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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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도성내의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기 위하여 종각(鐘閣)의 종(쇠북)을 치던 제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나각순 (서울시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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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도성내의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기 위하여 종각(鐘閣)의 종(쇠북)을 치던 제도.

내용

루·바라·바래는 파루의 변한 말이다.

종루에 물시계와 함께 대종(大鐘)을 걸어놓고 밤 10시경에 종을 28번 쳐서 인정(人定)을 알리면 도성의 문이 닫히고 통행금지가 시작되며, 새벽 4시경인 오경삼점(五更三點)에 종을 33번 쳐서 파루를 알리면 도성의 8문이 열리고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종을 33번 울리는 것은 제석천(帝釋天)이 이끄는 하늘의 33천(天)에 고하여 그 날 하루의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통행금지를 위반한 자는 경수소(警守所)에 구금하였다가 그 다음날 위반한 시간에 따라 10도(度)·20도·30도 등 차등 있게 곤장형을 집행하였다.

한편, 세종 때의 도성 축성기간에는 북소리가 멀리까지 들리지 않으므로 종루에서 횃불을 올려 파루와 인정을 알렸으며, 일출·일몰의 시간차와 계절에 따라 그 시각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또한, 가뭄이 심하여 종묘·사직과 명산대천에 기우제를 지낼 때 비가 오지 않을 경우에는 북 대신에 징을 쳐서 파루를 알렸다.

참고문헌

  • - 『서울육백년사(六百年史)』(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77)

  • - 「종루(鐘樓)와 보신각종(普信閣鐘)에 대하여」(이중화, 『진단학보』 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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