에서 관원을 보내 해당 지역의 군수와 협동으로 개고하였는데, 태백산사고의 경우 1898년부터 1910년까지 7회에 걸쳐 사고를 점검하였다. 태백산사고에는 참봉과 십 수명의 수복이 교대로 근무하였다. 또 수호사찰인 각화사(覺華寺)에 승군 25명을 두었다. 사고에는 관료(官料)와 위전(位田)을 지급하도록 하였으나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봉화는 작은 고을로 사고를 수호하기에는 힘겨워 당시에는 안동에 속하였던 춘양면을 봉화에 붙여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요청한 일도 있었다.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고 관리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과 관심은 왕조 말까지 지속되었다.

조선왕조는 임진왜란으로 말미암아 전주사고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조선왕조실록』이 모두 소실되자 1603년(선조 36)부터 실록 복구사업을 시작하여 3년에 걸쳐 전주사고본을 바탕으로 하여 태조부터 명종까지 역대왕의 실록 3질을 새로 인출하였다. 태백산사고는 1605년에 태백산 입봉 아래에 터를 잡고 공사가 시작되어 이듬해 건물을 준공하여 실록을 봉안하였다. 1910년 국권이 침탈되자 태백산사고본 실록은 이듬해 조선총독부 학무과 분실로 옮겨지고 1930년 경성제국대학으로 이전되었다. 광복 후에는 서울대학교에 소장되었다가 1985년 정부기록보존소로 이관되었는데, 대체로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1958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태백산사고본 실록을 축쇄하여 영인본으로 『조선왕조실록』48책을 간행하여 학계에 보급하였다. 그 후 민족문화추진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실록을 국역하였고 서울시스템에서 국역본과 표점 교감본을 디지털화하였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다시 이들 작업을 통합하고 온라인 서비스를 실시하여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그 내용을 볼 수 있게 하였다.

조선 후기의 사고건축은 전반적으로 간소한 세부 구성을 하고 있다. 기단은 자연석으로 낮게 조성하고 초석도 큰 자연석을 이용하여 낮고 굵은 원주를 세워 안정감을 보인다. 공포는 물익공계의 간소한 모양을 취하며 지붕도 별다른 장식을 가하지 않는 등 전체적으로 간소, 질박한 세부 구성을 하고 있다. 한편 사고는 왕조의 가장 소중한 문서들인 실록과 세보를 보관하는 건물로 위엄과 권위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실록각이나 선원각은 이들 서책을 보관하는 기능만으로는 그다지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으로 비록 건물의 규모는 작게 조성되었으나 왕실의 권위를 나타내는 외관 구성이 요구되었다.

태백산사고는 중층건물에 팔작지붕을 올리고 지붕 각 마루에 양성을 하여 장중한 위엄을 지니고 있어 이 시기의 사고 건축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외관을 갖춘 건물이었다고 평가된다.

참고문헌

『문화재대관-사적 제2권(증보판)』(문화재청, 2010)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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