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건국에 공로가 큰 신숭겸(申崇謙)·유금필(庾黔弼)·복지겸(卜智謙)·배현경(裵玄慶) 등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온 사우이다. 태백산성사우(太白山城祠宇) 또는 성황사(城隍祠)라고도 한다.
이들은 모두 태봉(泰封) 말년에 궁예(弓裔)의 폭정이 심해지자 왕건(王建)을 추대하여 고려 건국의 대업을 이룬 공신이었다. 고려 왕실에서는 그 공로를 가상히 여겨 994년(성종 13) 태사(太師)로 추증하고, 태조 묘정에 배향하였다.
그 중에서 신숭겸과 유금필은 황해도 평산 출신이어서 고을 사람들은 그들의 덕망을 추모하여 태백산(황해도 평산에 위치한 산)에 사당을 세우고 토속적으로 숭앙해왔다.
처음에는 이들을 성황신으로 추앙하여 그 사당의 명칭을 성황사라 하였으나, 뒤에 산 이름을 따서 태백산성사우라 하였다.
그 뒤 1796년(정조 20) 태사사로 사액되었고, 세상에 사표(師表)가 될만하다고 하여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신숭겸을 주향으로 하기 때문에 장절공사(壯節公祠)라고도 부른다. 그 후손인 신익성(申翊聖)이 세운 공덕비에는 사당의 내력이 수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사당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고, 인조 때에 신익성이 평산신씨(平山申氏) 문중에 통문을 돌려 자금을 마련해서 새로 건립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